★★★☆☆ 그땐 그랬지
신시사이저가 세상의 흥겨움을 모두 견인하던 1980년대 그중에서도 1984년의 빌보드 싱글 차트는 여러모로 볼거리가 넘친다. 그룹 밴 헤일런의 네덜란드 출신 리더 에디 밴 헤일런의 건반 연주가 팝 메탈의 부흥을 가져오며 대중음악의 새 활로를 연 ‘Jump’를 비롯해 컬처 클럽의 ‘Karma chameleon’은 이후 듀란듀란, 왬과 함께 영국 발(發) 제2차 브리티시 인베이젼 시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여기, 돋보이는 두 뮤지션이 있으니 바로 얼마 전까지 정규 14집 < Madame X >를 발매하며 선 굵은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마돈나와 신디 로퍼다.
우연의 일치인지, 매스컴의 의도된 라이벌 구조 덕택인지 마돈나와 신디 로퍼는 1983년 각각 < Madonna >와 < She’s So Unusual >이란 데뷔 음반을 발매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성 솔로 뮤지션이라는 비슷한 카테고리와 음악의 중심에 여성 아티스트가 서 있다는 점은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데 새로운 해석의 층위를 제공했고 이 둘은 길고도 짧은 경쟁 구조에 들어서게 된다. 초기 출발선에서의 승자는 정규 1집에서만 5곡의 싱글을 성공시킨 신디 로퍼였다. 하지만 판도는 뒤이은 1984년 정규 2집 < Like a virgin >으로 돌아온 마돈나에서 의해 완벽하게 뒤바뀐다.
이 음반에서 그는 데이비드 보위 커리어 사상 마지막 싱글 1위를 안긴 ‘Let’s dance’의 프로듀서이자 펑크(Funk) 그룹 쉭(Chic)의 나일로저스를 데려와 전작보다 사운드에 악센트를 더했다. 또한 강렬한 섹스어필, 가감 없는 성적 발화로 대중의 청각을 마음껏 사로잡았다. 특히 음반의 동명 타이틀 ‘Like a virgin’은 스타 작곡가 빌리 스타인 버그와 톰 켈리의 지휘 아래 ‘처녀처럼’이라는 적나라한 비유를 덧씌우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가미해 그해 차트 정상을 무려 6주간 독점한다.
이 같은 선두 싸움 중 발매된 마돈나의 < True blue >와 신디 로퍼의 < True colors >는 일인자를 가리기 위한 최후 다툼과 다름없었다. 여기서 신디 로퍼는 ‘성숙’을 택했다. 전작 ‘Girls just have to fun’에서 보여준 말괄량이 콘셉트의 너른 대중적 발랄함과 메시지에서 나아가 본작에서는 한층 진중한 성인 취향의 댄스팝 노선을 걷는다. 싱글 차트에서 2주간 정상을 차지한 발라드 ‘True colors’가 그러하며 마빈 게이의 히트곡을 소울풀하게 리메이크한 ‘What’s going on’이 그랬다.
1집의 기조를 이어받은 ‘Change of heart’(3위)나 신디 로퍼의 강점인 힘 있는 보컬의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Maybe he’ll know’와 같은 밝은 곡이 있었으나 소포모어는 첫 작품의 아성을 뒤따르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마돈나의 ‘Like a virgin’의 작곡가 빌리 스타인 버그와 톰 켈리를 통해 1위 곡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해 대중에게 각인 된 건 마돈나의 ‘Papa Don't Preach’였고, 마돈나의 ‘La Isla Bonita’였다.
혁신과도 같은 창의적 발로로 여성 아티스트의 면모를 굳힌 마돈나와 달리 이 음반으로 신디 로퍼는 마지막 차트 순항을 끝낸다. 보컬 역량만 놓고 보았을 때 절대 경쟁자에게 밀리지 않았을 그가 놓친 맹점은 날카롭고 날 선 시대의 저항성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 번의 무너짐이 영원한 사라짐을 뜻하진 않는다. 이후 긴 시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던 그는 2012년 뮤지컬 < 킹키부츠 >의 전곡을 만들어내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가 주목한 건 소수자의 성(性)이었고, 데뷔 초 갖지 못했던 작곡 능력이었다. 마침표 찍히는 성장은 없다. 십수 년을 돌고 돌아 다시 전성기를 되찾은 신디 로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