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폴더폰 생활이 종료되었습니다.

by 또랭

폴더폰을 잃어버리다.


그냥 조용히 혼자 벌였으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6개월 폴더폰 생활을 하겠다고 몇 번이나 떠들어 놓고 2달 만에 폴더폰 생활이 종료되었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먼저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나의 띨띨함과 덤벙거림.

그날도 다른 날과 별로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이는 속옷 챙겨 입듯 당연하게 마스크 쓰고 유치원에 갔고, 임당 재검사를 위해 풀떼기만 먹던 여동생이 무사히 재검사를 통과한 기념으로 함께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떡볶이를 먹고, 간단히 장을 본 후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수다를 떨고 동생은 6시쯤 돌아갔고, 밤 10시가 다 되어 갑자기 폴더폰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몇 시간 동안 폴더폰을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것이다.(폴더폰은 울리기 전까지 딱히 꺼낼 필요성을 못 느낀다.) 이동할 때 이용한 동생의 차부터, 가방과 집안 곳곳을 찾아보았지만 나의 소중한 폴더폰은 증발한 것처럼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폴더폰 생활을 한 두 달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잠시 이상한 나라에서 살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폴더폰을 잃어버리고 3일간은 계속 폴더폰을 찾기만 했다. 나는 다른 폰도 아니고 폴더폰이니까, 오히려 찾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도 눈에 띄기 마련일 테니까. 그런데 3일이 지나도 단서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들렀던 가게마다 전화를 해보았고, 다시 돌아보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니 오히려 폴더폰이라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자. 길을 가다가 진동소리가 나길래 쳐다보니 구석에 낯선 폴더폰이 짱 박혀 있다. 마치 내가 받기만을 기다린다는 듯이 끊임없이 진동이 울려댄다. 자, 나 같으면 이걸 받을 수 있을까. 흠. 왠지 전화를 받는 순간 인생이 스릴러로 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구나. 폴더폰이어서 더 못 찾겠구나. 포기해야겠구나_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나는 다시 스마트폰의 세계로 추방당했다.



다시 스마트한 세계로


어쩔 수 없이 폴더폰은 분실 신고, 해지 단계를 밟았고, 나는 예전에 쓰던 스마트폰으로 귀환했다. 다시 끊임없이 앱 푸시가 울리는 스마트한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폴더폰을 쓰던 예전의 그 평화로운 생활이 너무 그리워졌다_라고 쓰고 싶지만 스마트폰을 눈치 안 보고 쓰게 되자 나는 미칠 듯이 기뻤다. 와이씨, 이렇게 편리한 세상이 있었다니!!!! 모래주머니를 양쪽 발에 차고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뛰다가 모래주머니 다 떼어버리고 하늘을 훨훨 나는 것 같달까? 도대체 스마트폰으로 못하는 게 무엇이 있는가. 나는 새삼스럽게 이 조그만 스마트폰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금 깨닫기 시작했다. 아이 유치원 선생님께 웃음표시 (^^) 요거 하나도 못 써서, 본의 아니게 싹퉁바가지 없이 매일 쩜만 찍거나 염소처럼 물결 표시로 애교를 피우던 나날들.(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폴더폰에는 ^ 특수문자가 없다.) 스마트폰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그간의 싸가지를 갚고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를 남발하기 시작했으며,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이미지 파일로 된 공지들을 음량 플러스 버튼으로 누르고 또 눌러 깨진 화면으로 확인하던 나날들을 뒤로하고 맘껏 손가락으로 줌을 하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족들이 아이 사진을 보정 앱까지 사용해 예쁘게 찍어주어 나에게 문자로 보내주면 내 폴더폰에서는 바로 북한 애로 변하는 매직을 경험했는데, 이제는 뽀샤시하고 눈 크고 이쁜 내 새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와!! 스마트폰 만세!!! 4차 산업혁명 만세!!! 두 달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빠르게 스마트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개가 똥을 끊지, 내가 이걸 끊으려고 했다니, 미쳤지 미쳤어!!!! 와하하하하!!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 스마트폰을 다시 개통한 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조증 환자처럼 인터넷 세상을 이리저리 날뛰며 그동안 누리지 못한 모든 것들을 확인하고 살펴봤다. 그동안 못 본 웹툰, SNS 밀린 소식, 블로그, 카페 글, 뉴스 등등. 세상에 재밌는 건 너무 많고, 스마트폰은 이 모든 걸 너무나도 편리하고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며 공유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했던 사실들이 두 달의 디지털 디톡스를 겪고 왔더니 모든 게 신세계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주워 든 부시맨이 이런 기분일까?




하이브리드 생활 방식을 즐기다


나는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두 달 간의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애매한 생활이 시작됐다. 좋게 표현하면 하이브리드 생활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낮에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고(아날로그), 집에서는 카카오 미니로 노래를 들었다.(디지털), 오후에는 신문을 읽었고(아날로그), 아이를 재워놓고는 유튜브를 통해 강의를 들었다(디지털).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오가는 생활들이 이어졌다. 다행인 것은 나는 아날로그의 습관인 책 읽기와 글쓰기, 신문 보기를 놓지 않았고, 디지털 활동은 소비보다 생산적인 활동들을 늘렸다는 것이다. 즉, 옛날에는 SNS에서 고양이 사진 보기, 웹툰 보기, 드라마 보기, 아이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팔로워들 삶 훔쳐보기, 유튜브로 재밌는 영상 보기, 인터넷 뉴스 댓글 읽기, 게임, 쇼핑 같이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앱들을 소비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한 정보 검색, 공부나 자기 계발을 위한 유튜브 강의 시청, 영어회화 앱 활용, 메모 앱 사용 등으로 내가 무언가를 생산해 내기 위해 필요한 부차적인 활동들을 디지털 환경에서 했다는 것이다. 물론, 소비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에게 가장 즐거움을 준 디지털 소비생활은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주말에 함께 영화 보는 날들이 많아졌고, 나 역시 드라마나 예능을 본방사수할 필요 없이 나의 스케줄에 맞게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나는 전과 다르게 스마트폰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생산을 위해 스마트폰을 쓰는가, 소비를 위해 스마트폰을 쓰는가. 단순한 소비를 위한 것이라면 최대한 자제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두 달간의 훈련이 이 순간에 빛을 발했다. 예전보다 스마트폰을 끄고 식탁 위에 던지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생산을 위한 거라면 마음의 거리낌 없이 충분히 그 순간을 즐겼다. 매일 목구멍에 걸려있던 것 같은 죄책감이 사라졌고, 조급하고 흥분된 마음도 가라앉았다. 나는 스마트폰이 그제야 내 손 안에서 통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슬기로운 스마트폰 생활을 위하여


스마트폰으로 돌아온 지 2주가 조금 지났다. 나는 언제 폴더폰을 썼냐는 듯이 스마트폰 생활로 완벽하게 돌아왔다. 그러나 예전만큼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하진 않다. 위에서 말한 생산과 소비의 판단과 더불어 가장 먼저 앱 푸시를 모두 꺼버렸기 때문이다. 두 달간의 폴더폰 생활에서 가장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는데 그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울릴지 모르는 앱 푸시였다. 이 쓸데없고도 친절한 알림들 때문에 나는 집중할 시간에 흐름이 깨졌고, 놓치지 말아야 할 연락이 아닐까 싶어 늘 확인해야 했으며, 결국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또한 광고에 넘어가 물건이라도 충동구매하고 난 날엔 왠지 찝찝한 마음에 기분이 더러웠다. 결국 가장 불편했던 건 내가 주체적으로 스마트폰을 통제하지 못하는 느낌, 각종 유혹과 상술이 넘쳐나는 그들의 달콤한 앱 푸시에 내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 더러운 눈탱이 맞는 느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쓰고 보니 보통의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싶긴 하지만, 암튼 나는 그 '당했다'라는 기분이 그렇게 싫었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 알아낸 나의 큰 장점은 누가 꼬시지 않으면 나는 자발적으로 디지털 생활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앱 푸시를 끄고 나니 나는 폴더폰을 쓸 때와 다름없이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스마트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면 난 당장 앱 푸시들부터 모두 끄라고 말하고 싶다. 앱 자체에서 끄는 건 언제든 다시 켜라고 꼬시기 때문에 나는 스마트폰 설정에 들어가서 모두 꺼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스마트폰과 다시 어울렁 더울렁 살고 있다.



어쨌든 결론을 낸다면


뭔가 결론도 내리기 전에 폴더폰 생활이 강제 종료되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기대한 이 생활의 결론은 '앞으로의 디지털 시대에서도 아날로그의 삶의 방식이 통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내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디지털이 아니면 안 되는 세상이 오고 있는데, 나는 아이와 이렇게 책과 신문만 보고 앉아있어도 되는 것일까?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이 삶의 방식으로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 직접 해보니 마음도 편하고, 조금 더 자기 발전적이었던 건 확실한데,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특히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이게 맞는 교육인가에 대한 의심들이 있었다. 그래서 폴더폰을 쓰는 두 달간 스마트폰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읽었고, 경제신문을 구독하며 끊임없이 앞으로 바뀌어갈 세상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했다. 두 달의 시간은 이 결론을 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나는 최근에 읽은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를 읽고 대충이나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책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가령 이런 것들이다. 2025년부터 2035년 사이에 전문직의 10~30%가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어 실업자로 전략할 것으로 예측되며, 2035년부터는 전문직의 30~50%는 실업자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2045년부터는 전문직의 80~90%가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저자 개인의 주장은 아니고 '21세기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천재적인 발명가이자 과학자, 공학자, 사상가, 미래 학자 뭐, 암튼 좋은 이름은 죄다 가지고 있는 레이 커즈와일이란 사람의 의견이다. 아이큐가 165라니까 허튼소리하는 사람은 아닐 것 같다. 암튼 결론은 우리가 부러워하는 소위 '사'자 직업들은 모두 손가락만 빨 미래가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살아남는 직업들은 무엇일까. 바로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갖춘 일들이다. 즉,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가장 최근의 디지털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CEO들이 고전과 인문, 독서, 글쓰기, 봉사에 집중한 학교들을 만들어 자녀를 교육하고 있음을 이야기해준다. 즉, 다시 인간 본연의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교육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아날로그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 가장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된다. 솔직히 이 이야기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요즘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을 보면 절대 먼 미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나는 원래 하던 대로 책 읽고, 뉴스 보고, 글을 쓰면 됐다. 물론 아이도 지금처럼 자연에서 뛰어놀고, 충분히 사랑받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랄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계는 최대한 배제하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두 달이 지나고 나면 무언가 엄청나게 다른 결론에 다다를 줄 알았는데, 처음과 똑같다니. 역시 처음 찍은 답이 맞는가 보다. 암튼 이렇게 뻔한 결론을 위해 나는 두 달간 그 난리를 쳤고, 이제 그 생활이 종료되었다. 그러나 마냥 허무하지만은 않다. 폴더폰 생활을 하기 이전과 지금, 나의 스마트폰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고, 직접 부딪혀 얻은 결론이므로 나는 믿고 앞으로의 교육관과 인생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더불어 별 것도 아닌 소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나의 글을 구독해주시고 라이킷 눌러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슬기로운 폴더폰 생활은 종료되었지만 앞으로 또 골 때리는 아줌마의 도전기를 가지고 또 찾아올 테니 그 글들도 제발 제발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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