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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지혜

by 또랑쎄


요즘 들어 변화가 꽤 많은 시기에 들어서 있다. 개인적으로는 생애 첫 집을 계약해 이사를 앞두고 있고, 일적으로는 조직 개편 이후 개별 업무 외에 프로젝트 진행 등 관리적인 업무들이 가중되면서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뛰고 어지럽고, 잠이 잘 안 오는 증상들이 느껴져 남편이 병원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불안감을 가진 지는 꽤 되어서 항상 빨리 불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마음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지면 마음의 안정이 생기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름 내 나이에 비해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내면이 왜 이렇게 불안정할까. 이러한 마음들을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은 항상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떨쳐 낼래야 떨쳐질 수 없는 짐으로 남아있곤 했다.

​문득 입사 초반에 말도 못 할 정도로 몸과 정신이 힘들어 퇴사를 결정했던 일이 떠올랐다. 차가 달리던 도로에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닳았던 정신 상태의 심각성을 느껴 퇴사를 결정했었는데, 의외로 퇴사 의사를 밝히자마자 너무 쉽게도 구조조정이 되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바뀌었고, 나는 지금까지 잘 적응해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몸까지 버려가며 그 일에 목을 매었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모든 일은 지나간 후에야 그 시점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야 날아간다”라는 헤겔 철학의 핵심 문장이 있다. 어둠 속에서도 사물 구별 능력이 탁월한 부엉이는 우리의 삶 곳곳에서 지혜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치 앞도 모르기에 어둠 그 자체로 볼 수 있고, 황혼 녘은 모든 빛이 없어진 이후 즉, 모든 만물의 활동이 중지된 이후이며 이때야 부엉이가 날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완전한 지혜는 변화가 종료된 시점에서 얻어진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사건이 종료된 시점에서야 그 사건들을 면밀히 판단, 분석할 수 있다.

​요즘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내면은 변화의 과정에서 오는, 황혼 녘으로 가는 일련의 시간이라고 여기려고 한다. 비록 잠을 설치는 게 힘들지만 황혼 녘에 오면 그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다음 날을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를 구상할 양분으로 쓰게 될 거라 믿는다. 한편으로는 힘든 경험을 완료해야 얻어지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 참 믿고 싶지 않고 야속한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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