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May 01. 2022

어린이 날 봐야 할 어린이 영화는 바로 이것

<우리들>, 스포일러 없이 추천합니다!


다음 주 목요일, 신나는 어린이날이다! 난 지금 26살 사회복무요원이다. 일개 공익인 나. 어린이 었던 적이 거의 13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날은 왠지 신난다. 노예 생활 도중 하루 꽁으로 쉬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항상 어린이날에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간단하게 옷을 입고 제주 동쪽 바다를 구경 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노는 걸 구경하면 행복해진다. 사람이 행복한 걸 구경하기만 해도 즐거운 게 사람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도 결혼할 수 있을까' 아득해지지만 그래도 즐거운 건 즐거운 것이 아닐까? 하하.


그런데 보기만 해도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도 나 초등학교 때 어떻게 엄마 아빠가 감당했지? 싶은 부분이 있다. 가령 아이들이 생일파티랍시고 예고도 없이 우리 집에 무작정 찾아온 적도 있다. 예고도 없었어서 엄마는 맛있는 걸 준비해야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좀 짜증 날 것 같다. 이처럼 집에 아이가 있는 집안은 감당해야 할 게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각자가 맞이하는 짜증남이 다 다른 것처럼 아이들도 아이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성적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은 초등학교. 인간관계가 중요한 비중인 학교에서 아이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폭넓게 우리들을 이해하는 영화가 2015년에 있었다. 우리나라 독립영화 <우리들>이다.




우리가 되고 싶은 우리, 둘


주인공 선우는 깍두기 같은 존재다. 체육 시간 피구 하다 주장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선이. 선의의 학교 생활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은 것 같다. 선을 밟지 않았음에도 아무튼 금을 넘었다고 우기는 아이들. 주눅이 든 선이는 그냥 수그리고 만다. 선이는 왕따다. 그것도 많이 외로운 왕따다. 어느 만큼이냐면, 생일파티에 들어간다는 핑계로 애들의 청소를 죄다 독박 써서 하는 정도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게도 단순히 그냥 혼자 다니기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무리에 어울리고 싶어 비굴한 행동까지 하는 선이. 선 이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그렇게 전학생 지아가 눈에 들어왔다. 금세 한 두 마디를 나누며 친구가 되는 지아와 선. 오래 지나지 않아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지아. 마음에 그늘이 있다는 상처를 나누니 인간관계도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좋아하면 퍼주는 것 밖에 몰라 직진밖에 모르는 선이지만 그게 뭐 나쁜가. 고작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서툴다 말다 나누기에는 어폐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친해지는 둘. 여름방학을 지나 개학이 된다. 뭔가 예전 같지 않다. 지아의 마음이 변한 것 같다. 개학을 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선을 보고도 지아는 선을 거리 두게 된다. 같은 상처가 반복되는 두려움이 작동한 것이다. 이 이후 선이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위태위태한 인간관계가 영화의 소재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모두가 다 그렇지만 꼰대라는 말은 정말 정말 싫다. 나도 꼰대 되기 싫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생긴 요즘이다. 나는 젊은 사람이고 싶지 꼬장꼬장하게 사는 건 아무래도 싫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었어서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런 아이들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자칫 아이들이 너무 어리숙한 존재로만 묘사될 수도 있어서 '고통과 아픔이 장난이냐?' 싶을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윤가은은 왠지 영화를 만들 때 꼰대의 마음가짐으로 감독한 게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 영화는 리액션이 많이 나온다는 걸 뽑고 싶다. 아이들의 얼굴 클로즈업이 자주 나온다. 이는 아이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뜻으로 통할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 서사를 통해 멋진 사람이 되는 걸 묘사했다면 지나치게 교훈적인 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의 부족함에 대해 오롯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 입장은 그 사람만 아는 것이다. 어른이랍시고 '그냥 이렇게 해라'라고 말하는 건 그 사람 생각이다. 그 솔루션이 그 사람 인생 전부를 관통하는 해결책일 수도 있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고통을 이해하는 키다리 아저씨를 원할 수도 있다. 영화는 이런 태도를 내내 견지하며 아이들의 마음에 사려 깊게 다가간다. 이에 덧붙이듯 선의 어머니 캐릭터를 비롯한 어른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 전개에 엄청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건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 의도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꼰대라는 말을 떠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은 다른 역할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이야기가 성인인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극의 내용 전개는 간단하다. 왕따인 선이 지아를 만나서 인간관계에 닳고 닳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선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정서는 외로움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쉽다. 간단한 이야기가 간단하게 감정이입을 돕는 것이다. (심지어 러닝타임도 짧다) 이는 곧 이 외로움이라는 정서에 집중하니 사람이 공감하기가 쉬워진다. 쉬운 내러티브로 관객에게 공감대를 쉽게 갖다 주는 좋은 한 수였다.


원래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거야


난 왜인지 '네가 그렇니까 친구가 없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느 한 구석에는 반 사회적인 행동을 하던 나 자신에게 파운딩을 꽂아버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말을 들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스무 살, 스물한 살에 유치원생처럼 따돌림을 하고 뭐 알지도 못하면서 정의로운 척하던 내 대학생활의 누군가가 생각난다. 이런 내면의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피해의식이 쌓이면 앞, 뒤가 안 보인다. 근데 가만 세상을 들여다보면 이 것에 예외인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 몇몇을 들여다보면 지금 생사도 모른다. 영화는 이 감정, '삶을 지나 보며 바뀌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뤘다고도 생각한다. 이는 종반부에 나타나는 인물의 처지와도 관련이 있다. 또 제목이 <우리들>인 것과도 관련 있다. 이 영화의 목적지가 외로움에 대한 위로라면 <벌새>와 비슷해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벌새>와는 살짝 다르다. 결말부에는 <벌새>와는 다른 부분이 분명 있다. 또, 제목이 <우리들>인 것도 '우리'의 범주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이야기를 적용시킬 수 있다. 우리가 되고 싶은 선과 지아의 이야기인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그러나 쉬운 이야기를 전개했던 이 영화다. '친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 친했음'이라는 정서가 반복되는 이 영화. 이런 박탈감과 외로움은 나이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무슨 말이냐? 이 영화는 우리 마음을 작게 묘사하기도 했다. 영화 제목 해석의 클리셰(?) 같긴 하지만 이 <우리들>은 성인인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이거 다큐 아냐?


이 영화의 배우들은 완~전 신인 아역 배우들이다. 선의 어머니 역을 맡은 장혜진 배우 말고는 2022년이 된 지금까지도 익숙하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연기 잘했다. 간단하고 깊게 이야기를 쓰는 거랑 쉽게 연기하는 거랑 다른 차원의 문제일 텐데 반복되는 박탈감에 대한 표정연기가 좋았다. 극에 쉽게 이입한다는 건 그만큼 극에 매끄럽게 잘 스며들었다는 뜻도 되니 아역 배우들의 발연기는 아예 없는 편이다. 사실적이라서 오히려 다큐 같은 느낌이 있을 정도다; 


또 촘촘한 연출이 장점이었던 영화다. 일단 주요 소재 피구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이 구기종목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운동이다. 공을 맞춰 사람이 아웃되면 피해자의 입장이 될 일이 없다. 이건 한 무리에 속하면 무리 지어 피해자를 양산시키는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다른 비유다. 이 구기종목의 속성으로 영화의 연출을 잘 녹여든 섬세한 연출이었다. 또 다른 설정으로는 자격지심에 대한 묘사다. 이 자격지심에 대한 묘사는 휴대폰이라는 소재에서 나타난다. 선과 지아 중에서 지아만 휴대전화가 있다. 그래서 부모님이랑 직간접적으로 통화할 수 있다. 근데 이렇게만 소통하는 소도구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지아의 상처를 묘사하는 기능으로도 휴대전화가 쓰이는데, 이 상처가 공개되고 지아가 했던 말들이나 표정을 보면 이런 꼼꼼함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곳곳이 박아놓았으니 과연 따뜻한 작품이다.


어린이날에 봐야 할 영화


이 글을 쓰는 나에게 어려운 게 뭘까. 난 잊히는 게 두렵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냥 단적으로 이 글도 잊히는 게 두렵기 때문에 쓰는 것도 있다. '짠! 나 이렇게 잘 나간다!'식의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도 0.1% 정도 있는 것이다. 아 아이들도 뭐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고 겪어온 세월이 깊다고 해서 비슷한 마음이더라도 내가 더 무게가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애들은 애들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사려 깊은 태도로 아이들이 지니는 삶의 무게에 대해, 그리고 어른에게도 적용되는 외로움과 소외감에 대해서 다뤘다. 단순히 인간관계에 대한 공감만 얻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날에 과연 최적화된 영화다. 연휴에 <닥터 스트레인지 2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할 일이 없는 왓챠 구독자 분들에게 이 영화 추천한다. 아마 아이들에게, 동생에게 폭넓은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왓챠영화추천

매거진의 이전글 네 부모를 그렇게 만든 세상 얼굴이 보고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