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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ul 03. 2022

질문도 모른 채로 답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컴온 컴온>, 스포일러 없는 후기

영상의 ㅇ자도 모르지만 난 언론을 전공한 사람이다. 전공 학과의 거의 모든 것이 싫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누군가를 취재했던 기억이다. '누구는 잘할 거야!'라고 날 믿었던 적은 많은데 저널리스트 비슷한 걸 하면서 재밌다고는 못 느껴본 것 같다. 기자로서의 글쓰기는 도저히 못할 것 같은 나. 낯을 안 가리고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언론사가 좋아하는 특성은 다 갖고 있어도 난 그게 재미있지는 않다. 나는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니면 재미를 못 붙일 것 같아서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냥 딱 지금 정도로만 쓰고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근데 그러기엔 사람 만나는 게 뭔가 기 빨리는 MBTI I형의 특징이 오롯이 담겨있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 사실 세상이 궁금해할 것 같은 게 아니라 내가 묻고 싶은 것들이다. 또 세상이 관심 있어할 주제가 아니라 내가 호기심이 있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다. 만약 이게 내 일 외적으로 작용해서 내가 궁금해하지 않는 부분을 뭔가 세상에게 묻는다면 재미없어 질게 뻔해 2년 버텨야 오래 살아남는 게 안 봐도 비디오가 될 것 같다. 근데 사실 이런 마음에는 내가 아직까지 내 지난 일에 대해 완벽하게 답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다. 그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물음이 여러 개 생기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근데 가끔은 이 짐이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거우니까 영화를 보는 거겠지? 시간에 집중하고. 글로 소통하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 세상에 의문을 가졌던 남자 둘이 있다. 이 두 남자는 삼촌과 조카 사이다. 헤어질 결심을 여러 번 명심했던 남, 녀를 뒤로하고 두 사람의 여행에 같이 합류해보자.



어색한 전화 한 통


남자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자세히 보아하니 남자의 여동생인 듯하다. 뭔가 어색해 보이는 둘. 남자는 결혼하지 않은 것 같다. 여자는 아마 아들이 있는 듯하다. 금세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둘은 남매인 것 같다.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여동생 비브는 오빠 조니에게 부탁한다. 오랜 시간 동안 거리를 두고 살던 남매. 그 원인에는 엄마의 죽음이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자주 보지 않았던 남매. 엄마가 아프다는 이유로 둘은 꽤나 자주 싸웠던 것 같다.


그렇게 드문드문 연락만 하고 지내던 남매. 원래 같으면 거의 먼저 연락 안 할 사이지만 오빠가 용기를 낸 것 같다. 오빠에게 사정을 들어놓는 여동생. 아마 여동생의 아들을 맡겨달라는 부탁인 것 같다.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오빠 조니. 조니는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을 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올바르게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질문하는 조니. 그렇게 세상과 인터뷰하는 조니는, 조카 제시와 함께 세상이라는 거대한 의문을 하나, 둘 씩 채워나간다.


인터뷰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조니의 질문하기와 제시 키우기다. 일단 극을 이끄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제시 키우기다. 육아 난이도 최상의 제시. 모든 9살 아이들의 특징이 잘 나타나듯 제시는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맘대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조니의 본업인 아이들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한다. 역시 초등학교 2학년이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섭다. 그런데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톡톡 튐은 영화와 조니에게 긍정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하라는 건 일단 다 안 하는 제시. 직장인 조니가 쉬고 있을 때 엿이나 먹으라는 듯 방 안에 큰 음악을 튼다. 이어 절 땐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제시의 동거 난이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가하기 시작한다. 자기한테 들어온 인터뷰 제의는 콧방귀를 뀐 조카 제시. 오히려 인터뷰어인 조니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엄마랑 왜 오랫동안 연락 안 했어요?" "결혼은 어떻게 됐어요?" 9살이라 가질 수밖에 없는 순수함을 가진 제시. 이렇게 뜨문뜨문 찾아오는 변수에 조니는 삶을 새로운 각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조니의 시각 변화와 함께 관객인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는데, 이 색다른 감정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시할 수 없던 이야기들


사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감정과 기분은 조니가 무시하면 안 됐던 내면의 상처와도 맞물린다. 왜 여동생과 교류하지 않았나. 여동생과 조니는 사실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엄마에게 치매가 생겼다는 건 남매가 예민해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자주 싸웠던 조니. 조니에게 제시는 그렇게 갖고 있던 내면의 흉터와도 관련이 있다. 이 맞이해야 했던 내면의 상처는 하나 더 있다. 사랑하던 이와 있던 이야기다. 인터뷰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직업이다. 물론 답변을 어떻게 할지는 그 사람 마음이지만 좋은 질문은 양 쪽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게 도와준다. 이렇게 '인터뷰'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조니가 떠나보내야 했던 것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의 이야기 전개는 분명한 영화의 강점이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인물이 제시와 함께 이겨내야 하는 것에 대해 의문문을 던지는 이중의 효과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상호에게 계속되는 질문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관련 있다. 사실 인터뷰어 조니는 의문이 많은 사람이다. 날 떠났던 연인, '이 직업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감, 여동생과의 갈등까지 남겨진 기억에 답을 찾아 나서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근데 이 질문의 해결책을 뾰족하게 남겨두지 않는다. 그 대신, 그 구멍을 상회할 정도의 어떤 것으로 채운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조니의 내적 성장은 아마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미괄식 영화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다. 늦깎이 삼촌 조니의 우당탕탕 육아일기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의 명대사들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제시의 매력보다 후자에 더 마음이 갔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보면 좋은 영화다. 그러나 어른들이 보고 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서 조니가 제시의 대화가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그러면 조니가 제시하게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아니다. 이는 조니가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극의 후반부에 어떤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니의 대사에서도 다시 조명된다. 


우리는 어른이다. 직장에 치일 때, 취업이 안될 때, 연애에 실패할 때, 인간관계에 질릴 때, 수도 없는 무엇에 포기하고 싶거나 혼자 일어날 힘이 없을 때 항상 숨겨야 이득이 된다고 믿고 있다. 지금 당장 글을 쓰다 말고 '나 힘들어요'를 한 2천 자 쓰면 읽는 이들이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또 세상을 향한 걱정을 주변 사람에게 전부 늘어놓기도 참 두렵다. 왜냐면 그 사람들도 같은 고민하고 사는 거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비슷한 상황 연출과 그에 맞는 설루션까지 잔잔한 로드무비로서의 역할에 300% 충실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대사는 호아킨 피닉스가 맡은 조니가 내레이션을 통해 전하기도 한다. <어머니 : 사랑과 잔인함에 대한 에세이>, <카메라맨이 할 수 있는 불완전한 목록>까지 에둘러 말하면서도 우리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냥 무작정 빛나는 삶의 위로를 전하는 게 아니다. 보다 깊이 있는 대사들, 또 배우들의 연기, 시각적으로 중요한 흑백 연출까지 영화는 뭐가 중요해서 어떤 걸 보여줄지에 대해 깊게 알고 있는 듯하다.


날 키워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마이크 밀스 감독의 <가족 3부작>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의 전작 <비기너스>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의 20세기>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또 이 작품 <컴온, 컴온>에는 동생과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앞 두 작품에서 장점을 승계하기도 했다. 두 작품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본인으로 돌아가세요" "깊은 말보다 함께 있는 것의 힘"일 텐데, 영화는 앞 두 작품과는 아주 살짝 방식으로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우선 비슷한 방식은 대사 뉘앙스의 힘이다. 영화 대사 좋다. <우리의 20세기>에서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됐어요?'라고 묻는 게 생각난다. 근데 영화가 온 힘을 다해서 그 말에 힘을 빡 주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관계를 통해 이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사실 중요한 건 여기에 있다. 말은 오래 남는다. 근데 그 말을 한 사람은 더 가까이 우리 주위에 있다. 한 번 위로가 되는 존재는 다음번에 계속 봐도 좋다. 엄청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이 문장은 우리가 놓치고 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이 '놓친 것'에 관한 영화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아주 살짝 다른 것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관한 질문을 묻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어린아이에게 물어 올바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또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의문 투성이었던 지난 과거에 조니가 대답을 하는 형식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둘은 기존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것에서 살짝 뒤집어 각자의 동심에게 질문을 요청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의문 투성이인 세상에게 지나간 일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대답을 했나? 의 답변은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이 <컴온 컴온>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아마 우리는 살아있는 평생 동안 이 질문에 끊임없는 대답을 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이 의문에 끊임없이 질문한다. 어쩌면 내가 만든 불행일 수도, 행복일 수도 있다. 이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스티븐 스트레인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건 참 질리지만 사실이다. 영화는 이런 현대인들에게 손을 건네며 '컴온!'이라 외친다. 답을 한 번 얻었다는 건 두 번, 세 번 얻을 수도 있으니 이들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었다. 괜히 <탑건 : 메버릭>과 <토르 : 러브 앤 썬더>, <범죄도시>, <헤어질 결심>에 묻힐까 아쉽긴 하다. 그래도 시원한 극장에서 이 영화와 함께 나를 만들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조커>만큼은 아니더라도 와킨 피닉스의 호연 역시 빛나는 영화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선한 힐링 로드무비를 원했던 분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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