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동 Aug 29. 2022

'선수 입장' 빼고 나머지 다 한 느낌

<서울 대작전>, 스포일러 없는 리뷰

과제 같은 느낌. 글을 쓰는 건 임무 같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재밌어서 하는 것도 있다. 창작의 재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걸 꾸준히 하는 거겠지? 재미있으니까. 재미는 인생의 엄청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잘 나가는 축구선수가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도 하는 거고. 누구는 매너리즘에 빠져 우울증도 하고 그런 거겠지. 실패 자체가 나만 기억하고 남들은 신경 안 쓴다는 속성을 일찍 깨달으면 좋은 게 많은 것 같다. 알아도 신경 쓰이긴 하지만 뭐라도 얻으면서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장르에서 뭐가 실패하면 한국영화는 분명 성장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 <헤어질 결심>과 <소설가의 영화>가 나온 것이 아닐까? 질척이는 걸 빼고 누벨바그 향 첨가한 한국영화가 좋은 작품의 자양분이 된 건 참 뿌듯한 일이다. 그래서 극장에 자주 가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세상이랑 소통하는 재미도 얻고 함께 성장하는 것만큼 뿌듯한 건 얼마 없다. 그래서 이 뿌듯함을 얻는 연장선상에서, 어떤 글에는 정말 솔직하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다들 고생하셨겠지만 아닌 건 아니니까. 평생 연예인 얼굴 보고 살 팔자도 아니고 비판받아야 할 건 오로지 감독과 제작자뿐인 걸 아니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기로 한다. 이번 주 금요일,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영화 하나를 발표했다. 엥? <베이비 드라이버> 아니야? 아니었다. 살짝 비튼 영화 하나가 공개됐다.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할 때 누구나 최악이 된다> 보고 싶다고 생각이 여러 번 들었던 <서울 대작전>이다.




혼란기 바로 직후


나라가 바뀌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신군부의 맨 위에서 군인들을 지휘했던 전두환이 물러났다. 어지러운 대한민국. 1988년이 되고 예정되어 있던 서울 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에 있다. 그런데 어지럽던지 안 어지럽던지 우리의 주인공 동욱에겐 알 바 아니다. 해외에서 외국 돈 달달하게 벌고 있는 동욱. 이제 적당히 벌었는지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귀국행 비행기를 탄 동욱. 집에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정장 입은 남자가 동욱을 불렀다. 어이! 동욱은 화들짝 놀란다. 고개를 두리번 휘젓는 동욱. 친구 복남의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아지트에 도착한 동욱. 그런데 몸을 피했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었다. 아지트에서 고기 굽고 있는데 난데없이 양복의 남자가 찾아왔다. 일당을 장악하는 남자. 남자는 자기를 소개한다. 안평욱 검사는 공항부터 동욱 일당을 쫓아오고 있었다. 금세 동욱 일당의 범죄사실을 지적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기소할 수 있어’라고 겁박한다. 그러고 미션을 전달하는 안 검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사채시장의 대모인 강인숙의 운전기사가 되라고 주문한다. 검사의 진짜 임무는 전 대통령이 어떻게 비자금을 쌓아왔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과제에 당면한 동욱. 동욱과 친구들은 임무를 해결하고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을 수 있을까?


익숙한 맛


5공화국 직후의 대한민국이 영화의 소재다. 사실 이런 맛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뤘던 소재들이다. 또 한때 복고 열풍이 불었던 때도 있었던 만큼 나 같은 90년대 후반생들도 이 시절 한국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들국화부터 이선희, 송골매와 장국영까지 국내외 문화예술계가 꽃피웠던 당시의 대한민국. 이 영화는 다른 작품과 다를 바 없이 그때 고증에 철저하다. 일단 1988년 대한민국을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소재가 가장 도입부에 등장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퇴장하고 난 후에도 외국과 교류했던 한국의 세태를 묘사하는 좋은 수였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권력에서 바로 퇴진하지 않았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후에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두 분의 대통령이 집권하고 난 후에 두 범죄자의 법적 처벌이 이루어졌던 것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이 곧바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설정의 치밀함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또 김성균 배우가 연기한 이현균 캐릭터는 군인이다. 군사정권이 퇴진한 이후 군인 출신 정치인이 권력자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위에서 쓴 부분과 비슷한 맥락으로 현실성을 덧붙인 설정이 됐다. 정치현실에 대해서 허술해 보이지만 리얼리티를 남겨둔 설정을 유지한 셈이다. 또 이 외에도 1988년 당시의 나이키 조던 시리즈나 코디 스타일, 음악, '오우삼'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등등 시각적, 청각적 고증은 고생을 많이 한 티가 난다. 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감독의 역량보다 더 한 미술팀의 열일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현대사의 단면을 잘라 구현한 설정은 러닝타임의 중반부를 돌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후술 할) 맹숭맹숭한 전반부가 끝나면 영화의 톤이 급변한다. 끔찍하게 묘사된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 영화의 설정이 좀 더 내밀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톤이 바뀌고 난 후인 이 중반부의 한 시간이 아마 감독이 의도했던 영화의 주요 포인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시대극과 스릴러의 중간지점에서 나름의 균형감각을 가지며 후반부까지 질주한다.  예고편만 보면 <베이비 드라이버>를 교묘하게 본뜬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 <서울 대작전>은 <베이비 드라이버>랑 다른 맛이다. 같은 것이라곤 운전 잘하는 주인공 빼곤 없다는 거? 오히려 <베이비 드라이버>보단 <택시운전사>의 2022년 버전에 좀 더 가깝다. 차량 액션부터 군부세력에 대한 쓴소리까지. 기본적인 틀은 나름 신선하게 설정을 잘 한 듯 보인다. 이에 힘입어 문소리라는 큰 배우의 캐스팅은 굉장히 주요하게 작동한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구는 헛스윙 스트라이크


첫 번째 시퀀스다. 유아인 배우가 내려서 어떤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보여준 제스처만 봐도 느낌이 안 좋아진다. 바로 다음, 조력자 롤을 맡은 배우가 동욱에게 문서를 전해준다. 그리고 동욱이 문서를 볼 때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채로 문서를 본다. 오케이. 이것도 살짝 올드한 느낌이 드는데 그럴 수 있어. 직후 동욱이 ‘오 마이 갓뜨’라고 말한다. 거의 3~4년 만에 ‘오 마이 갓뜨’라는 영화, 드라마 대사를 들어본 것 같다. 그리고 그 3~4년 전에도 2018, 2019년의 최근작 영화를 봐서 들은 게 아니다. <논스톱>같이 00년대 초반에 인기 있던 작품을 보다 그 멘트를 들은 기억이 있다. 뭐 영화 배경이 1988년이니까 예전에 쓰던 말을 넣는 건 별 일 아닐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고증이 다른 영화와 차이점이 될 정도로 강점으로 작동하는 영화니까. 근데 관객은 2022년에 이 영화를 본다. 굳이 이 대사가 아니어도 시대상에 대한 고증이 더 꼼꼼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올드한 연출이 제일 첫 시퀀스부터 들어가니 중반부까지의 모든 러닝타임이 헐거우며 조악하기까지 하다. 일단 유아인 배우 옆에 있는 준기 역이 “형이 여기 나가는 게 꿈이잖아요!”라며 차 엔진 소리 ‘우우웅~’을 입으로 낸다. 김무열 배우 닮은 남자다움에 가벼운 역을 하니 뭔가 안 어울리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으로 써져 있는 올드한 디렉팅에 대사 쓰는 방식까지 너무 과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 ‘그냥 과거 영화’ 느낌이 강하니 보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고루한 느낌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중반부에 무게감이 생기긴 하는데 그 무게감 중간중간마다 끊임없이 제시되니 집중을 깬다. 


두 번째도 헛스윙 스트라이크


바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간다. 동욱, 준기 형제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옆에서 복남이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첫 번째 대사. “이게 누구여. 누구누구 아니여?”다. 그리고 카메라가 복남을 가까이서 찍는다. 음.. 뭐 이상한 대사는 아니다. 그런데 좀 많이 올드하다. 1988년에 나올 법한 인물 소개가 그대로 쓰였다. 다음 장면에서 윤희가 등장한다. 박주현 배우가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내며 등장한다. 윤희는 동욱의 동생이다. 그럼 준기의 누나가 되겠지? 윤희가 준기의 볼을 꼬집으며 “우리 준기, 잘 지냈어?”라고 묻는다. “누나 보고 싶었지?” 뭔가 이질감이 든다. 너무 익숙하게 많이 봐서 이질감이 드는 느낌이다. 이 부분까지 극초반부니 일단 참고 나머지 130분을 보기로 한다.


 남매가 그렇게 오랜만에 조우한 후에 카메라는 어떤 인물에게로 옮겨간다. 모피 코트를 입은 남자가 마이크에다 준기, 동욱 형제를 환영하고 있다. 노래를 간단하게 부른다. 조명이 휘황찬란하다. 윤희 한 숨 쉰다. “저 또라이.” 남자가 대사를 말한다. “동욱, 준기 형제님. 어서들 오십시오.” 유아인 배우가 남자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슬쩍 웃는다. 남자는 자기를 소개한다. 보니까 이 인물 이름이 ‘우삼’이다. 설마 영화감독 오우삼을 오마주 한 건 아니겠지? 우삼의 바로 다음 대사를 보니 아마 맞는 것 같다. “아, 그럼 귀국 선물이 없다 이 말씀?” 어.. "이 말씀"이라고?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음. 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다. 이 기시감 때문에 인물들이 다 뻔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이기도 해서 어색함까지 느껴진다.


정확히 다섯 명의 인물 등장 신을 쭉 썼다. 이 어색한 인물 연출은 러닝타임 내내 쭉 이어진다. 이 다섯 명이 영화에 사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인물들 모두가 올드해서 첫 시작을 굉장히 이상하게 끊은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시한 인물의 내면이 중후반부까지 주요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메인 주인공은 유아인 배우가 맡은 동욱 역이다. 동욱 역에게 어떤 특성이 있어서 중반부에 이어지는 '인물을 관통하는 질문'에 그렇게 대답할 근거가 생긴다. 그런데 이 동욱이라는 캐릭터에게 이런 설명이 없다. 그냥 단지 좋게는 밝게 나쁘게는 유치하게만 묘사해서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히 이 사람들이 구면이고 예전에 인연이 있다는 것만 알기 때문에 사채업의 큰 손의 뒤를 캐는 예리함과 주도면밀함이 느껴지지도 않다. 금세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이 생각난다.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 캐릭터가 도망가고, 어머니에게도 궁색 맞은 캐릭터를 설정해 관객에게 ‘이 사람은 이렇게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묘사를 했던 것을 기억하는 관객이 많을 텐데, 이런 방식은 좀 고리타분하다고 느꼈다. 또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음악과 운전을 결합해서 베이비의 운전 실력을 묘사했던 방식과 멀리 떨어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과 괜히 비교하게 된다.


이렇게 주인공 5인방이 다 조악한 방식으로 소개되기 때문에 첫인상이 안 좋다. 캐릭터성을 강조한 액션 영화에서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초장부터 어색하니 균열이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인상은 영화 러닝타임 중반까지 내내 지속된다. 이 어색하고 따로 노는 톤은 유아인, 고경표 같은 베테랑들도 피하지 못했다.  <지옥>에서 내면에 분노를 가진 채로 운명론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이비 교주, <헤어질 결심>에서 일에 진심이지만 살짝 유머러스한 경찰을 보기엔 좀 많이 낯설다. 아. 대신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안 검사 역은 초장부터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이 인물은 극의 톤을 바꾸는 굉장히 중요한 반환점이 된다. 이때 처음 등장부터 발성과 억양으로 인물들을 휘어잡기에 극의 강약 조절을 부여하는 역할이 된다. 이 사람이 등장하면 뭔가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이다. 또 문소리 배우가 맡은 역할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이 강 회장 역은 전 대통령 부역자로서 비겁하고 저열한 인간이다. 그런데 이중적인 측면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 이 인간적인 면모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가 극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두 번째 방식이 될 것이다. 살짝 뻔한 것 같지만 당연히 어렵다. 문소리라는 큰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중압감 있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인물 연출이 이 베테랑도 비켜나가지는 못했다. 조명을 쓰는 방식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인물에게 집중이 안 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인물에게 불협화음이 느껴지는데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 부분이 평범하게 쉭 지나간다. 특히 이 인물이 극후반부에 감정연기를 하는 걸 보면 이렇게 소박하게 안 해도 될 대사들이라고 생각했다. 더 터트려도 되는 연기를 해야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텐데 인물이 느낄 감정에 비해 대사들이 죄다 간단하다. 배우가 들끓어 오르는 연기로 소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정세 배우 역시 다른 역할이 뽐내는 이질감 때문에 이 배우의 호연에 집중이 안 된다. 연기는 분명 잘했는데 뭔가 깔끔하지 못한 것이다.


3구도 역시 헛스윙


이런 식으로 인물 연출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쪽이기 때문에 긴장감이 별로 안 느껴진다. 사실 중후반부도 그렇게까지 서스펜스가 엄청나지는 않았다. 군사정권의 잔혹함이 어느 정도 사려있다 뿐이지 전체적으로 유치한 톤이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한 러닝타임의 강약 조절 실패 때문에 솔직히 많이 지루하다. 박주현 배우의 사랑스러움과 유아인-문소리-오정세 배우의 카리스마로도 덮어지지 못한 것이다. 극후반부에 인물 두 명이 감정을 드러내는 신에서는 두 배우의 테크닉이 느껴지기는 한다. 그런데 대사 중에 '엥' 싶었던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니 여기다 쓸 수는 없다. 예를 들자면 <명량>에서 "미래 후손들이 우릴 잊어버리면 후레자식들이지"를 2022년 버전으로 듣는 느낌이었다. 또 초중반부에 안 검사와 주인공 일행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장면이 있다. 이거 좀 모순적이다. '내가 소맥이란 걸 개발했다'라는 말로 퉁 치는데, 그냥 어디서 주워 들었다고 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 뻔했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 '알잖아. 내가 운전은 이찌방인 거'라는 말이 나오는데 감정 몰입이 확 깬다. 배우들의 연륜이 감정선을 끓어 올리다가 대사 때문에 중간에 끊겼다. 이런 식으로 인물과 갈등관계를 어디서 본 것처럼 설정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산만한 톤이 유지되는 건 치명적이다. 영화를 본 후세대를 지나치게 의식한 느낌? 오히려 이 느낌이 <응답하라>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크게는 꼽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그러니까 배우들이 분명 연기를 잘하는데 영화는 딱히 연기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중반부를 넘어가서 군부의 위협이 들어가는 부분부터는 보는 재미는 있는 케이퍼 무비임에도 좋은 평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중반부까지 안 보고 그냥 껐을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작전


물론 이 영화에는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유아인 배우는 그중에서도 상대 배우와 감정을 집중시키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들쭉날쭉 종잡을 수 없는 영화의 톤 중에서 이 정도의 재미도 찾을 수 있었던 건 이 배우의 경험치 덕이다. 그런데 유아인 배우의 열정으로도 숨길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바로 준기 역의 모든 것이 이상하다. 다들 들쭉날쭉 다른 영화를 연기하는 와중에서도 유독 튀었다. 지나치게 오버하는 느낌이 강하다. 안 그래도 오그라드는 영화의 톤에 오버하는 연기가 주인공 옆에 있으니 보기 어려운 영화의 난이도를 더 높인 셈이다. 그리고 배우 이미지랑도 안 맞았다. 이 배우의 다른 사진들을 찾아보면 엄청 잘생겼다. 아이돌 출신 중에서도 깊이 있게 잘생긴 미남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메이크업 방식 자체가 박주현 배우의 동생이라는 설정에 어긋나 보인다. 시각적인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고증에 진심이었던 영화가 배우 코디부터 실패하면 몰입이 안 된다는 걸 몰랐던 걸까?  잘생긴 미남 아이돌을 어깨가 좁아 보이게 코디한 건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런 불균형이 배우 본인의 책임은 아니다. 박주현 배우 같은 경우도 이 영화에서 좀 따로 논다. 몸을 쓰는 게 어색한 느낌? 근데 이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나? 그건 아니다. 아예 납작했던 인물의 개성을 박주현 배우의 그나마의 매력으로 이끌었다 뿐이지 캐릭터의 특성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윤희 역이 아니라 그냥 박주현 역 같다. 박주현 배우의 드라마 <인간실격> 잠깐 본 게 전부지만 이 분은 이런 식으로 연기했을 것 같다. 이는 신선한 얼굴이었던 박주현 배우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 뿐만 아니라 김성균 배우도 좀 연극 톤 느낌이 강하다. 이 배우가 군인 역을 맡으면 할 것 같은 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연기 잘했다. 근데 이런 연기 보려고 이 영화 보는 거 아니다. 어차피 김성균 배우 좋은 연기자인 거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럼 뭔가 새로운 게 있어야 하는데 <범죄와의 전쟁>에서 봤던 모습에서 목소리 톤만 높은 방식이라 첫 대사부터 식상하다. 이 캐릭터에서 기억에 남는 건 강 회장과의 독대 신이다. 이 외에는 그냥 '김성균 배우가 군인 역할을 맡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이 작품이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를 희생시킨 영화인 것은 굉장히 아쉽다. 케이퍼 무비에 캐릭터 개성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볼까? 감독의 영화 해석이 중심인 게 아니라 배우의 인기나 매력으로 극을 주파하니 이런 아쉬운 단점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따로 놀게 영화가 느껴지는 것 때문에 뻔한 답을 골랐던 각본이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긴장감을 넣는 연출은 했는데 서스펜스는 안 느껴지고. 어쩐지 예상대로 딱딱 이어지고. 심지어 다른 장면에서 이 배우가 이 대사를 치고 어떤 역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바로 그대로 이어진다. 연기도 어디서 본 것 같다. 이야기 흐름? 카메라 워킹? 좀 예전에 보던 방식이다. 카체이싱을 껍데기로 군사정권의 위선과 모순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착한 영화를 만드는 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2022년이다. 마석도 형사가 악당들 두드려 패고 톰 크루즈가 저세상 액션으로 관객을 800만 관객 동원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단순히 인기 있는 래퍼 섭외해서 카메오로 넣고. 연기 잘하는 남자 배우 섭외해서 원톱 주연 놓고. 역사의 흑막을 묘사해서 보편적으로 나쁜 놈 만들고. 매력 있는 배우 섭외해서 히로인 포지션에 놓고. 이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획은 많은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한국영화의 팬으로서 아쉽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마이 네임>같이 작가주의적인 성향을 유지하며 개성 있는 영상물을 만드는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전부일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의도고 뭐고, 관객들은 재미있는 걸 보고 싶어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북에서 나풀거리며 날아온 무근본 코미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