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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Nov 07. 2022

고속도로로 무작정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듯

<고속도로 가족> 스포일러 없는 리뷰



잔인한 세상


고개를 숙인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오늘도 가장 기우는 바쁘다. 열일중인 기우. 가장의 책임감은 그런 것이다. 오늘도 사회생활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 사회생활은 다른 것과는 좀 다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장모님 댁에 가는 길인데, 지갑을 잃어버려서요. 혹시 2만 원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집에 도착하면 바로 이체해 드리겠습니다." 돈을 빌리는 기우. 아니, 사실 기우는 돈을 구걸하고 있다. 지나가는 행인을 유심히 관찰해서 선해 보이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카카오페이 쓰시죠?"라는 질문은 휴대전화가 안 된다는 말로 넘어간다. 또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묻는 질문에는 "마산"이라고 얼렁뚱땅 대답한다. 사기를 칠 거면 똑똑하게 쳐야 한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난다. 하지만 기우와 지숙 가족에게 그런 건 없다. 생존은 당장 내일 걸려있는 문제기 때문에. 집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다. 옷은 당연히 없다. 의류수거함에서 아무거나 주워 입을 뿐이다. 당장 받은 2만 원으로 사는 건 컵라면이다. 짜파게티, 신라면, 뭐 그런 것들로 일상을 보내는 기우네 가족. 아내 지숙은 위태로운 일상 속에서 희망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눈앞에 있었는데. 영선은 꿈속에서 깨어난 것 같다. "아들! 그 옷 별로야. 엄마가 셔츠 사놨으니까 그거 입고 가." "아냐. 싫어. 나 이거 입고 갈래" "야! 어디가!" 영선은 아들이 떠난 집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분명히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다. 없구나. 아니었구나.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해주지 못했던 것이 해준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렇게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소리 없이 우는 영선. 아들을 기억할 수 있는 돌산에 올라 먼 곳에 시선을 옮긴다. 눈을 감는다. 떠오르는 건 일 생각뿐이다. 가구점으로 출근하는 영선. 영선은 중고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CEO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나서는 영선. 한 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딘가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한다. 갑자기 어느 곳에서 따가운 눈빛이 느껴진다. 뭐지? 음식점 출구 유리문 앞에서  아이들이 눈 빠져라 영선을 구경하고 있었다. 뭐지? 아이들의 눈빛에 마음이 가는 영선.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차 문 앞으로 간다. 어떤 남자가 말을 걸었다. 머리는 길었고 수염도 제멋대로다. "선생님! 제가 사실 지갑을 잃어버려서요. 2만 원만 빌려주시면 집 간 다음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남자의 곁에는 아까 봤던 아이들이 있다. "아빠! 우리 배고파.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아. 쟤들 아무것도 못 먹었구나. 시선이 가는 영선. 남자의 손에 2만 원을 쥐어주고 5만 원까지 줬다. 계좌번호 필요 없어요. 애들 맛있는 거 먹여요. 그렇게 잊고 집으로 가는 차를 탄다. 다음번에 만날 거라고 생각 못 했다. 마음에 담아눴던 응어리를 남자에게 푼 것뿐이니까.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기우와 지숙 가족, 영선은 다시 만난다. 다시 고개를 드는 희망. 채워지지 않던 마음속 구멍에 조금이라도 닿을 것 같은 인연이다. 이 가족(들)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좋은 스타트


일단 영화 초반부가 훌륭했다. 기우가 지나가는 행인 아무나 붙잡는다. 근데 머리카락이 아주 길어서 눈앞을 찌른다. 또 의상도 여름에 입는 린넨 셋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행인의 리액션을 카메라가 보여준다. '이거 뭐야'하는 눈빛. '빨리 드리고 오자'하는 말투까지. 이 가족의 과거 행적이 영화 후반부에 제시되기는 한다. 그런데 영화는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다. '왜 알바를 안 구하고 저러고 있지?' '어떤 사연이 있어서 저럴까?'의 질문을 굳이 하지 않아도 깔끔한 설정으로 모든 이해를 구한다. 감독의 캐릭터 이해도가 빛난 부분이다.


또 라미란 배우가 맡은 영선 캐릭터도 적지 않은 분량을 줘야 하는 캐릭터다. 초중반부를 넘어서 극을 이끌어야 하는 인물이니 만큼 이 사람의 동기부여를 보여줘야 한다. 잠깐잠깐의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이 인물의 뒷배경을 보여주는 영화. 이 사람의 회한만큼이나 중요한 건 현재의 부부관계가 어떤가?라는 질문이다. 뻔해 보이지만 사실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영화의 개성을 부여한다. 이를 위해 라미란 배우가 연기를 엄-청 잘했다. 어떤 산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라미란 배우는 스크린관을 장악하며 왜 이 사람의 후의 행보가 합리적일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다. 이 인물 영선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어두운 인물이다. 그동안의 세월 동안 아들을 잃었다는 미안함과 미련을 영화로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 그러면 러닝타임이 한 6개월쯤 될 것이다. 감정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건 전적으로 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가 얼마나 이 감정을 드러낼 것인가? 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산에서 슬퍼하는 장면, 살짝 어두워 보이는 내면, 중후반부 특정 인물과의 하이라이트 신까지 라미란 배우는 영화의 설득력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를 아주 잘 소화했다. 구체적으로 쓰자면, 영화 전체적으로 '굳이..?' 싶은 인물의 행보가 반복된다. 이 부분에 균열이 가면 영화의 전체적인 몰입감이 전부 떨어질 것이다. 이를 먼길로 안 돌아도 각본의 흐름과 연기로 구현한 감독의 똑똑함이 돋보였다.


이 사람이 이 정도였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 배우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첫 번째는 정일우 배우다. 내 기억 속 정일우 배우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연기하던 모습이 가장 마지막이다. 이 분이 드라마에서는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유지하며 경력을 이어간 것 같다. 솔직히 윤시윤 배우와 얼굴 헷갈렸다. 그 말은 즉슨 이 배우 얼굴을 오랜만에 봤다는 뜻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꼈던 점은 앞으로 정일우 배우를 선명하게 기억할 것 같다는 것이다. 정일우 배우는 많은 분들이 좋아할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 캐릭터의 특징은 아동학대를 가하는 사기범죄자라는 점과 극에서 보여주는 굉장히 큰 단점이다. 전자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 인물의 사기 행적이 절대 똑똑해서 벌이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려면 뭔가 엉성한 행동이나 표정이 돋보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일우 배우는 말투 하나하나 나사 빠진 느낌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 이 인물의 행보는 이야기 전개에서 핵심 키포인트가 된다.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며 이상한 후반부 전개에 기름을 붓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뭔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이야기 전개지만 이 배우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조조할인 티켓 값이 충분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김슬기 배우다. 초반부. 이 배우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가장 기우가 이끄는 가족이다. 지숙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게다가 가장 기우는 '어떤 특징'으로 인해 휘청거린다. 남편이 막 나가는 사기꾼이 되고 아이들이 끼니로 라면을 때워도 싫은 말 하나 안 하는 지숙. 이 지숙의 유약함은 초반부에 천천히 보여주다가 중반부가 되고 나서 특정 계기를 통해 변한다. 이 이후부터 세상의 따뜻한 손길에 감회 되며 안에 품고 있었던 단단한 내면을 세상에게 보여준다. 전반부의 연기를 후반부가 반박하는 듯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이 김슬기 배우는 중반부 이후부터, 소심하면서도 선한 내면으로 깊은 인간이자 어머니로서의 힘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지숙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중요성은 영화의 메시지와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인물이 관객과 극 중 다른 캐릭터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영화의 몰입감이 떨어질 텐데, 이 배우는 모든 감정적인 비틀기를 설명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글쓴이는 하이라이트 신에서 소름 돋았다. 


넓고 탁 트인 감옥


영화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고속도로는 영화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고속도로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당연히 자유롭다. 그런데 공간이 열려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자유를 느낄 리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기우 가족은 이 범주에 속한다. 사실 이 고속도로 휴게소가 마음에 안 들면 딴 데 가면 그만이다. 차비가 없어도 두 다리가 있으니 걸어갈 수 있다. 그렇게 위치를 자주 바꿀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세팅은 인물들에게 갑갑함을 강조한다. '고속도로'에서만 먹고 잘 수 있다는 것이 인물이 처한 입장을 부각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물 내면에 속속들이 박혀있는 심리 묘사가 더 두드러지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영선이 뭔가를 먹는데 기우의 아이들이 눈이 빠질 것 같이 쳐다본다. 이런 묘사는 이 인물들이 자유롭기 때문에 더 답답한 게 두드러지는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장면이 있다. 또 어떤 장면에는 드넓은 주차장에 텐트 하나 덩그러니 있다. 이런 공간 세팅이 가장 강화되는 부분은 기우 가족이 휴게실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하는 장면이다. 이런 고속도로 휴게실이란 설정은 구걸이라는 행동을 묘사하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면까지 묘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의 대비는 영선의 가구점으로 치환된다. 영선의 가구점은 당연히 고속도로 휴게실보다 좁다. 또 한 장소에 중고 가구들도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뭔가 촘촘해 보인다. 또한 영선의 가구점의 어떤 공간에서 인물들이 굉장히 중요한 행동을 한다. 이 방도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럼 당연히 답답해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고속도로 휴게실이 인물의 처지를 옥죄어오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는 오히려 캐릭터들의 입장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소재가 된다.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서 무얼 하는지를 보면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과도 닿아있다. 이런 좁고 넓음의 아이러니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닿아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혈연만큼이나 정서적인 유대감이 우리가 살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가족의 대비되는 상황이나 이미지가 계속 반복되는데, 영화에서 이를 빼먹지 않고 본다면 쉽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닿지 않을까 하는 글쓴이의 생각이다.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이렇게 좋은 점도 뚜렷한 영화지만 사실 아쉬운 부분이 더 크다. 일단 기우 캐릭터다. 이 기우 캐릭터는 특정 계기를 지점 찍고 1,2부로 나뉘었을 때, 첫 번째 장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1부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세팅은 좋았다. 겉으로 센 척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대놓고 약한 인물의 대사와 서사로 잘 넘어간다. 중반부가 된다. 이 인물은 캐릭터에게 응당 정해진 섭리를 따라가는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를 거부한다. 이 거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무리 영화라도 그렇지 좀 너무했다. 핍진성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런 문화예술매체에서, 아무리 가상의 세계라도 수용자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에 대한 단어다. 이 핍진성이 아예 무너지는 정도였다. 그렇게 인물은 어떤 행동을 여러 장소에서 돌아다니면서 계속한다. 그런데 이를 제지하는 시도 자체가 없다. 영화에서 특정 집단이 무능력하게 묘사되는 건 흔한 클리셰지만 이 정도면 뻔한 정도를 넘어서 단체로 태업하나? 같은 느낌이다. 아니 그렇게 전반부에서 온갖 방식을 보여줬으면서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어떡해? 


이 인물의 서사가 영화의 흐름을 깨는 건 후반부에 특히 그렇다. 인물들의 사정이 변하면서 각자 입장을 보여주는 선택을 한다. 여기까지는 굉장히 합리적이다. 또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렇게 영화가 같은 피만큼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사족을 붙인다. 영화 형식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신이 있다. 이 신에서 한 인물이 벌이는 모든 행동이 다 이상하다. 그냥 단지 그 이미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깔아뭉갠 것이다. 영화 사건의 인과관계도 어긋난다. 동선도 이상하다. 앞에서 썼던 핍진성의 측면에서도 아예 어긋난다. 영화 전개뿐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인 '유대감'이라는 것과도 잘 안 맞는다.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때 여러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가지각색으로 갈리는 영화의 역할이지만 분명한 것은 기우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해야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될까?라는 부분이다. 글쓴이는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생각해봤다. 이 기우 같은 사람이 우리 현대사회에 있을 때, 과연 이 영화의 방식이 합리적일까?를. 캐릭터를 가학적으로 사용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정일우 배우의 호연으로 더 두드러지지 않았다 뿐이지 굉장히 과한 시선이 돋보였다.


가족의 의미를 되묻다


이 글을 쓰는 글쓴이나 독자분들이나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가 있을 것이다. 글쓴이도 있다. 오늘 특별한 초대장을 받은 것도 그 영향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또 그만큼 이 마음들을 베푸려고 한다. 반대 측면에서도 이를 바라볼 수 있다. 가족에게 굉장히 큰 상처를 받게 되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특정 인물에게 깊은 신뢰를 보내게 된다. '영원한 인간관계는 없다'라는 말은 사실 내적으로 모순을 품고 있다. 그 마저도 영원한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관계에 대해 영화는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가진 상처는 무엇인지. 이 상처가 나의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 상처가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타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따뜻한 손을 내민다는 것이 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약한 사람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지. 영화는 두 가족을 병치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에 김슬기, 라미란, 정일우, 백현진 네 배우의 뛰어난 호연으로 사람들을 몰입시킨다. 그러나 이 영화가 새롭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올해 개봉한 <브로커>에서도 상현, 동수 캐릭터의 인과응보가 철저했고, 소영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하면서 유사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묘사한 것이 기억에 선명하다. 이 뿐인가? <매그놀리아>의 OST를 차용해서 용서와 회한에 대해 다룬 것도 영리한 선택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브로커>가 과연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여줬던 클래스를 볼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상한 연기 디렉팅. 몇몇 지나치게 자극적인 대사들, 막내 동생은 영화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까지 그가 <어느 가족>에서 우리가 봤던 인물 세팅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조악함이 영화에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는 <브로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가학적인 캐릭터 세팅이 아니더라도 영화는 하고자 하는 말을 더 전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후반부를 들어내도 전체적인 흐름에 어떤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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