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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an 29. 2023

'충무로의 또 다른 시도'라는 말도 이제 식상해

<정이> 스포일러 없는 리뷰


동상이몽


멀지 않은 미래의 대한민국. 현재 인류는 위기 속에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올라간 해수면. 인류는 우주를 뒤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 인류가 그곳에 붙인 이름은 ‘쉘터’다. 80여 개의 쉘터를 만든 인류. 시간을 들여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쉘터 중 8,12,13가 스스로를 ‘아드리안’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전쟁을 벌이는 인류.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이 아드리안과 인류의 전쟁을 위해 자원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지구. 전설적인 군인 윤정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봇 병사들이 떼거지로 몰려오고 있다. 힘든 싸움을 펼치는 정이. 부수고 뜯었다. 로봇들을 두들겨 패는 정이. 그런데 갑자기 정이가 정지됐다.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알고 보니 정이는 AI였다. 인류는 실존인물이었던 정이를 AI로 개발하고 있었다. 이 인간만 아니었어도 마지막 작전이 성공했어. 투정하는 과학자들. AI인 정이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인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한 사람만 다르다. 과학자 중 서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혼자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이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익숙한 연상호 유니버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싶으면 맞다. 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같이 보인다. 우선 영화의 근본적인 장르 설정 두 개는 ‘디스토피아’와 ‘그 세계관 아래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디스토피아적 세팅은 <반도>에서 봤었다. 좀비가 인류의 일상을 파괴시켰다가 영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었던 <반도>. 많은 분들이 감독의 전작 <부산행>에서 봤던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뭔가 나사가 빠진 좀비들에게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좀비가 들어가는 장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냥 소설 보는 셈 치고 봤다. 그런 것 때문인지 그냥 아무 무리 없이 봤던 기억이 있다. 이때 극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나름 탄탄하게 잘 묘사했던 기억이 있다. 이 디스토피아적인 묘사는 살짝 다르지만 비슷한 결이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과도 이어진다. 사실 <지옥>의 공간적 배경인 곳은 완전 현대적인 대한민국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드라마의 설득력에 있어 가장 중요했을 ‘그것’ 묘사가 좋았다. 처형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이 덕에 많은 분들이 연상호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로 <지옥>을 뽑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하던 경험치는 역시 어디 가지 않는다.


‘세계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동’ 역시 많이 봐 온 것의 연장선상이다. 우선 <지옥>에서 이 특성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 드라마를 생각해 보면 인물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소개되는 선에스 끝난다. 극 중 범죄집단인 화살촉이 해체 위기를 겪긴 하지만 짠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왜 ‘그것’이 등장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이는 곧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이 세게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서울역>이나 <부산행>에서도 극단적인 세팅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핵심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연상호 감독은 이런 작품세계의 연장선상을 이 <정이>에도 끌고 왔다.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방식을 보면 이 미장센의 힘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뭔가 축축하고 처지는 색감을 바탕으로 로봇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야기에 몰입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끔 보여준다. 역시 이런 SF 장르는 좀 있어 보여야 한다. 영화에서 주요한 활동반경이 되는 장소는 또 선명하지만 익숙한 맛으로 잘 만들어냈다. 


보고 또 보고


영화에서 느껴졌던 가장 첫 번째 단점은 이걸 또 봐?라는 점이다. 글쓴이가 연상호의 영화를 이 것 하나만 봤다면 ‘볼만했다’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상호의 작품 세계를 몇 작품 봤다. 이런 입장에서 그의 <정이>가 신선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정이> 이거 <부산행>이랑 <반도> 합친 것 아닌가? 이야기 형식은 <지옥>을 빌렸다.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가질까? 바로 주인공들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 아래에서 인물들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을 묘사한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이 과정에서 품고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공략한다는 점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뭐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신선하게 전달하면 색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기존 작들이랑 비슷하니 영화에서 신선하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뭐 이렇게 배경이 인물들과 딱딱 맞아떨어지게 설정이 꼭 되라는 법은 없다. 단순히 전작 <지옥>만 봐도 그런 세팅 아래에서 하고 싶은 것들 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잘 짜면 기획의도에 대한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가 굉장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줄거리를 전개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윤정이가 로봇들과 싸우는 액션 신이다. 이 액션 신은 정이가 AI라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이다. 그런데 이 이후의 장면들이 좀 매가리가 없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인물들이 품고 있는 속사정이 극에서 이야기의 키포인트로 묘사된다. 이걸 처음부터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이야기를 전개할 때  에피소드처럼 삽입되는 장면들이 맥이 끊긴다. 이는 어떤 인물의 존재감이 큰 원인이 된다. 안 그래도 본 연상호의 세계관에 균열까지 가는 연출이 들어간 것이다.


초 치는 캐릭터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는 류경수 배우가 맡은 상현 역이다. 이 상현 역은 초반부부터 계속 나오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야기의 행동대장격 악역 정도로 극에서 포지션을 잡았다. 이 인물의 작중 행적이 너무 작위적으로 짜였다는 것은 둘째로 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 썼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인물이 (나름 자기 딴에는) 웃긴 대사를 하는 장면이 몇몇 있다, 일부러 불쾌한 골짜기를 유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안 재미있다. 또 말이 너무 많다. 극에서 서현의 감정선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사람 때문에 신경 쓰여서 집중이 안 된다. 이 재미없는 유머는 후에 어떤 인물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키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이 키포인트가 영화의 내적 논리에서 생략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냥 영화에서 '내가 그렇게 했다' 이 한 마디만 해도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떡밥 수거로 연출적인 쾌감을 주고 싶었던 걸까? 


이 외에도 특별출연 정도로 등장한 한 캐릭터와 성적인 코드가 들어가는 방식은 도식적으로 뽑아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 인물이 좀 중요하게 나올 것 같이 하고 별 영양가가 없었다는 점이나 악랄한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은 불쾌한 골짜기만 두드러지고 영화에서 별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현 외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 중 많은 분들이 그럴 것 같고, 또 글쓴이가 좋지 않게 생각한 것은 역시 ‘이 소재’다. 이 요소가 없으면 넷플릭스한테 투자를 못 받나? 그런 것도 아닌 거 같은데? <부산행>에서 이걸 넣었고 상업영화로서의 고점이 여기 있었으니 유사한 것을 넣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정이>가 이 요소에 임팩트를 주기엔 인물들과 배경이 큰 관계가 없다는 점이 역효과로 느껴진다. <지옥>은 감정적으로 과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라는 말도 이제 식상해


<승리호>라는 작품이 공개되고 난 후의 반응이 생각난다. 아마 씨네 21이었나. 처음 발표되고 나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솔직히 기대했다. 뭐 한국영화에서 SF를 새롭게 시도해서라는, 뭔가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영화와는 맞지 않아 보였던 외국인 배우들이나 이상한 대사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후반부 신파극은 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뭐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글쓴이는 이런 이유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SF 세계관을 설명하는 비주얼은 잘 뽑았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남매의 집>과 <짐승의 끝>으로 기본적인 연출력을 보여줬던 건 우연일까? 경험치가 있는데도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초반 평가가 좋게 나온 게 나만 몰카 찍는 줄 알았다.


이 감상은 2023년에도 이어진다. <지옥>의 연상호는 뭔가 달랐다.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르게 광기가 보였다. 오. 내가 아는 연상호의 연출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 이야기 전개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식상하지 않고 오히려 신선했다. 유아인, 박정민 두 배우의 열연이 이에 힘입어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이 <정이>는 그를 상회할 정도의 단점만 느껴진다. 이제는 모녀간의 관계를 강조한 드라마를 좀 많이 본 듯하다. 인간사의 기본(?)과도 같은 모성애. 작년에 모든 것을 죄다 때려 박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있었다.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런데 어떻게? 의 관점에서 다른 방식을 썼다는 것이 영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이>는 sf 시각화 방식도 연상호 영화의 연장선상이고, 많이 상투적인 모성애 모티브까지 매크로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신선한 시도가 좋았다' 혹은 '외국에서 시청자들이 많았다'라는 말을 할 것 같다. 글쓴이는 좀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정말 이 시도가 신선할까? 심형래 감독의 <디 워>부터 들렸던 이야기가 보고 또 보고 반복되는 것이 이젠 좀 진부하게 느껴진다. 결정적으로 한국 영화에서 신선하다는 말이 그냥 일반 관객들에게 얼마나 유의미한지 의문점이 든다. 외국영화든 한국영화든 그냥 똑같은 영화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는 김현주 배우만 한 듯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섭>에 대한 우려는 접어도 될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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