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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un 12. 2023

담는 그릇은 예쁘지만 정작 음식은 상해있는 느낌

<그 여름> 스포일러 없는 후기



피할 수 없던 공 하나


유달리 말이 없었다. 이경의 고등학교 생활.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았다. 오늘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왠지 자세가 굽은 이경. 그녀가 뭔가 기가 죽은 듯한 느낌을 풍기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날아온 공. 땅만 보고 가던 습관이 원인이 됐다. 안경이 부서졌다. 후다닥 달려오는 수이. "괜찮아?" 수이는 운동을 꽤나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수이.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 듬직한 카리스마에 이경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본 두 사람. 거짓말같이 두 주인공의 인연이 시작됐다.


미안했던 것일까. 수이는 이경이를 자주 찾아갔다. 딸기우유를 가져갔던 수이. 그렇게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뭔가 첫 만남부터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직관은 금세 사실이 됐다. 사랑에 빠진 둘. 2002년 월드컵 전후의 시간적 배경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슬아슬한 첫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 사실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수이는 실업팀 축구선수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경이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 다른 길로 들어선 두 사람. 과연 둘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소설 원작과 애니메이션


일단 영화의 가장 큰 특성 두 개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과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 이 영화는 ‘쇼코의 미소’의 원작자 최은영 작가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 전부를 읽어본 건 아니지만 ‘쇼코의 미소’는 기억난다. 섬세한 필체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동선을 형상화한 능력은 최은영만의 문장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영화 군데군데 이 최은영 작가의 시각화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영화의 각색이 이 인물 간의 내면묘사를 얼마나 잘 살렸는지는 별개로 두고, 이야기의 구성이 인물의 내면묘사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서사들이 전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섬세한 문장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 개 있었다. 또 최은영 작가에게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받았던 걸까? 아쉬운 이야기 전개와는 반대로 반짝이던 대사 몇 줄이 있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장르적인 특성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직접 그린 작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어 시각적 쾌감을 전달하는 데 있어 모자람은 없다. 특히 영화 초반부 두 사람이 싹트는 과정에서 학교를 묘사하는 방식은 대단했다. 여름의 풍광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로맨스적 특성이 계절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왔다고 볼 수 있는 정도다. 대사의 문장력만큼이나 큰 영화의 강점이었다. 물론 후반부에 겨울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전체적인 색감을 활용하던 것이 두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뽑을 수 있다.



두 사람


사실 글쓴이는 소설 원작이라는 점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특성을 활용한 시각적 쾌감 말고 영화의 강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장점으로 느꼈던 것 중 몇 안 되는 것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여기서 왜 두 사람이 좋아하고 뭐 딜레마가 있고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보다 본론만 딱 보여주는 전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로맨스 장르 영화에서 여운을 남겨주기 위해 이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핵심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난 다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에 사족을 붙이면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 ‘소수자와 다양성’에 영향이 갈 수도 있다. 이야기의 응집력이 딱 안 붙는 것이다. 초반부 이후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별개로 두고 이 선택은 감독이 좋은 수를 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물 세팅에 대해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영화는 퀴어 로맨스물이다. 퀴어 로맨스라는 장르적인 세팅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캐럴>이나 <해피 투게더> 같은 영화도 퀴어 장르로서 로맨스 걸작으로 우리의 곁에 남아있지 않나. 두 영화에서 퀴어 로맨스라는 인물 세팅이 강점을 가졌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설정이다. <캐럴>에서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던 역할은 입장차이를 보여주되 내적인 설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특정 이미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에 집중해서 인물을 보여줬던 느낌이었다. 특히 이 <캐럴>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두 장면은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만 보여주고 이미지에 편승하지 않았다. <해피 투게더> 같은 경우는 보영이 약간 여성적인 느낌이 있긴 하지만 후반부까지 가면 입장이 전복된다. 이는 영화의 핵심 소재인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소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연출이었다.


이 <그 여름>은 좀 진부한 이미지들에 기대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원작이 그렇다? 원작이 그런 결이라고 해도 각본가에겐 각색이라는 것이 있어서 딱히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첫째. 수이는 운동선수다. 이경은 소심한 인물이다. 전형적으로 안경을 쓰고 더 패턴화 되어있듯이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경. 왠지 우리가 아는 로맨스물의 캐릭터성을 그대로 쌓아가고 있다.  수이는 여성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던 스포츠 선수라는 점과 쇼트커트 헤어스타일로 남자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데 이경은 전형적으로 약한 인물로 묘사했다. 이게 퀴어 로맨스에서 품을 수 있는 섬세함이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너무 대놓고 성격 특성을 강조해서 상투적으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성별만 여자로 설정하고 운동선수라는 세팅을 갖다 놓으면 여성성을 탈피하는 서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걸까? 두 사람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 부분을 아쉽게 생각할 만하다. 그리고 수이의 파트너 이경의 내면묘사 역시 평면적이라는 점이 아쉽다. 뭐랄까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을 가질 수 있던 지점 중 하나는 이경의 감정선일 텐데 내내 영화 후반부까지 이 부분을 직접 설명하고 있어 느낌이 잘 안 산다. 이 내용도 문제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아쉬웠던 것이다.


다 짜여 있는 듯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두 개는 수이와 이경의 사랑이야기이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다양성 문제다. 이 중에서 영화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연출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영화는 이경이가 대학을 가는 시점을 기점으로 찍고 1,2부로 이어져 있다. 이 다양성의 측면에서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소재들을 군데군데 넣어서 이야기에 종합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서 인물들이 약간 희생된 감이 있다. 우선 1부. 어린 이경이가 누군가에게 폭언을 듣는 장면이다. 이때 이 시기에 있던 사람들이 이 단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알고 있냐?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이 장면이 주는 전달력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두 사람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작동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눈치’는 영화에서 소모적으로 툭 던져진 느낌이 강하다. 특히 수이의 경우 역시 이경처럼 전형적인 학교생활을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많은 학생들 중에 그걸 다 짚어낼 사람이 만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높을까?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간다. 2부에서는 두 사람의 공간을 바꾼다. 공간을 바꿈에 따라 두 사람이 어떤 장소를 알게 된다. 여기서 연극이 벌어진다. 이 연극의 의미가 극 중에서 비중이 적지 않다. 나름 중요하게 보여주는데, 정작 여기서 제시되는 연극의 내용이 과연 영화의 핵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다. 엔딩이 약간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이 연극 파트가 없다고 해도 엔딩까지 가는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두 사람의 로맨스가 연극에서 다루는 토픽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다. 왜 이 부분이 들어갔을까? 영화에서 다루고 싶었던 것이 과연 선택과 집중을 골라 만들어진 것일까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다. 후술 하겠지만 각본 상에서 어떤 인물이, 또 특정 사건이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소모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게 로맨스의 장르특성이랑 아~무 관련이 없으니 이런 이면에 깔려있는 창작자의 관점이 몰입이 안 되는 작위적인 느낌만 든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아마 많은 분들이 가장 큰 단점으로 뽑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글쓴이는 이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배우들의 연기다. 목소리 톤이 다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아지는 듯한 사운드 연출은 영화의 분위기가 축축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경이와 관련된 목소리 연기는 안 그래도 평면적인 인물 연출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빛을 잃어버린 이야기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다. 주인공 둘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품은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글쓴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과연 이 영화가 사랑 영화로서 뛰어난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있을까?라는 점에서는 솔직히 전혀 이입되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부에 다다라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결론 때문이다. 2부의 이야기가 내팽개쳐져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인물의 행보를 동성애라는 소수자 코드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냥 변명에 가깝다. 이 영화가 성소주자들에 대한 존중과 로맨스라는 두 가지 코드 다 놓쳤다는 나의 의견도 여기서 온다. 사랑이 왔다가 떠나간 자리는 로맨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되어 왔다.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장난과 관련된 시퀀스,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삭제라는 소재, <팬텀 스레드>에서 습관과 사랑이라는 양면성, <박쥐>에서 ‘빨아먹어’야 이뤄지는 로맨스까지 이 부분이 로맨스 영화에서의 승부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61분이라는 러닝타임 때문인지 그렇게 둘이 행복했다는 몰입이 쉽게 이뤄이지 않는다. 러닝타임이 짧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군데군데 조악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우선 이경이의 외적 부분에서 남들과 다른 특성이 있다. 이거 로맨스에서 중요할까? 전~혀 중요하지 않는다. 감정선이 얕은 것이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인물 설정이 조악하다고 느껴본 적은 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소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것이 이 사랑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책으로만 읽으면 유효타로 작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관련된 부분이 진부하다고 느껴진다. 또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공간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경이가 살던 곳이 어디인가? 에 대한 논의가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서 이 장소에 대한 딜레마가 굳이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점은 아쉽다. 이 공간과 관련된 딜레마가 아니더라도 수이의 입장이 확 반전되는 사건이 있다.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의 리얼리티는 축구를 어느 정도 아는 글쓴이 입장에선 약간 갸웃거리게 되는 장면이었다. 이 폭력적인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했을까? 영화의 기본 세팅을 깰 정도로? 이런 식의 ‘여성성이 아닌 것’에 대해 태클을 거는 사회 묘사가 한 번이 아니었다는 점은 말하는 방식의 조악함이 느껴졌다.


시도'만'좋은 것


글쓴이는 이렇게 이 <그 여름>이 장점보다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작품이라고 봤다. 특히 참을 수 없었던 건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인 척한다는 셈이었다. 물론 이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말에 반대 입장을 펼치고 싶지 않다. 연극에서 다뤘던 소재는 한국에서 더 심화된 채로 논의될 필요가 있고, 성소수자라고 기본권이 파괴되는 일은 많이 불합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여성성이라는 핑계로 사람의 역할이나 기댓값이 달라진다면 그 역시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영화가 아름다운 작화로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미학적 가치가 올라가고 그럴 일은 없다. 영화는 로맨스영화로서의 귀결이 약하기 때문에 메세지적인 측면의 설득력에 영향을 끼쳤고, 반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로맨스물로서의 장르특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완성도에 금이 갔다. 이 영화들 둘러싼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은데, 글쓴이는 <해피 투게더>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캐롤> 같은 걸작들이 소수자들에 대한 친밀도를 높여놓은다는 점에서 작품이 갖고 있는 한계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단순히 그림체만 예쁘고 아름다워서 좋은 영화가 아닌 이야기의 구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작품이 탄생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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