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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Mar 10. 2024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만났던 너를 24년 만에 만났다

<패스트 라이브즈> 스포일러 없는 리뷰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어딘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나영(성인 그레타 리/아역 문승아)이다. 외로운 삶. 어린 나영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영에게 기댈 수 있는 그늘이 있다. 바로 같은 학교 친구 해성(성인 유태오/아역 임승민)이다. 사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둘이 너무 어렸던 탓일까 마음을 꺼내는 것이 서투르다. 풋풋한 첫사랑이 영원하지는 못했다. 이민을 준비하는 나영 가족. 그렇게 해성이 나영이를 잊으면 다행이겠지만 그에게 첫사랑을 잊는 건 쉽지 않았다. 늘 언제나 도망가기만 하는 내 사랑. 12년을 걸쳐 다시 만나고 싶어 연락을 건넨다. 지지직걸리는 스카이프. 그리고 노트북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뜬다. 나영이의 얼굴이었다. "안녕?, 잘 지냈어?"


넘버 11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수도 있구나' 다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에 곳곳이 셀린 송 감독이 자라온 환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세팅이 무엇일까? 바로 이민이다. 나영과 해성은 이민을 떠났기 때문에 서로 이별했다. 그 이민에 앞서 설정된 가족관계 묘사가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나영 부녀 중 아버지는 영화감독이다. 실제 셀린 송 감독의 부친이 <넘버 3>의 송능한 감독이란 걸 생각해보면 영화가 이런 요소들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방식은 여러 군데 곳곳에 박혀있다. 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데뷔하기 이전에 셀린 송 감독은 연극 각본을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영이에게 여동생이 있거나 백인 남편이 있다는 점도 셀린 송 감독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백을 비추는 카메라


이 영화의 강점은 감정전달에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왜 여유가 느껴질까? 생각해보면 셀린 송 감독이 이 장면들을 잘 이해하고 전개하는 것 같다. 어떤 장면이 특히 그랬을까? 이건 영화의 중반부 기점 찍고 이후 모든 장면이 그랬기 때문에 구구절절 다 쓰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쓰자면 영화는 인물의 정서를 전달할 때 여백을 많이 둔다. "해성!"부르는 나영. 그냥 스피디하게 전달할 것 같지만 부르기 전에 해성이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빠르지 않게 전개한다. 대신 해성과 나영을 연기하는 유태오 / 그레타 리 배우의 모습을 길게 보여줄 뿐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여도 사실 이런 장르영화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다. 글쓴이는 왕가위의 영화들이 생각났다(물론 왕가위같은 미장센을 구사하고 있지는 않다). <중경삼림> 2부의 엔딩에서 두 사람과 눈빛만을 보여줌으로서 그 나머지의 분위기를 관객이 생각하게 만드는 연출을 구사하는 것이다.


12시간짜리 시차


또 영화의 카메라를 통해 리듬을 변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두 사람의 시차다. 이 시차라는 점은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굉장히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연한 것도 영화 안에서 곳곳에 다 들어가있다. 우선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 자체가 시차를 체감하기 때문에 인물이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두 사람이 스카이프로 대화하는 것 역시 두 사람의 시차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후 노라와 해성이 직접 만나 나누는 대화들도 두 사람이 이젠 명백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전개되는 내용이다. 가령 '회전목마'와 관련된 부분이 먼저 생각난다. 회전목마가 뭘까? 어렸을 때는 타기 쉽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타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그런 것이다. 이 회전 목마 앞에서 두 사람의 옛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장면은 영화가 이 모티브를 활용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인물의 내면에서도 시차를 활용한 부분이 있다. 나영이는 어떻고, 해성이는 또 어떻고하는 부분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의 나영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묘사됐는지가 관객이 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을까?를 가로지르는 부분인 것 같다. 그 땐 그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뀐 무언가를 '패스트 라이브즈'로 표현한 것이다.


귀책 사유 제로


이 영화에서 다른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섬세함이다. 이 영화가 멜로로서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결핍과 현재가 무엇인지 딱 직관적으로 들어온다. 우선 나영이라는 인물은 시놉시스만 읽어도 이 인물이 처한 상황이 뭔지 알 것 같다. 나영이라는 인물은 이름이 두개다. 나영이라는 한국 이름과 노라라는 미국 이름이다. 이 두 이름만 봐도 이 사람에겐 어떤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거'를 다룬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이자 '전생'이라는 제목과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 이 인물에게 해성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이야기 안에서 다 제시되는 편이다. 나영이의 어린시절에 대한 초반부의  중요한 부분이라 다 쓸 수는 없겠으나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가 왜 중요할까?를 생각하면 관객 분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해성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셀린 송 감독의 사려깊음이 돋보인다. 글쓴이는 이 영화에서 해성이를 이런 인물로 표현한 것이 멜로 장르물로서의 특징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도 있지만 다른 의도도 있다고 봤다. 이 인물은 행동이 서서히 바뀌면서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이야기의 진주인공이 왜 해성처럼 느껴질까?라고 하는 부분이 여기에서 왔다. 이를 위해 아름답게 인물을 설정한 셀린 송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느껴지지 않을 수도


이렇게 섬세한 디테일을 살린 <패스트 라이브즈>지만 단점도 분명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없게끔 기획됐다. 왜? 이 영화가 다루는 핵심 단어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질리도록 들은 단어다. 심지어 노래도 있다. 어느 종교를 믿는 분들에겐 귀에 딱지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단어를 두 사람의 삶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 이 <패스트 라이브즈>다 하더라도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약간 진부하게 느낄 수도 있다. 이게 또 지금 영화를 개봉하는 시대적인 맥락과도 관련이 있다. 아카데미에서 각본상, 작품상 후보군에 올랐다고 해서 한-껏 기대하고 가신 분들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정서에 대해 공감하고 본다면 충분히 감동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성 역을 맡은 유태오 배우의 연기를 비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노라의 입장에서 과몰입하고 봐서 그런가 그게 그렇게 드러나는 단점은 아니었으나 솔직히 유태오 배우가 한국어를 잘하는 분은 아니라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글쓴이는 표정을 통해, 말투를 통해 보여주는 내면 연기 하나만큼은 이 영화를 견인하는데 있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헤어질 결심>에서 이 주임 등장신으로 임팩트를 주던 그 모습이 이 <패스트 라이브즈>에서도 느낄 수 있다.


뜨겁게 뜨겁게 안녕


이 영화를 만든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글쓴이에게 있어 ‘새롭게 시작한다’라는 의미는 시차와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 간극을 두는 것. 그렇게 함으로서 지금의 나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 것. 그거야 말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사는 것이다. 동시에 나에게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주는 것이다. 영화는 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위해 마음의 도움닫기를 서서히 만든다. 글쓴이가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이 친절함에 있다. 왜 이별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왜 의미없지 않았는지. 현재를 가로지르는 선택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는지. 영화는 해성의 내면을 따라가 나영을 거쳐 노라에게 도착하며 깊고 따뜻한 무언가를 전해준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유태오 배우는 열연을 펼친다. 대표적으로 이 영화의 중심 부분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회전목마 신에서는 이 인물이 그동안 품어왔던 그리움을 표정으로 보여준다. 네가 그리워라고 주절주절 떠드는 것 없이, 단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응축한다. 아마 유태오 배우가 이 감정에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또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어디에선가 대화하는 신이다. 여기서 해성은 영어에 서투른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이 장면의 연기가 섬세하게 살아있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대충 눈치로 넘어가는 장면이 몇 있다. 여기서 하는 눈빛이나 제스처를 보면 '이 분이 실제로 영어를 못하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인 유태오 배우는 영국과 미국에서 연기를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기로 이 부분을 돌파한 셈인데, 유태오 배우가 연기에 얼마나 이 장면을 잘 이해하고 있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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