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올까, 그때의 내 마음과 똑같을까

<만약에 우리> 스포일러 있는 리뷰

by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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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프로그래머 지망생 은호(구교환)다. 버스 터미널이었다. 북적이던 터미널. 딱히 시선 둘 곳이 없었다. 그러던 은호의 시선에 들어오던 한 사람이 있었다. 터미널 뒤에서 담배 피우던 정원(문가영). 은호의 시선이 고정되기 시작한다. 마음에 든다. 그래도 먼저 다가갈 용기는 없었다. 혼자 되뇌던 은호. 버스 좌석에 아까 봤던 여자가 앉았다. 말 거는 은호. “거기 제 자리인데요” “아 그래요?” 순간 은호는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아 아니요, 거기 계세요!” 정원이의 옆에 앉은 은호. 바로 옆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기에 정원이는 은호가 그리던 그림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설마 나 그리나? 은호가 재미있는 정원. 두 사람은 그렇게 서툰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같은 비행기에서 만난 두 사람. 두 사람이 오래 그리던 만남이 이뤄졌다. 용기 내 말을 건넨 은호. 잘 지냈냐는 안부부터,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냐는 말을 지나, “만약에, 우리가 그 때…”에 도착한다.


개성과 색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화면 구성이다. 이 영화는 각 인물이 지닌 고유한 색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며, 그 색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화면은 인물에게 충분한 비중을 할애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그 전략은 분명해진다. 은호와 정원이는 모두 셔츠를 입고 등장하지만, 그 색은 미묘하게 다르다. 은호의 상의는 초록, 정확히는 청록 계열에 가깝고, 정원이는 붉은색이 들어간 체크 셔츠를 입고 있다. 이너 역시 대비된다. 은호는 회색 티셔츠에 붉은 프린팅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고, 정원이는 초록색 타이다이 무늬가 들어간 나시를 입고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어긋난 이 색의 조합은 이후 두 사람의 감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암시하는 동시에, 첫 만남부터 이미 존재하던 간극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회색이라는 색은 특히 중요하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 편집하며, 현재의 시간을 회색과 흰색, 검은색 위주의 무채색으로 표현한다. 이는 현재의 서사에서 두 사람의 생기를 의도적으로 덜어내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과거 장면들이 지닌 감정의 밀도를 더욱 또렷하게 부각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색과 빛은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인물들 사이의 애정과 그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지를 시각화하는 중요한 언어로 기능한다.


이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과도 이어진다. 은호가 정원이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인데, 이때부터 빛은 두 사람의 관계를 따라 움직인다. 은호의 자취방에서 함께 월드컵을 응원할 때, 사귀기 전이지만 광장에서 새해를 맞이할 때, 짝사랑이 이어지던 주유소 장면에서 정원이가 입고 있던 의상까지, 화면은 붉은색이나 노란색처럼 채도가 높은 색으로 채워진다. 사랑이 가장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줄 때에는 붉은 배경 속에 비슷한 톤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존재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빛은 이처럼 인물들 사이의 애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닌 생동하는 삶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러나 이 빛이 차단되는 순간이 등장한다. 사랑을 고백하던 장면과 정확히 반대되는 동작으로, 정원이가 열었던 창문을 은호가 닫는 모습이다. 이후 정원이는 회색 후드집업을 입고 비가 내리는 거리, 회색 아스팔트를 지나 지하철로 들어간다.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정원이의 모습은 두 사람의 사랑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색과 빛으로 생동하던 감정은 다시 무채색의 현재로 돌아가며, 영화는 사랑의 소멸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시각화한다.


이러한 색과 빛의 사용은 촬영 방식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 영화는 부감 쇼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이는 인물을 명확히 내려다본다면 이 영화의 생동감과 정확히 대치되기 때문에 내린 선택으로 보인다. 대신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과 표정 가까이에 머무르며, 그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이는 인물을 판단하거나 해석의 대상으로 고정하기보다는, 특정 순간의 감정 상태를 함께 바라보는 방식에 가깝다. 색과 빛으로 인물의 생동감을 강조하는 이 영화의 미장센은, 이러한 촬영 선택을 통해 인물을 평가하기보다는 감정의 흐름 속에 놓아두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영화에는, 두 사람의 사랑이 다시 한번 색으로 피어나는 순간이 존재한다. 은호와 정원이는 서로를 다시 만나고, 아름답게 이별한 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후 은호의 아버지(신정근)의 편지를 정원이가 받아보는 장면에서, 화면은 무채색의 현재를 벗어나 다시 색을 회복한다. 이 변화는 과거로의 회귀라기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앞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특히 이 지점에서 더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다시 무채색으로 돌아가며 끝나지 않고, 컬러 화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이는 ‘만약에 우리?’라는 가정이 실패로 귀결된 이후에도, 사랑의 경험이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정원이의 내레이션, “그때 우리가 있었다는 것”이라는 대사는 결국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조용히 되짚는다. 이 영화는 사랑의 성취보다, 사랑을 지나온 이후의 인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무엇이 남는가


이 영화의 단점은 이 영화가 다룬 멜로 장르로서의 특성을 기존의 로맨스물이 다룬 방식을 어느 정도는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사랑의 관계를 엇갈린다는 점에서 <라라랜드>가, 다시 시작하면서 색이 피어난다는 점에서 <해피 투게더>가, 색으로 인물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이터널 선샤인>이 연상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고유의 특성은 선명하다. 바로 관객들에게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되 그 사랑에 대한 가치판단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랑이 어떻게 마무리될까? 두 사람이 서로 연락할만한 여지를 남겨두면서, 동시에 은호 부의 편지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정원이의 색에 다시 생기가 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아예 분절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깔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한쪽이 실패하는 구도가 영화 엔딩에 등장했다면 뭐가 낫고 뭐가 나쁘다는 것이 결론에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선과 악을 거부한다. 결국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 기억이 있다면 ‘만약’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 ‘그 지하철에서 은호가 정원이에게 따라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선풍기 바람 혼자 쐬니 헤어질 수도 있었’으니 삶의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역시 사랑이라는 점을 차이점으로 둔다는 점이 다른 멜로영화들과의 차이점이다.


한국영화 부진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글쓴이 역시 그 흐름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다만 ‘좋은 영화’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냈는지에 달려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영화는 익숙한 공식에 기대어 흘러간 경우가 많았다. 이 영화 <만약에 우리> 역시 그런 면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기능하는 멜로 영화로서의 장점들, 그리고 기존 로맨스 영화에서 보아왔던 장치들은 김도영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세세하게 풀어내기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결국 예술가가 분명한 무기를 안에 품은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좋은 연출 덕에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 많다.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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