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

외로움은 디폴트

by 수다쟁이

대수롭지 않은 순간에 나눈 대화인데 이상하게 오래 머릿속에 남는 말들이 있다.


"아무리 사랑받아도 만족 못 하는 애가 있지, 기질은 타고나는 거야"


"피해의식은 실제 피해의 여부와 관계가 없습니다."


첫 번째 말은 직장 동료에게 들은 말이었고, 두 번째 말은 처음 방문한 정신과에서 들었던 말이다.


나는 평생을 사랑받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왔던 거 같다. 흔한 이야기이다. 다복한 집안 바르게 키워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남아 선호사상이 있는 집안의 둘째였던 나는 온전하게 케어를 받아본 경험이 없다.


첫 육아의 미숙함에서 벗어나고, 먹고살기 바쁘신 부모님은 상대적으로 나에게 많은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고, 나는 덕분에 혼자서 집도 잘 지키고 말도 잘 듣는 아이로 컸다. 하지만 항상 마음속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궁핍함이 있었던 탓인지 관심 종자의 길을 걷기도 했다.


나름 긍정적인 방면이었는데,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하는 부모님에게 물 떠다 드리기, 집안 청소해 두기, 요리해 두기 뭐 그따위 것들이었던 것 같다. 엄마 아버지의 손길이 그리워 일부러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잠든척하여 침대에 안아다 주길 바라는 행동 따위들이 있었다. 한 번은 피아노 치다가 지쳐 잠든 척 건반 위에 엎어진 적도 있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그런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착한 아이처럼 말만 잘 들으면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고 한창 반항기에 있었던 청소년기의 오빠를 꺾고 엄마 아빠의 최애 아이가 될 수 있다고 믿은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3n살이 먹은 지금도 나는 그들의 최애가 된 적은 없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사랑받아도 만족 못 하는 애가 있지, 기질은 타고나는 거야"

나보다 10살은 훌쩍 더 많은 직장 동료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외로움을 많이 탄다고 했더니 사랑받는 거랑 다르게 감사하지 못하는 애도 있다는 뉘앙스로 내게 한 말이었다.

그래, 내가 사랑을 못 받은 건 아니다 딱히 불행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만족할 수 없는 아이로 태어난 걸까? 나는 어쩔 수 없이 공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처음으로 고민한 순간이었다.


나는 연애도 몇 번 해본 적이 없다, 첫 연애는 대학교 3학년 때, 동아리 복학생과 했던 연애였다. 별거 없는 20대의 연애였고 말 그대로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한 연애 수준이었다. 그리고 25살에 만난 남자가 다짜고짜 나에게 "너는 우리 집에 가도 되겠다."라고 말했고 나는 그 남자와 결혼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미숙했는지, 하지만 난 최선을 다했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남자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거 같다. 의리인지 의무감인지 사랑인지 그따위 것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고 미래를 함께 하자고 계획한 그가 고마웠고, 그의 단점도 내가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꼬시기 위한 그의 초창기 노력에 나는 그가 나를 매우 사랑한다고 착각했고 그를 너무 쉽게 믿어버린 탓도 있었다. 어쨌든 연애는 결혼하고 나서 천천히 하면 된다는 말을 내뱉었던 그는 연애 기분을 느끼기도 전에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나의 불행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참 불행했다. 방향성이 좋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는 성격 덕분인지 때문인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 때까지 내 육신과 정신 물질적인 노력을 모두 쏟았다. 덕분에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끝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먼저 꼬신 건 저쪽인데 왜 나는 나를 전부 다 주는 미련둥이였으며 왜 나는 불행 끝에 이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상황을 끝낼 수밖에 없었는지 우울했다.


그래서 찾은 정신과에서 대략적인 내 이야기를 소개했을 때,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피해의식이 있으시네요."

"실제로 피해를 본 사람에게 피해 의식이라는 말을 쓰나요?"

"피해의식은 실제 피해의 여부와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이 내게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줄 알았다. 우울의 감정이 깔린 상태에서 나는 내가 잘못된 건가? 결국은 또 내가 욕심쟁이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불교에서 말하듯이 모든 건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인가?


나는 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고 편들어줄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해당 의사를 세 번 이상 찾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이후의 에피소드는 없지만 그는 제법 내게 큰 할큄을 남긴 건 틀림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실제 피해와 관계없이 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혼녀인데 모쏠이나 다름없어, 적어도 연애 고자임엔 틀림없어.

스스로를 이렇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리퍼 제품이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조금 더 뻔뻔했으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고 나는 현 상황을 유지하며 나이만 먹어가고 있다.


그리고 2025년 10월 나는 드디어 받아들이었다. 이제 인정할 수 있다.

나는 평생 고독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추후에 누군가를 만나던, 결혼을 하던, 혹은 혼자이던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의 고독을 인정하고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살아갈 수 있다.

더 이상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지 말자, 그것은 주어지면 고마운 것,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것

주변 상황은 변할 수 있지만 외로움은 디폴트 값이다. 인정하자.

그리고 살아가자. 그래야지 뭐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