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야>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두산백과의 감각 항목에 나오는 정의이다.” 23살의 저는 누군가가 시켜서 쓰는 글이 아닌 제 인생에서 쓰고 싶어서 쓴 첫 번째 글의 첫 번째 문장으로 위의 문장을 썼습니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격렬한 감정의 파도와는 다르게 이 첫 문장은 무표정한 얼굴을 한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던 그때, 군부대 안에서 최대한의 감정을 숨기며 써 내려간 첫 문장은 저러했습니다.
이 글을 왜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만, 글을 끝까지 마쳐야만 했던 이유는 불명확합니다. 여기 45살 먹은 드라마 작가가 있습니다. 노벨문학상과 베니스, 칸 영화제의 각본상을 꿈꾸던 젊은 작가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지금은 후배의 성공을 지켜봐야만 하는 나나라는 가난한 작가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녀의 꿈은 아름다웠습니다. 대학교 1학년 다이어리 거기에 적힌 그녀의 꿈이 들립니다.
“내가 기쁜 이야기를 하나 만들면 세상에 기쁜 일 하나가 생겨나요.
내가 슬픈 이야기를 하나 만들면 세상에 슬픈 일 하나가 사라져요.”
순수함과 반짝임을 담은 이러한 말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켜서 그녀는 성공에서 멀어졌는지 모릅니다. 드라마 각본 대상을 수상한 후배에게 평가받는 그녀의 글은 촌스러움입니다. 촌스러운 글을 후배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선배님 이야기는 밤하늘의 별이 똥 싸는 소리예요.
선배님 이야기는 시냇물의 물고기들이 뻐끔거리는 소리예요.
맑고 순수해요.”
맑고 순수함이 촌스러움으로 변환되는 가장 큰 이유는 휙휙 변하는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트렌드에 맞추어 돈을 좇지 않기 때문입니다. 27살, 무수한 공모전에 떨어지고, 온 힘을 다해 썼던 브런치북들이 수상에서 멀어졌던 그 겨울. 저에겐 1년의 허망함만이 남았습니다. 글에 재능이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적어도 내 삶이 글로만 채워질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글을 읽는 데는 재능이 있을지언정 글을 쓰는 데는 재능이 없음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은 괜찮았지만, 돌이켜보면 허무함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취직을 하고자 했습니다. 접어둔 영어 문제집을 펼치고, 컴활을 따볼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기에 사설 도슨트 강사 알바를 시작했고, 좋은 기회로 기획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5인 이하의 벤처는 지옥이었습니다. 정말 힘들었고, 회사를 위해 제법 많은 것을 해냈지만, 제게 남은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통장에 찍힌 300.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5개월을 갈아 넣고 똑같이 5개월을 반동 속에 지냈습니다. 게임을 하고, 가끔은 책을 읽고 쉴 뿐. 당장 다시 취직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도피했습니다.
사실 <빵야>의 나나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글로 돈 벌어먹는 일로 45세가 되도록 굶어 죽지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몇 번의 알바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오는 길에 적당한 성공이 있었던 덕에 업계에서 나름의 인맥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꿈은 줄어들어 순수문학에서 영화각본으로, 영화각본에서 드라마각본으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글로 돈을 벌고자 합니다. 소재를 찾고 고민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자 합니다.
현실은 차갑습니다. 간신히 받아낸 명함으로 제작자와 계약을 바라지만, 신선하고 실험적인 이야기는 한계에 부딪칩니다.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나나는 교회로 갑니다. 술을 먹고 기도하는 혜화동 로터리의 양평해장국. 그곳에 스무 살의 나나가, 서른 살의 나나가 있습니다. 늘 기도했지만,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사실 정말로 누군가에게 바라며 기도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자기 자신을 다잡기 위한 기도.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쓰러지지 않기 위한 기도였을 겁니다.
제게도 교회가 몇 군데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고, 기억이던 대학교 1, 2학년 그럼에도 어느 날은 혼자가 되는 날이 있습니다. 고독이 모든 걸 집어삼켜 견딜 수 없을 때. 화려함 속에 허무함이 다가오는 망나니 같은 삶에 한 번의 위로를 위해 국밥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었습니다. 대흥역 할매순대국, 학교 정문 앞 뼈석골 뼈해장국. 그곳이 제 기도처였습니다. 그곳에서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들을 곱씹으며, 어쩌면 언젠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다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비싸져 버린 가격과 뭔가 달라진 분위기에 그곳을 찾지 않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 헤매던 저의 기도처는 마음속에 남아 하나의 이정표로 존재합니다.
기도만 한다고 삶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나나는 기도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험난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내적갈등이 계속됩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 방식을 고수할지, 현실에 맞추어 바꿔나갈지. 나나는 현실에 맞추어 바꾸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렇게 쓸 수는 없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그냥 쓰던 대로 쓰는 것.’ 스타가 이끌고 흔한 사랑 얘기로 가득 찬 그런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들의 삶을 살아내는 비극으로 글을 써나갑니다.
근래 브런치의 제 글에서 자주 봤던 댓글이 있습니다. 꾸준히 계속 써나가는 것도 재능이라고. 브런치에서 무수한 글을 썼지만, 그만큼의 무언가가 있었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글이 좋든 안 좋든, 인기가 있든 없든 그냥 꾸준히 썼던 거죠. 그래서 그 말이 참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막혔던 적이 있습니다. 벤처가 끝난 이후 그전에 시작했던 글들을 전부 마무리하고, 새로운 글을 시작할 내용이 이제 제 안에는 없었습니다. 글 쓰는 것은 제 나름의 즐거움이었는데 소재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현실과의 부딪침 속에서 글은 포기를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체념을 향해 걸어가던 제 지친 발걸음을 돌려세운 것은 우습게도 인문학이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취직에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그 인문학. 제가 했던 게임에 담긴 인문학. 그리고 처음으로 저를 박물관에 일하게 해 준 인문학. 게임에서 문학과 철학을 찾아내며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박물관에서 일하며 여행과도 같은 일상을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은 다시 제가 쓰는 글의 소재가 되어주었고,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인문학은 사실 제 기반이었고, 최고의 쓸모였으며 삶의 전부였습니다.
역사교육과를 나온 나나는 일본 99식 소총으로 시나리오를 씁니다. 그 소총에 빵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숨겨진 이야기를 캐내어 듣습니다.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습니다.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장총이 한국전쟁에도 쓰여 남과 북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는 점은 아마 한반도에 발을 디디고 사는 모두의 흥미를 끌만한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실은 흥미에 있지 않습니다. 친일파 군인이 조선인을 학살하고, 독립을 위해 투신했던 이들은 희생당하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낙인을 찍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죽이며, 전쟁 속에서 사랑했던 사람을 찾지 못합니다. 마지막엔 어린아이가 전쟁의 고통을 이기다 못해 총으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깊고 어두운 기억을 함께한 장총의 상처는 깊습니다. 나나는 고민합니다. 그 상처를 소재로 사용해도 될지.
제 글을 관심 있게 읽어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의 글에는 생각보다 너의 사견이 들어가지 않아.” 설명이 많고, 경험을 적어 내려가는 글이 많으니 그렇다고 으레 넘겨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을 소재로 다루는 과정에서 내가 잘못 다루어 내 의견 속에서 그 인문학이 곡해될까 봐. 그래서 본 그대로, 혹은 제가 인용하고 싶은 의견을 쉽게 풀어서만 전달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맞이한 사람들의 죽음은 제 의견 속에서 걸러내기엔 너무 무거웠고, 어두웠습니다. <빵야>를 보면서도 얼마나 고개를 많이 돌렸는지 모릅니다. 마주할 때마다 받는 그 지독한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그 고통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풀어낸 <빵야>의 각본가에게 감탄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역사는 많은 부분에서 기억의 영역으로 넘어왔습니다. 역사의 주관성이 강조됨과 동시에 주관성 때문에 강조되었던 기억 담론이 역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들어온 것은 근현대사 고통의 기억입니다. 이 고통은 늘 상실과 부재를 불러옵니다. 이 상실과 부재를 마주하여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장총 ‘빵야’ 같은 이를 위한 치유도 필요합니다. 역사의 비극에 대립했던, 비극에 휩쓸려 삶을 잃어버린 총의 주인들이 죽을 때마다 나나와 빵야는 이름을 부릅니다.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불러오는 행위는 상처를 다시 확인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이야기를 하여 묵힌 원한을 풀어내는 행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기억은 이어지고, 여전히 아파했을 그들을 위한 치유가 행해집니다.
제노사이드와 4.3사건을 깊게 공부하며 어쩌면 이미 말해야 했을 제 사견이 <빵야>에 있었습니다. 곡해에 대한 고민은 각본가와 나나도 했던 모양입니다. 쓸 자격에 대한 이야기. 소재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성공과 욕심만을 위해 이 이야기를 그저 소비하고 있는 것만이 아닐까 하는 의문. 그 과정 끝에 둘은 어느 정도 결론을 내었습니다.
“저는 쓰고 싶습니다.
성공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쓰는 일이 마냥 좋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억, 기록, 증언과 같은 빛나는 명분 뒤에 숨겨두었던 가장 큰 욕망. ‘그냥 쓰고 싶다.’입니다.
작년에 쓴 글을 살펴봅니다. 제게도 멋지게 말한 명분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 조금씩 해오던 인문학 공부. 술을 먹으면서도 눈에서 놓지 않았던 글들. 그 과정에서 쌓인 ‘나’라는 존재. 이제 그것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인문학 공부 끝에 쌓아온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감각의 정의를 쓴 첫 문장을 따라 제가 쓴 첫 글의 마지막으로 갑니다.
“정말 죽을 듯이 나를 아프게 하는 ‘이 감각’이 내겐 너무나 고통스럽고 빨리 버리고 내던지고 싶지만, (…) 참아내어 기억하는 것도 (…) 마지막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의라는 구차한 변명 속에서 사실 나는 후회 속에 이 감각을 붙잡아 행복했던 때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에 강렬히 느끼는 게 분명하다.”
나를 표현하기 위한 글이 아닌 내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글임이 분명해집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나에게 보이기 위함. 저는 이 생각을 잊고 살았습니다. 멋지게 포장해서 보이기 위함이 아닌 본래의 나를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여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 단순하게 기록을 위해 그 감정을 쓰고 싶어서 쓴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7년이 지난 지금에야 완벽히 마주할 수 있었고, 제 꿈의 시작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누군가에게 제 꿈이 바래졌다고 말했습니다. 기록하고 싶어서, 마냥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로 돈을 벌어먹고사는 꿈. 그 꿈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꿈과 낭만을 좇으며 살았고, 그것으로 모두의 응원과 선망을 받아왔던 제가 저도 모르게 뱉은 그 말에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반복에 묻혀서 바라왔던 그 꿈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기 힘들었습니다. 7년 전 시작했던 꿈의 마지막이 여기 일지 아니면 흔적이라도 남아있을지 저는 되물어야 했습니다.
빵야는 꿈을 꿉니다. 총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여 온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총에서 벗어나 다른 것이 되기를 꿈꿉니다. 바람이 다니는 길목, 은하수를 찾아 별 길을 더듬는 표지판, 버섯들의 마루, 다람쥐들의 낮잠 장소였던 압록강 졸참나무는 강제로 총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 대문, 마당의 펌프, 부엌의 가마솥, 아버지 삽, 어머니 호미, 우리 교회 촛대, 우리 신당 쇳대, 간이역 기찻길, 시골길 자전거. 우리네 삶을 지탱하던 그 모든 것도 모두 총이 되었습니다. 빵야는 그 과거를 기억합니다. 사람들을 죽이기 전의 평화로웠던 과거. 그 과거를 기억하며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지탱하기를 원합니다. 빵야의 손잡이, 호른의 밸브.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는 악기가 되는 꿈을 간절히 꿉니다. 이전부터 빵야를 이뤄왔던 것은 전부 반짝거립니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하나씩 반짝여 빵야의 꿈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힘든 과거에서도, 어떤 깊은 상처에도 빵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새로운 학기가 되고 새로운 근로장학생 분들이 왔습니다. 교대에는 종종 나이가 많은 분들이 오십니다. 그래도 많아야 20대 후반이었던 지난 학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왔습니다. 30대 초반인 분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버티며 수능을 준비하여 교대에 합격하셨다고 했습니다. 사회에 닳고 닳은 느낌이 있지만, 그분은 반짝이는 것 하나는 놓지 않았습니다. 학교 밴드에서 동아리를 하며 이번 여름까지 앨범 하나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눈은 반짝였습니다. 30대 후반 분은 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시고, 쿠팡 야간을 하며 교대에 합격하셨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아들이 있으시다는 그분은 제가 감히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인생만큼이나 덤덤함이 인상적이신 분이었습니다. 큰 꿈은 없으셨지만, 제 연애 이야기에 눈을 빛내시고, 아들을 생각하시며 보이는 따뜻한 눈빛은 여전히 그분도 꿈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다만,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꿈을 접어두었거나 이루지 못할 것 같아 다른 이에게 꿈을 강요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제 꿈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도 없기에 저는 접어둔 것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저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래진 것일 뿐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저는 꿈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고, 바래졌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마음을 다한 대화 끝에 문득 제가 접어두고 있던 꿈이 떠오릅니다.
빵야는 이야기를 전부 쏟아내고 소품 창고로 들어갔지만, 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나는 그 꿈을 이루어주고자 노력합니다. 다큐팀을 섭외해 소품 창고 철거 과정을 찍고, 소품들을 위한 연주회를 준비합니다. 작곡하는 친구에게 대본을 보내 연주곡도 받습니다. 마지막, 수명을 다한 빵야가 오케스트라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장식하기 위한 총알도 주문합니다. 그 연주의 마지막에서 빵야의 꿈은 이루어집니다.
빵야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1학년 <소나기>를 읽고 발표하여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문학소녀는 계속 칭찬을 받고 싶어 글을 연구했고, 백일장에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질문을 합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인정을 갈구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꿈은 글에서 벗어날 수 없고, 다른 이들의 삶과 함께합니다. 대학교 1학년 꾸었던 꿈. “내가 기쁜 이야기를 하나 만들면 세상에 기쁜 일 하나가 생겨나요. 내가 슬픈 이야기를 하나 만들면 세상에 슬픈 일 하나가 사라져요.” 그것은 변합니다. 기억을 하기 위한 글에서 표현하기 위한 글로 제가 변해갔듯. 45살의 나나의 꿈은 변하여 말로 나옵니다.
“내가 이야기 하나를 힘들게 쓰면 힘든 사람 하나가 잠시 쉬게 될지도 몰라요.
내가 이야기 하나를 아프게 쓰면 아픈 사람 하나가 조금은 나아질지도 몰라요.”
빵야의 꿈이 이루어져 아픔이 치유되고 나나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좌절과 상처는 서로의 꿈으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며, 다시 용기를 얻습니다. 이 조화는, 이 나아감은 제가 그리도 감탄했던 그 언젠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거리고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보고 있자니 떠오른 꿈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밤의 버스정류장, 차도 많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는 그곳에서 문득 생각나는 것들을 털어냅니다. 빨간 불빛의 신호등을 멍하니 보며 뱉어낸 저의 꿈은 ‘언젠가 책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대화를 들어주던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 줍니다. 아직 제 꿈은 사라지지 않았고, 응원을 받고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립니다. 서학동 자취방으로 향합니다. 다 큰 어른이 동화 같은 건물을 바라봅니다. 동화책들이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화단의 고양이집을 중심으로 골목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이 눈에 띕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문학관 근처에서 보았던 고양이들이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있는 골목길을 걸어갑니다. 경복궁에서 창덕궁 걸어가는 감고당길이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는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이 공간이 제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합니다. 30분 동안 앉아서 과거를 톺아보던 오산역이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고민 끝에 들어 올린 고개의 목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추위를 가져옵니다. 따뜻했지만, 차가움이 늘 함께했던 공기 속의 교토 여행이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골목의 끝, 돌로 된 담벼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돌담 가득했던 제주 올레가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담벼락 위에 기와로 이은 지붕이 있습니다. 낙숫물 떨어지던 남도 사찰의 지붕이 기억을 스쳐 지나갑니다. 목을 아예 꺾어 밤하늘을 지켜봅니다. 밤하늘의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제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백령도의 은하수가 기억 속에 떠오릅니다. 지나감을 끝내고, 거기에 멈추어 섭니다.
꿈을 향해 달려온 것들. 일상과 이성의 햇빛으로 바랜 꿈이 아직 제 안에 있습니다. 다 바랜 꿈을 꺼내봅니다. 색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제 꿈입니다. 밤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집니다. 쉼과 감성의 별빛이 꿈을 선명하게 만듭니다. 아직 제겐 꿈이 있습니다. 빵야처럼. 그리고 저는 늘 꿈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나처럼. 글을 썼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쓰는 일이 마냥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