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역사 수업' 중인 청소년을 위한 위로

by 송영주

송영주


중3이었던 1970년대 중반, 운동장에서 전교생 조회를 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끝나자, 학생회장의 구호 선창을 계기로 학생들이 운동장을 행진한 뒤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저지로 그만 교실로 들어갔다. 이어진 국어 시간에 우리는 수업 대신 선생님의 한숨을 만났다. 유신 독재정권에 대한 성토와 함께, 아이들의 나약한 행동력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셨다. 어린 시절 해프닝 같은 이 경험은 성인이 된 지금 더 크게 자리 잡은 듯하다. 그 뒤로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처참한 한 시대의 현장을 직시했고, 현재는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겪고 있다.

지금의 현실, 온 나라의 이념과 가치가 둘로 나뉘어 비수의 세력다툼이듯 하루도 느슨할 틈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 청소년들은 이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마주하고 있다. 다음어진 교육 자료가 아닌, 날것 그대로 던져준 채 스스로 판단하고 정리하는 정치적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여러모로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아야 하지만, 어른도 대하기 버거운 목전의 정치 현실에 아이들의 교육과 역사의식을 돌아볼 여유가 없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배우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이 어려운 사태를 미래지향적 의미로 잘 만들어나갈 것을 믿는다. 계엄법, 통치권, 정당 정치, 국회, 선거법, 그리고 국민 목소리 등에 대한 이론을 챙겨서 현재의 모습을 대응시키는 것이 녹록지 않더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길게 이 시대를 되씹어 볼 것이다. 지금 생생하게 눈에 넣은 모든 것들은 그대로 정치와 역사 공부의 중요한 재료가 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정교하게 써 나갈 것이다. 이 일들이 가까운, 또 먼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고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를 슬기롭게 잘 터득해 갈 것이다. 정치 현실을 역사로 만들면서 그에 합당한 역사의식도 잘 정립해 나갈 것이다.

작가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것이 작품의 화두가 되었다고 했다. 어쩌다 주어진 역사 수업 현장이 버겁고 잔혹한 야생성이 있긴 하지만, 그 고난과 고초는 그만큼 의식을 고결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는다. 과거의 엄청난 아픔과 잘못을 길이 기념하는 이유는, 역사의식을 토대로 그것을 교훈 삼아 새로운 가치로 거듭나고 승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듯, 우리 청소년들도 오늘의 이 경험적 영상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더 밝고 슬기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주인은 대중이므로 시간이 걸려도 결국 역사는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한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렸고, 그간 얼마만큼의 혹독함과 잔혹함이 내재했는지가 아픔이고 굴곡이고 슬픔이기에 당연히 안타까움은 있다.

12월 3일 그날 이후 폭력고 비난의 수위가 상식을 넘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행동치고는 진정 안타깝고, 언젠가는 부끄러움으로 실토할 장면들도 있다. 그러나 골이 깊고 요동이 심한 이 야생의 현장은 훗날 분명 우리 청소년들에게 탄탄한 역사의식을 형성하고 미래의 바른 주역으로 성장할 계기를 만들어 주면서 보답할 것임을 믿는다. 이 성숙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청소년 자신들의 몫이겠지만, 이제라도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 시대를 꿋꿋하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진지한 반성과 책임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칼럼 [왜냐면] 202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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