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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유정 Dec 12. 2022

해야 할 말과 굳이 하지 말아야 할 말

말 습관에 대해서.

어느 날 문득,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산다.

느꼈다.

1. '안다'는 감각.


'안다'라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제대로' 이해한 분야, 사람, 사물이 얼마나 될까.

과연 '제대로' 보고 있는가.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흘러들어온 지 조차 희미한 정보가 많다.

그 출처 미상의 정보를 보고 말하기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입은 가벼울 수 있지만, 말은 가볍지 않다.


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때도 얼마나 많았던가.

오만하다 느껴져, 툭 튀어나오려던 말을 목구멍 밑으로 내려 보낸다.


무엇을 주장하기에는 밑천이 얕고 얄팍함을 인정한다.

그래서 내 입장을 고수하기도 그만뒀다.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이에서.


말해도 되나, 삼가야하나

망설일 때.


감당할 수 있는 말하기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시간이 지나서도 견디고 책임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자고.


그럼 나는 대체 무엇을 '안다'라고 말해야 할까.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들 중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좋을까.


(1) 부끄러움


적어도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말', '말', '말'.... 들에 대해서,

나는 부끄럽기 시작했고, 부끄럽다고.

'안다'라고 말했으나, 사실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쓰기'에 거침없던 지난날들이 내게 밀려온다.

파도 파도 계속 파도를 타고 더 세차게 올 때마다,

아아, 인간의 망각이 얼마나 고맙던지.


미천한 기억력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역시 나는 운 좋다.)


그래서 나의 '무지'함, '무지했음'에 대해서 고백하는 말은 고백해도 된다고 결론지었다.


(2) 어림


어림에 대해서도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나이가 어렸음, 여전히 어림.
어리석었음, 여전히 어리석음.

에 대한 것들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리고, 어림.

그때의 나는.


지금 아는 걸, 그때는 모르고.

그때는 아는 걸, 지금은 모름.


그래서 부끄러움은 지금의 내 몫.

지금은 몰라서 부끄럽고,

또 알아서 부끄러움.


지금은 말할 수 있는 걸,

그때는 말할 수 없었고.


지금은 공개적으로 말하기 겁나는 걸,

그때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함.


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어림(어리석음).


'안다'라고 해도 되는 말은
지난날과 지금의 '부족함'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말 뿐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역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2. 침묵을 견디는 인내심


잠깐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나불거린 입과 소심함 때문에 괴로울 때가 있다.


실은 내면의 불안과 긴장을 들키지 않고 싶은 나약한 부분.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

완벽함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강박.

겉으로는 배려이면서, 실은 나를 위한 것.

그러니까 어쩌면, 이기적인 배려.


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에서 서브남주가 남주에게 한 말이 계속 맴돈다.


"너, 그녀를 제대로 보고 있어?
어리광만 부리지 말고, 그녀를 제대로 봐."



같은 결로, '니기의 휴식'에서 여주인공 니기에게 남주가


너 사람한테 관심 없잖아.

라고 말했을 때,


니기가 '관심 많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주의 말대로, 다른 사람한테 관심도 없었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 덕에 사람들을 눈여겨서 관찰하고, 진심으로 대한다.


아, 그들의 말과 행동에 뜨끔한다.

너무 찔려서 뼈 아프다.


나는 그동안 제대로 봤을까?


계속 되뇌게 되는 질문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두렵고 무서워서 계속 도망치고 어리광 부렸던 걸 들킨 기분.

무엇이든 일단 말하고 보자는 안일함이 드러난 느낌.

역시 또 부끄럽다.


나는 누군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늘 내가 원하는 모습을 골라서 보고 있었을 뿐.

어쩌면 줄곧, 허상을 좇아 다녔는지도.


때로 침묵이 낫고,

누군가를,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애정 어린 시선을 나눌, 여유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드디어 깨우쳤다.


절제되고, 정제되고, 여과된 담백함과

자유분방하고 거친 날 것의 느낌을 모두 좋아하는 모순적인 취향을

인정하면서.


조금 덜 말하기로 했다.


3. 좋아하는 것


좋아지면 한 발 뒤로 도망치는 버릇이 있다.


비겁하다. 안다.

겁이 많다.


왜일까.

좋음 뒤에는 바로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버리게 될까, 버림받게 될까. 무섭다.

어느 쪽에도 서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잇 다른다.


좋아하기로 '선택'할 때,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안다.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뒤돌아 보지 않겠다는 결심 없이 좋아하기란, 버겁다.


가볍게 좋아하질 못하는 천성 탓일까.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의리를 지켜야 도리인 것 같은 우유부단함 때문일까.


그니까. 좋아하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하곤 했다.

시나리오 작가도, 패션도, 드라마도, 사람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면 늘 힘들었다.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누군가를 괴롭게 할까 봐.

나를 괴롭게 할까 봐.


도통 정도껏 좋아할 줄을 모르니까.


어쩜 그렇게 사람이 이분법적인지.


말하지 않는 쪽이었다 늘.

말을 삼키곤 했다.


무얼, 얼마큼, 얼마 동안이나 좋아했는지.

좋아하는지.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했지만,

유독 좋아한다는 말 아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정말 너무 좋아지니까.

정말 너무 '그냥' 좋아한다고 할 만큼 좋아졌는데,

나중에 포기할까 봐

공포에 질린 나를 꽁꽁 숨겨 두곤 했다.


이유 없이 좋은 것들을 날을 세우고 경계했다.

때때로 외면하고, 밀어내려 애썼다.


힘들고 싫은 것들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써내려 갔지만,

'좋아함'에 대해서는 더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색깔 있고, 향이 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향점이 생기면서

문득 깨달았다.

취향있는 사람은 호불호가 명확하고,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다.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침없다.


그래서 나도 바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야겠다고.

더 크게 소리 질러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그래서 좋아함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기로 결심했다.


눈치 보느라, 좋아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게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아, 근데 저는 좋은데요.

라고 더 자주 말해야겠다고.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싫어할 지라도.


그건 그 사람 마음이고.

내 마음은 내 꺼고.

내 인생이니까.



이제는 해도 될 말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가려내고 있다.


그동안 이미 너무 많은 말들을 해왔다고,
더 많은 말을 늘어놓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점점 더 말하고, 더 쓰고 싶을 거란 걸 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은 덜 말하고, 고쳐 쓰면서,

더 듣고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대로' 보고, '관심 갖고', '애정 어린' 사람이 되고 싶다.


새로 생긴 나의 꿈.

거창하진 않지만, 쉽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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