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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다른 듯 닮은 우리들, 게임과 영화

타임 루프에서 소울라이크까지…서로에 대한 복제와 진화에서 찾아보는 ‘생각

by K Duck

<사랑의 블랙홀>, <롤라 런>, <엣지 오브 투모로우>, <해피 데스 데이>, <소스 코드>, <닥터 스트레인지>, <나비효과>,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 <레트로액티브>,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타임 루프’ 소재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타임 루프'는 고대 신화와 전설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시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서사적 기법입니다. 이는 SF 문학의 전형적인 소재인 '시간 여행'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하위 장르로 주목받으며, 현재는 폭넓은 문화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반복되는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 시계 (출처 : 영화 캡쳐)


본격적으로 '타임 루프'가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자리잡은 것은 1993년 작품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부터입니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이후 '타임 루프' 장르의 기본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1. 주인공은 특정 시간대에 갇혀 있어야 한다.

2. 특정 시간대를 반복하면서 기억은 유지해야 한다.

3. 반복이라는 운명을 벗어나려면 특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4. 반복을 통해 주인공은 성장해야 한다.


‘타임 루프’의 기준이자 기본 공식은 4가지 정도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어디선가 문학, 영화 말고도 유사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이 공식을 아주 제대로 써먹고 있는 기시감이 들 것 입니다. 바로 ‘게임’ 입니다.


초기 '타임 루프' 문학이 시간 반복을 운명적 관점에서 다룬 것과 달리, 1990년대 영화들은 '리스폰'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반복되는 시간을 위트 있게 재해석했습니다. 이는 1980년대부터 급성장한 게임 문화가 영화로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영화와 게임은 스토리텔링, 세계관, 시청각적 표현 방식에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인터랙티브'라는 고유한 특성을 극대화하며 산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각 유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터랙티브'하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리스폰'이라는 '타임 루프' 특성 때문입니다. 이 두 개념은 모두 죽음이나 실패 후에 재시작 기회를 제공합니다. 다만 게임에서는 이것이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의 일부로 통합되어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만든 '타임 루프'를 주목해온 게임 업계는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로 '타임 루프'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을 극대화한 '소울라이크(Soulslike)' 장르가 탄생했습니다.


2024년 최고의 게임 중 하나인 소울라이크 장르 '검은 신화: 오공'의 한 장면.


'소울라이크'는 게임 개발사 프롬 소프트웨어(Frome Software)가 개발한 소울 시리즈의 시스템을 차용한 게임들을 통칭하는 장르입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소울 시리즈를 비롯해 '엘든 링', '블러드 본', '세키로'와 메가 히트를 기록한 중국산 게임 '검은 신화: 오공' 같은 소울라이크 장르의 게임들이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소울라이크’ 게임 장르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특정 지점인 ‘본파이어(모닥불)’에서만 리스폰이 가능해야 한다.

2.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적도 리스폰이 가능해야 한다.

3. 무한대의 능력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4. 난이도가 높아야 하며, 정밀한 플레이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소울라이크' 장르의 핵심 요소인 본파이어(모닥불) 시스템은 '다크 소울' 게임의 개발자 히데타카 미야자키가 설계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데몬 소울'에서 '다크 소울'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도입되었으며, 단순한 회복과 리스폰 지점을 넘어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감정적으로 교감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어두운 판타지 세계 속에서 드문 "따뜻한 안식처" 역할을 합니다.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죽음'은 완전한 실패가 아닌 게임플레이의 핵심 요소입니다. 플레이어가 사망하면 마지막으로 활성화한 본파이어나 체크포인트로 돌아가며, 이때 대부분의 적도 함께 리스폰됩니다. 이런 메커니즘은 플레이어에게 도전적인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게임 진행이 완전히 중단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소울라이크' 게임 장르는 한 마디로 "어려움 자체가 재미"입니다. 이제는 보편화된 '타임 루프'와 '리스폰' 시스템을 더욱 까다롭게 설계하여 게이머의 도전 의식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설계 철학은 인간의 성취 욕구를 자극하며 '소울라이크' 게임의 성공을 이끌고 있습니다.


피노키오를 소재로 호평을 받은 국산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 'P의 거짓'


'소울라이크' 게임 세계관에서는 리스폰이 단순한 게임 메커니즘을 넘어 세계관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영원한 불멸의 저주로 인해 끊임없이 리스폰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정신을 잃어간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게이머의 도전 욕망과 승리를 위한 집착에 더욱 깊고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연이어 출시되는 ‘소울라이크’ 게임들의 흥행과 영향력 확대에 영화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타임 루프’ 장르는 이젠 익숙함을 넘어서 진부한 소재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결국 또 다른 세계관을 빌려와 혼합해 새롭지만 익숙한 장르를 만들어내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미키 17> 입니다. 타임루프와 멀티버스를, 타임루프와 복제인간 소재를 섞어 또 다른 흥미와 많은 생각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영화와 게임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며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이 두 매체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듯 닮은, 닮은 듯 다른 두 문화 장르의 '상호 성장 Mutual Growth'은 우리의 창작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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