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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Feb 18. 2023

구토 뜀박질


 '스스로를 사랑하라' 사방천지 온 곳곳에서 마치 법전처럼 떠받들어진다. 난 자기애 가득한 사람은 될 수 없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하며 매일 매시간 수백 번도 더 게으름 피우려는 날 그럼에도 사랑하라는 건 미친 짓이다. 못마땅하다. 조금만 힘들면 적당히 하려는 마음이 슬며시 똬리 트는 꼴이 진절머리 난다. 그래도 어쩌랴. 나로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으니 어지간하면 타협을 하겠지만, 요즘 내 꼬락서니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상살이 흐물흐물 흘러가려는 나에게는 고등생물 딱지는 떼버리고 나풀거리는 해파리가 훨씬 잘 어울리겠다. 구역질이 난다.


 나 같은 인간은 한 번씩 혼쭐이 나야 한다. 뛸 때가 왔다. 도착지도 모른다. 달릴 거리도 모른다. 단지 속깊이 쌓여있는 신물을 토해낼 때까지 뛴다. 


 목구멍에 두 손가락을 집어 혓바닥 위를 걸레질하지 않는 이상 구토는 쉽사리 되지 않는다. 내가 어젯밤에 뭘 먹었는지, 오늘 잘 자고 일어났는지 따져봐야겠지만 수십 번째 나를 혼내보니 신물이 입 밖으로 우웩 튀어나오기는 상당히 고약한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육체는 생각보다 견고하고 정신은 훨씬 더 나약하다. 


뛰자 뛰자 또 뛰자. 


 러닝화가 필요하다 그랬나? 그런 건 없다. 그냥 뒤꿈치가 조금 해진 컨버스를 신고 뛴다. 주법도 모른다. 중간 발바닥으로 땅을 딛으라 그랬나? 뛸 때마다 흔들리는 팔이 몸의 중심을 넘어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었나? 호흡도 몰라. 대충 군대에서 배운 '습습하하'를 어설프레 따라 해 본다. 그마저도 턱 끝까지 차오르면 금세 흐트러진다. 저기 아래 뱃속까지 숨을 가득 집어넣었으면 하는데 불가능하다.  

 섹섹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렁뚱땅 호흡 비슷한 것들이 들어왔다 나간다. 어느새 길어진 머리카락은 찰박하게 젖어간다. 오른쪽 콧구멍만으로는 도저히 가동률이 안 나오는지 비염 덕에 막혀있던 왼쪽 콧구멍도 태업을 멈추고 같이 일하기 시작한다. 호흡이 이젠 코를 넘어 저기 뇌 꼭대기로 숨 쉬는 듯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고 속에 썩어 자빠진 찌꺼기가 나오지 않는다. 

 평발이라 발바닥이 아픈 것과 구토가 쥐어 쪄 나오는 건 별개다. 

멈출까 말까. 멈추자 하면 지금 당장 두발을 멈출 수 있다. 그만두자 하면 바닥에 철퍼덕 쓰러져 꼭대기까지 차오른 숨을 고를 수 있다. 금세 편안해지겠지. 그리고 또 멈춰버리겠지. 


 어느 거리를 달려왔는지 얼마의 시간을 뛰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숨 쉬려는 욕망과 멈추려는 욕망이 미친 듯이 철썩이기 시작하며 어질어질하다. 

 메슥거리고 신물이 목젖을 치는 주기가 짧아진다. 

토할 때가 다가오나 보다.  

그제야 오히려 정신은 비워진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떠오른다.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일들에 미련들이 버려진다. 

 답은 생각보다 명료하다. 

이미 알고 있지만 굳이 몸으로 느껴야만 하는 멍청한 나라면 이렇게라도 떠올리게 하면 된다. 


 울렁거리는 속을 도저히 참지 못해 근처 화장실로 가 썩어빠진 속을 게워내고 나면 그제야 겨울인데도 흠뻑 젖은 차가운 옷가지가 느껴진다. 온몸이 숨 쉬려고 발악을 한다. 콧구멍 시큰거리고 목구멍이 따갑다. 숨소리가 속 안에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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