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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꼬마 Dec 23. 2020

애틋한 사랑신(scene)보다 더 눈물이 나는 신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나는 문화콘텐츠학과 학생이지만 드라마를 많이 보지는 않는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다음 회차에 대한 궁금증을 그렇게 깊게 갖는 편이 아닌데다가 시간 맞춰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에 큰 재능이 없다. 웬만큼 탄탄하게 서사가 짜인 것이 아닌 이상 긴 호흡을 함께 하기 힘들어하는 것도 큰 영향이 있다. 남들은 잘만 한다는 정주행도 나는 어째서인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기를 힘들어해서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언젠가 꼭 정주행하고 말겠다고 다짐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방영이 시작될 때 시기를 놓쳐 보지 못한 드라마였는데 나는 스포일러를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라서 해당 드라마가 하는 날에는 관련 스포일러 기사라도 뜰까 인터넷과 SNS에도 들어가지 않던 것이 기억난다. 그 드라마의 정주행을 올해 코로나로 인한 강제적 집콕으로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그 드라마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작으로 뽑는, 그리고 오늘부로 내 인생작이 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짧은 시간 안에 정주행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두 편 정도 보고 시험 기간 때문에 끊고, 끝나고 다시 보고, 이런 식으로 느릿느릿 보며 성공한 정주행이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면서도 앞 회차의 세세한 장면들은 잘 기억나지 않아 곤란하다. 하지만 마지막 두 편은 일부러 좀 늦게 본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이 마지막 두 편을 보고 나면 이 감정들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오, 친구가 미스터 션샤인을 강력히 추천하며 실수로 내게 말해버린 결말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 리뷰는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리뷰보다는 마지막 23화, 24화 위주의 리뷰가 될 것이다. 나처럼 이 드라마를 아직 안 보았지만 꼭 볼 예정인 데다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포스터


  이 드라마는 작게는 고애신(김태리)이라는 한 여성에 대한 세 남자의 사랑을 다룬다. 고애신은 조선 명문가의 손녀지만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낮에는 고운 애기씨로, 밤에는 독립운동을 하는 의병으로서 살아간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세 명의 남자가 있는데 바로 유진 초이(이병헌), 김희성(변요한), 구동매(유연석)이다. 유진 초이는 고애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조선인의 외양을 한 까만 눈의 미국인. 조선에서 노비이던 유진 초이는 자신의 부모와 자신까지 죽이려는 주인의 손아귀를 피해 몰래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된다. 덕분에 조선에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며, 미군이 되어 완전한 미국인의 신분을 얻고, 조선에 미군으로서 일을 위해 입국하게 된다.

  김희성은 조선에서 제일 부자인 집안의 자재로 유진 초이가 어릴 적 달아난 집안의 자재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고애신과는 정혼 사이였으며 결혼이 싫어 동경에서 유학 중 10년이나 돌아오지 않지만 귀국 후 고애신에게 반한다. 타고난 재치와 매너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바르고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산다.

  구동매는 조선에서 백정의 아들이었다.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것에 환멸을 느낀다. 후에 위기에 빠진 어린 구동매를 지나가던 어린 고애신이 자신의 가마에 태워 몰래 구해준 뒤로 고애신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무신회에 들어가게 되고, 무신회 한성지부장으로 조선에 돌아온다.

  서사에 중요한 인물은 한 명 더 있다. 바로 쿠도 히나(김민정), 이양화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안달이 난 아버지 이완익(김의성) 때문에 일본인에게 시집가 쿠도 히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재산을 갖게 되고, 조선에서 가장 좋은 빈관인 ‘글로리 호텔’을 운영하며 저 모든 인물들의 중심에 있다. 빼어난 미모를 가졌으며 동시에 뛰어난 펜싱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정보의 중심이기도 하다.


  작게는 고애신과 이러한 세 명의 남자들에 대한 로맨스 드라마가 되겠으나, 크게는 조선의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던 때의 의병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는 이 다섯 명의 인물들보다도 이름 없이 용맹하게 싸우고 죽어간 모든 의병들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서사가 탄탄하다. 이 드라마에 대한 많은 비판을 보았지만 서사에 대한 비판은 본 적이 없다. 24회의 적지 않은 분량을 가지고 있으나 단 한 순간도 빈틈이 없으며, 적당한 부분에 재치 있고, 많은 시간 진중하다. 이 드라마에는 애국과 매국 사이 어느 한 지점을 고르지 않은 이들에 대한 감정이 많이 등장한다. 이 주요 주인공들만 봐도 조선에 큰 애정을 품고 있는 자들은 많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조선을 위해 일을 하지는 않으나 조선의 독립에 기여하는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나 감정들이 드라마에서는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되어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그런 행동들에 대한 감정선이 뛰어난 연출로 인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합리성을 부여해준다.



  이러한 부분은 비단 애국과 매국 사이를 헤매는 이들에 대한 형식만은 아니다. 구동매의 사랑에 대한 부분도 그러하다. 구동매가 겉으로는 고애신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사실 구동매가 사랑한 사람은 쿠도 히나였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지금도 열렬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구동매가 사랑한 사람은 고애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들도 마찬가지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머릿속으로는 이해되는 감정이다. 특히 구동매와 쿠도 히나의 러브라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이 둘의 사랑은 특별하다. 그 둘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절절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라 그들이 사랑-만약 그 둘이 서로에게 가지던 가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하는 과정 또한 아플 수밖에 없다. 둘 모두 살기 위해 일본인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평생을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인도 아닌 정체성 속에서 방황하며, 둘 모두에게 버림받는 삶을 산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생에 서로의 존재는 위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구동매와 쿠도 히나


  “난 착한 사내가 아니고, 나쁜 사내니까. 나쁜 놈은 원래 빨리 죽어. 그래야 착한 사람들이 오래 살거든.”


  자신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서서히 쌓여오던 감정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저 말을 하는 구동매도, 그 말을 듣고 있는 쿠도 히나도 모두 아파 보였다. 아마 저 말을 듣는 쿠도 히나는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그래서 아마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내가 너보다 더 나쁠게. 나보다 먼저 죽지 마, 너는.”


  부모도 없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생 속에서 구동매에게 저 말을 해야만 했던 쿠도 히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절박함, 애잔함 등이 섞인 감정이었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쿠도 히나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만 같아 더 눈물이 난다.



  쿠도 히나가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사람이 구동매라는 것을 인지해가는 동안 구동매는 꾸준히 고애신만을 바라봐왔다. 그러한 마음은 그의 마지막 대사인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역시 이놈은 안될 놈입니다. 아주 잊으셨길 바랐다가도 또 그리 아프셨다니 그렇게라도 제가 애기씨 생의 한순간만이라도 가졌다면 이놈은 그걸로 된 것 같거든요.”


  자신이 고애신의 인생에서 비록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진 못하더라도 어쨌거나 그녀의 생의 한순간이라도 차지한다면 그걸로 되었다는 말을 죽기 전에 남기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온다. 어차피 자신이 그녀의 곁에 서지 못할 것을 알고, 또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그녀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을 기준으로 파가 나뉜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동매파였다. 거칠지만 그래서 더 부각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애정. 거친 그의 말과 행동과는 달리 고애신 앞에서는 순정만이 발휘되는 그의 행동이 뭇 여자들을 설레게 만든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드라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던 캐릭터는 따로 있다. 바로 ‘김희성’.


김희성


  그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굉장한 재치를 드라마에서 맡고 있다. 덕분에 피식피식 웃으며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 극 중 모든 인물들과 케미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상황에서도 씩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는 세상 무해한 그의 성격이 그의 최대 매력이다. 그런데 이런 매력은 그의 최후에서도 너무나 안타깝게 빛을 발한다.


  “너 그것들이랑 한패잖아. 폭도 황은산과 고애신.”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들이구려. (중략) 그런 이유로 그이들과 한패로 묶인다면 영광이오.”


  그동안 찍어온 사진들을 어디에 두었냐고 몽둥이로 맞으며 고통스럽게 고문당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 온몸에 피가 흐르고 퉁퉁 부어 죽음을 앞에 두고도 기꺼이 영광을 찾으며 씩 웃을 수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인생을 김희성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일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언제나 적당한 재치를 가지고 사는’ 유진 초이가 자신의 인생 모델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듣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김희성의 마지막을 보고 결심했다. 나는 저렇게 살고 싶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세상 철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굳히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낭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내가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이 드라마에서 눈물을 유발하는 장면은 애틋한 사랑신(scene)이 아니다. 일반 백성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애국심을 가지게 되는 그 과정에 대한 감정선 연출이 더 절절하다.


  “도모한 이가 누구요?”

  “조선인들이요.”


  그저 평범하게 전당포를 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위험해질 것을 알고도 쿠도 히나에게 폭탄을 구해다 주고, 끝끝내 의병에 동참한 그들은 왜 독립운동에 가담해야 했을까. 의병이 되지 않아도, 사소하게라도 조선을 아끼려던 그 마음들이 조선을 도운 이유는 딱 하나다. 조선인이기 때문에. 일본군들을 죽이는 일을 누구와 가담했냐고 물을 때 당당히 ‘조선인들’이라고 대답하는 조선에 대한 긍지. 단지 조선인이기 때문에 묻지도 않고 의병들을 비롯한 사람들을 돕는 그들. 그 모든 사람들의 애국심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다. 아마 절절한 사랑 이야기보다 더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볼 수 있을지도.



  “화려한 날들만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질 것도 알고, 이런 무기로 오래 못 버틸 것도 알지만 우린 싸워야지. 싸워서 알려줘야지. 우리가 여기 있었고, 두려웠으나 끝까지 싸웠다고.”


  극 중 의병장인 황은산(김갑수)의 말이다. 만약 내가 그 황은산이 있던 그 자리에 열 명 남짓의 동료들과 함께 낡아빠진 구식 총을 가지고 그 많은 일본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면 나는 그곳에서 대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질 것을 뻔히 알고도 나는 그렇게 용감하게, 두려웠으나 끝까지 싸울 수 있었을까. 과거의 선조들은 그러했다. 질 것을 알고, 죽을 것을 알았고, 무척이나 두려웠겠지만 그들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물을 수 있다. 우린 대한의 역사를 위해 두려움을 알고도 달려 나간 이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의 석 자 이름조차도 읊을 수 없는 그런 현대 속에서 나는 살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그렇게 달려 나가는 장면보다도 임관수(조우진)가 고종(이승준)에게 울부짖으며 전사한 의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던 그 구슬픈 장면에 더 눈물을 쏟고 만 것이다. 태생부터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평범하디 평범한 이름들과 저 평범한 이름마저도 나는 알고 있는 게 하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울었다. 그저 그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박무걸, 이상복이 아닌 ‘의병 박무걸’, ‘의병 이상복’으로 불리는 그 비명 섞인 임관수의 보고가 고마웠을 뿐이다.




*사진출처 : 미스터 션샤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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