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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쥬 Feb 12. 2020

착한 딸과 나쁜 딸 사이

그냥 엄마 딸일 수는 없었던 시간들

사춘기도 없이 조용히 지나갔던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엄마 껌딱지였다. 엄마 말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엄마의 기분을 살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표정이 어두우면 엄마 등에 찰싹 들러붙어서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묻고 ‘엄마한테는 내가 있잖아. 다른 거 보지 말고 엄마는 나만 보고 살아'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어린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엄마가 힘들어 보였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던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자 변해버렸다. 더 이상 엄마 껌딱지가 아니었고, 매일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털어놓지도, 이전처럼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 대학생활이 재미있어서 매일 늦게까지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는데, 엄마는 그게 너무나 서운해서 나 몰래 엉엉 우셨단다.


나는 그 시기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데, 아마도 엄마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던 모양이다. 나에게 엄마는 50여 통의 부재중 전화와 수없는 메시지, 신경질적인 고함소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딸과 천하의 나쁜 딸 사이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그 사실을 주저 없이 알려주었다. 너는 내 분신이고, 나의 숨구멍이고,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했다가, 넌 정말 나쁜 딸이고, 어떻게 엄마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차라리 딸이 없다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너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또 어느 날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나에게 쏟아냈다.


엄마는 감정의 기복이 큰 사람이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온몸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행주든 콩나물이든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있는 힘껏 탁 내려놓고는 숨을 식식거리고 발을 쿵쿵 구르는 소리를 내며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밖으로 들리도록 화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가끔은 울음소리가 났다. 그러면 어김없이 나는 방으로 쪼르륵 따라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엄마에게 온갖 애교를 부렸는데, 엄마는 쉽사리 화가 풀리는 법이 없었다. 화가 난 엄마를 따라 들어가지 않은 것도 아마 대학생 즈음이었나 보다. 


착한 딸이 되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딸'로 돌아가고야 마는 경험을 계속하고 나니 힘이 들었다. 내가 정말 잘못한 적도 있었지만, 어떤 때에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게 ‘나쁜 딸'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그 말 한마디에 내 존재 자체가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착한 딸, 또는 엄마를 괴롭게 하는 나쁜 딸 둘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냥 엄마 딸일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끊임없이 사랑받을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나에게 주입한 것이 엄마인지 아니면 나 자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기대치에 맞춰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친 건 나다. 그리고 먼저 나가떨어져 버린 것도 나다. 엄마의 기대와 실망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착한 딸이 되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딸이었다면 엄마의 인생은 마냥 행복했을까? 엄마의 인생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어렸을 땐 몰랐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었고, 나만 잘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랜 기간 허우적거렸다. 


엄마의 ‘나쁜 딸' 한마디가 나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서운한 감정의 정제되지 못한 표현에 불과하다는 걸 이젠 알지만 그럼에도 그 말은 아프다. 여전히 엄마에게서 종종 ‘넌 참 나쁘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엄마, 미안’ 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라는 상냥한 말 한마디면 금방 풀어질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짧고 이쁜 말이 잘 나오지 않아 그 마음을 알면서도 무시해 버릴 때가 많다. 엄마의 그런 평가가 부당하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드리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이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그 말이 나를 짓누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 항상 착한 딸일 수 없었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괴로워하지는 말자. 엄마가 나에게 그걸 강요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절대적인 존재로서 엄마를 바라보는 어리고 작은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가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던 그 시절 엄마에게 가장 절대적인 존재가 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존재가 너무 묵직해서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지금의 나는 그 어린아이가 아니다. 이제 나에겐 감당해낼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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