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순간

무대, 연극, 조명

by 케잌

1. 연극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2. 지나간 시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지만 대학에서 연극을 했던 때의 기억은 유독 선명하게 빛난다.

3. 관객들이 모두 입장한 후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틀던 음악은 지금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4. 무대에 조명이 탁 들어오던 순간, 조명이 너무 밝아서 관객석은 그저 암흑, 관객이 잔뜩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지만 그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5. 첫 대사를 내뱉던 순간, 너무 떨려서 머리가 하얘졌는데도 수백 수천번 연습을 통해 몸에 익은 대사와 동선은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6. 어떤 날은 감정에 푹 빠져서 모든 게 자연스럽다가도, 또 어떤 날은 대사 하나하나를 억지로 끄집어내야만 했다.

7. 연습 내내 수도 없이 본 얼굴이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대사인데 어느 날 마주친 상대배우의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버려 연습실 전체가 눈물바다가 된 적도 있다.

8. 하루 종일 내 배역만 생각하고 상대역과 사랑에 빠지고 미워하며 매일을 살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 밀려오는 공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9. 누군가 나의 연기력에 대해 지적을 할 순 있어도, 내 노력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했다간 그 자리에서 치고받고 싸울 기세로 달려들던 과몰입의 경험이다.

10. 살면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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