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외롭지만 불행한 건 아냐

by 케잌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질문이 잘못되었네요.


마치 외로움이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감정인 것마냥 물었으니까요. 얼마나 자주, 어떤 순간에 유독 외로움을 느끼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외로움은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입니다.

살면서 외롭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요, 시기마다 양상은 조금씩 달랐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주로 세상이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마음의 혼란을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 시기의 저는 감수성이 철철 넘쳐흘러 틈만 나면 시를 쓰고 소설을 썼어요. 지금은 차마 눈뜨고 읽지 못하는 글이 대부분입니다. 한 문장에 형용사를 열두 개쯤 넣는 것은 기본이고, 5줄이 넘어가도록 도무지 문장이 끝나지 않는 만연체를 즐겨 썼습니다. 소설의 장르는 늘 비극적인 로맨스여서 등장인물을 잔뜩 만들어 낸 다음 어떻게 마무리할 줄 몰라 이러저러한 병과 사고로 모두 죽여 버리고(?) 끝을 맺곤 했어요.


잠시라도 혼자가 되는 것을 못 견뎌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하다 못해 오늘 같이 점심 먹을 친구가 없을까 봐, 수학여행 갈 때 버스 좌석에서 짝이 안 맞을까 봐, 금요일 저녁인데 약속이 없을까 봐, 나만 애인이 안 생길까 봐 걱정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영혼의 단짝 친구'가 저에게만 없는 것 같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진짜 엄청난 우정’을 경험하지 못한 제 인생이 실패작인 것처럼 느껴져 퍽 외로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느꼈던 ‘혼자라서 외롭다'는 감각은 일정 부분 사회적으로 학습된 외로움인 것 같아요.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왜냐하면 사실 저는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거든요. 밥 먹고, 영화 보고, 쇼핑하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여행하는 것 모두 혼자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정말 외롭다기 보단, 혼자인 것은 ‘사회성 결여의 증거'이고, 혼자인 것을 들켜서는 안 되는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외롭다는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는 듯합니다.


20대에 공부하고 일하며 외국을 돌아다닐 때에는 처음으로 타지에서 혼자 살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언제나 저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가족과 함께 살았고, 학교와 직장엔 친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곁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진짜 혼자 남겨진 거예요. 놀 때는 세상모르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스스로가 처량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느낀 외로움은 마음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혼자 노는 기술은 이미 터득했고, 손 닿는 곳에 언제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외로운 순간은 찾아옵니다.


저는 K-장녀 역할에 과몰입한 나머지 어려서부터 어리광을 부린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자랐어요. 다른 사람 힘든 건 늘상 걱정하면서도, 정작 제가 힘들 땐 어른스럽게 혼자 해결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떡볶이를 먹다가 문득, 젠장, 그럼 나는 제대로 어리광도 못 부려보고 죽는 건가 싶어서 억울함과 외로움이 덮치듯이 밀려왔어요. 먹던 떡볶이를 냅다 집어던지고 바닥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구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요즘도 종종 외로움을 느낍니다. 40대가 되어 느끼는 외로움은 이전의 것과는 또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습니다. 나를 100% 이해해 주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건 외로운 일이지만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저 조차도 저를 완벽히 이해하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최대한 친절하고 관대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요. 스스로의 곁에 (궁시렁거리며) 언제나 있어주는 것, 나이 들어 연마해야 할 중요한 스킬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모두가 조금씩은 외롭다는 사실이 나의 외로움을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외로움이 저만 겪는 것은 아니라는, 그러니까 내가 특별히 괴상하고 억울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은 줍니다.


‘외로운 건 맞지만 불행한 건 아냐'


이 문장을 곱씹고 있어요. 외롭다는 사실까지 부정하진 않지만, 이 감정은 지나갈 것이라는 점, 외로워서 불행한 것까진 아니라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덧) 노오란 프리지어를 심었습니다. 향기가 기가 막혀요.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을 흥얼거리며 춤을 췄더니 외로움이 (창피해서) 도망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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