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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Jun 13. 2021

실패담

혼자서 할 일이 아니란 걸 깨닫기



김제형의 <실패담>이라는 노래는 실패에 관해 구슬프지만 경쾌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패를 이야기 하는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의 이름은 <사치>. 기이하게 느껴졌다. '사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곧장 드는 해석은 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무언가를 쓴다는 거였다. 이 앨범의 이름에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어떻게 포함될 수 있을까 배부른 호기심이 들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에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실패'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고 그르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고, '사치'는 위에 설명한 뜻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다른 측면의 정의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마음을 쓰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침'.


마음을 쓰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쳤기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고 그르침. 사치와 실패를 연결한 해석이다. 그래, 사치는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재가 될 수 있겠구나. 내 멋대로 해석이지만 '사치'의 정의를 마음 씀씀이와 연결하고 노래 가사를 읽으니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들이 전해졌다.



가닿지 못했던
들리지 않았던
들을 수 없었던
수많은 얘기들

지워아먄 했던
지울 수 없었던 것
그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란 걸 깨닫기 까지


시간이 지날 수록 단단함을 더해가는 관계도 있지만, 맺어지고 무르익다 끝내 저무는 관계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저물어버린 해가 다시 뜨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정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추억으로라도 계속 선명할 줄 알았지만 끝내 빛이 바랜 우정, 미지근하게라도 잔잔하길 바랐지만 그 온도마저도 잃고만 사랑을 보내는 일은 늘 나와 함께 관계의 당사자였던 그들, 혹은 그와 함께였다.


관계는 소멸되어 함께했던 사람의 형태는 저 멀리 사라지고 없지만 나의 특정한 기억과 기록, 물건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남아있는 기억을 쉽게 지우는 방법같은 건 없다. 그럼에도 지워야 하니 기록과 물건을 정리하다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에 다시 마음의 발목을 붙잡히고,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불변의 사실에 애달파 한다. 손에 기록과 물건이 닿을 때 마다 켜켜이 쌓인 기억을 헤집으며 이제는 없는 사람들을 계속 돌이켜야 한다. 


기억 한 켠에 빳빳하고 두껍고 무언가 잔뜩 인쇄되어 있는 종이가 있다. 종이의 한 부분을 계속 접었다 피면서 모서리를 닳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접히고 펴지는 동안 하얗게 닳아 무엇이 있었는 지 추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지울 수 없었고 지울 수 없으리라 여겼던 사람들은 그렇게 지워져 간다.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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