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월 26일 Australia Day이다. 영국 이주민이 함대 선원들과 함께 1788년 1월 26일 시드니 록스 지역에 최초로 상륙한 날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개천절 비슷한 개념인데 사실 호주의 원주민에게는 침략당하고 죽고 생존한 추모의 날(Day of Mourning)이다.
게다가 지난 12월 유대인 명절 하누카 첫날 본다이 해변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나 16명이 사망했다. 덕분에 추모의 의미로 호주 크리스마스와 신년 전야제 불꽃놀이가 취소되었고 여태껏 호주 곳곳에서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드니를 포함해 호주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원주민들의 침공의 날 행진부터 반유대주의 시위, 심지어 반이민 시위까지... 서호주 퍼스에선 폭발물로 의심되는 장비를 투척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호주 정부는 마음먹고 국민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대규모 호주의 날 행사를 마련했다. 올해는 역대급으로 14년째 호주에 살면서 이렇게 큰 호주의 날 행사는 처음이었다. 시드니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근처에는 25만 명가량의 인파로 가득 찼고 육, 해, 공 삼군 퍼레이드에 불꽃놀이에 크루즈퍼레이드에 축하공연에 그야말로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다.
또한 ABC뉴스 1면 기사에는 다민족 이민자들의 시민권 서약식 행사와 올해의 호주인 시상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정말 호주스러웠다. 다인종 국가라는 게 호주의 자랑스러운 성취이자 동시에 테러와 시위를 일으키는 맹점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늘 호주의 날 공연 사회자는 세 명이었는데 인종적으로 다양한 구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호주였다. 확실한 계획하에 정확한 비율로 프로그램과 행사의 목적에 따라 인종쿼터제를 둔다고 볼 수도 있겠다.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이나 앤작데이(ANZAC)행사는 늘 백인들인데 지상 최대의 게이축제인 마디그라 공연이나 오늘처럼 호주의 날 공연 때는 꼭 마이너 인종 한 명이 메인 사회자로 등장한다. 오늘은 제레미 페르난데즈라고 말레이시아 태생 호주 국영방송 ABC소속 언론인이 마이크를 잡았고 나머지 두 명은 호주 백인으로 성비를 맞추어 남녀 한 명씩 유명 음악가가 사회를 보았다.
그리고 공연 내내 총괄 피디의 지시하에 카메라맨이 비추는 곳은 다인종 국가의 주류들이었다.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주류인 백인의 경우 메인 카메라 정면샷을 오랫동안 많이 비추어 주는 반면, 비주류 아티스트의 경우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 모습 (이마저도 백인들이 대부분)을 비추어 시청자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연주단 뒤에 학교 대표로 뽑힌 청소년 합창단 모습도 백인 아이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
호주 원주민 공연은 아티스트가 중심인 듯 중심이 아닌 프레임으로 흘렀다. 원주민 오케스트라 공연인데 원시의 테마를 현대로 가져온다는 주제 하에 드론을 띄워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오페라 하우스 지붕에는 원주민 페인팅을 레이저빔으로 쏘고 형형색색의 빛으로 밤하늘에 수놓은 모습을 연신 카메라가 비추는 통에 정작 원주민 언어로 노래를 부르고 원주민 악기를 부는 아티스트들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주류의 범위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선까지 확실히 그어주는 호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피날레 공연에 꼭 부르는 호주 국민노래 I still call Australia home을 떼창 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사실 이 노래가 나오면 종종 눈물을 훔치곤 했었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멀리 떠나와 오래 돌아다녔고 여러 곳을 봤지만 그래도 내가 돌아갈 곳인 여기다는 생각에, 안도감에 눈물이 흘렀다. 많은 사람, 여러 문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이런저런 다툼을 벌이며 살아가는 호주지만 마지막에 그래도 우리는 하나의 집이라는 메시지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게 되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게 호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인우월주의, 백호주의, 반이민주의 그래서 생겨나는 이민 감축 정책... 혐오 범죄... 언론에서는 주류 중심으로 포장되어 흘러가고... 직장에서도 백인이 주류가 되어 굴러가고... 사회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힘 있는 주류인 백인들에게 우선권이 가고...
그렇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I still call Australia home를 듣고 따라 부르며 오늘 같은 호주의 날에 눈물이 났던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있어도 되는 나 자신을 받아준 곳이기에, 나의 취약함을 드러내도 안전한 곳이기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존엄을 지켜준 곳이기에, 그렇기에... 한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었다. 왜 주류 중심으로 인종쿼터제를 두고 국가 행사 공연 때마다 다인종 국가의 상징인 유색인종이 아닌 주류 인종이 카메라에 많이 보이는지... 국가의 주축인 주류가 흔들리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그러면 비주류들도 살아갈 곳이 없어진다. 마이너로서 내가 지금 마음 편히 돌아갈 집(Home)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I still call Australia home을 외치며 울었던 건 분명 호주 사회의 주류 인종이 만들고 꾸려나가는 시스템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앞으로도 여기저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곳을 고쳐야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마음 편히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 호주가 고맙다.
그렇다. 행복한 호주의 날, 해피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I still call Australia home Lyrics
I've been to cities that never close down 잠들지 않는 도시를 다녀봤지요
From New York to Rio and old London town 뉴욕부터 리오, 오래된 런던까지요
But no matter how far 하지만 아무리 멀리가더라도
Or how wide I roam 아무리 넓은 세상을 돌아다녀도
I still call Australia home. 난 여전히 호주를 내 집이라 불러요.
I'm always travelin' 난 늘 여행 중이고
And I love bein' free 자유로운 삶을 사랑하죠
So I keep leavin' the sun and the sea 그래서 따뜻한 햇살과 바다를 떠나오지만
But my heart lies waiting over the foam 나의 마음은 바다 거품 너머에 있어요
I still call Australia home. 난 여전히 호주를 내 집이라 불러요.
All the sons and daughters spinning 'round the world 세상 곳곳을 누비는 이땅의 아들 딸들
Away from their families and friends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멀리 있지만
Ah, but as the world gets older and colder 아, 세상이 점점 더 늙고 차가워질수록
It's good to know where your journey ends. 내 여정의 끝이 어딘지 아는 일은 좋은 일이죠
And someday we'll all be together once more 언젠가 우리 모두 다시 함께 될 거예요
When all the ships come back to the shore 모든 배들이 해안가로 돌아오는 그날에 말이죠
Then I realize something I've always known 그때 난 항상 알고있던 무언가를 깨닫게 될거에요
I still call Australia home. 난 여전히 호주를 내 집이라 부른다는 사실을요.
No matter how far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Or how wide I roam 아무리 넓은 세상을 돌아다녀도
I still call Australia home. 난 여전히 호주를 내 집이라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