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는 대신, 당신의 삶으로 돌려보낸다
이 브런치북을 쓰는 동안
나는 한 가지를 반복해서 보았다.
사건은 짧고,
습관은 길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해석한다.
감정은 날씨였는데
운명이 되고,
생각은 이야기였는데
사실이 되고,
해석은 칼날이 되어
먼저 나를 찌른다.
그래서 힘든 날에는
대개 두 겹의 고통이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내가 세운 문장들.
“나는 원래 이래.”
“나는 결국 이렇게 돼.”
“나는 사랑받기 어려워.”
이 말들은 사실이 아니다.
낙인이다.
낙인은 빠르고,
낙인은 오래 산다.
나는 위로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위로는 따뜻하지만
습관을 바꾸지는 못한다.
대신
당신의 시선을 남기고 싶었다.
세상을 날카롭게 보라는 뜻이 아니다.
나를 찌르는 칼날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 칼자루가
내 손에 있는지.
마음은 종종
나를 보호하는 척하며
나를 가둔다.
그 가둠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신중함이라고 부르고,
성실함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늘 그럴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속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음은 지나간다.
감정도 지나가고,
생각도 지나가고,
해석도 지나간다.
다만 우리가 붙잡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가 된다.
이 글이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은 지연.
바로 믿지 않는 지연.
바로 판결하지 않는 지연.
그 “조금”이 생기는 순간,
당신은 이미
이전의 당신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닫지 않는다.
문을 남긴다.
당신이 또 흔들릴 때,
당신이 또 몰아붙일 때,
당신이 또 운명을 만들려 할 때,
그 문 앞에서
잠깐 멈출 수 있도록.
나의 글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당신의 삶이 쓴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날씨가 지나가고 있나.
그 날씨를, 단 한 번만이라도
운명으로 만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