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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기가 흐른다는 깨달음

단전에서 시작된 이야기

by 데브라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생각만 품었다.

호흡을 따라 내려가 하단전, 즉 배꼽 아래 기해혈에 정신을 모으는 것.

복잡한 이론도, 거대한 목표도 없었다.

“숨이 들어오면 단전이 부풀고, 나가면 잦아든다.”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려 했다.

처음 며칠은 그저 들숨과 날숨만 오갔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잡념들이 더 분주했다.

하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숨이 깊어지고 마음이 조용해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 고요 속에서 아주 미세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따뜻함, 묵직함, 동그란 구슬 같은 느낌.

설명하기 힘든데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

그때 처음으로 “하단전에 기가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알아버린 것이다.

이 감각이 자리 잡자 수련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

단전은 더 이상 상징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느껴지는 중심이 되었다.


마음이 그곳에 머무는 순간, 기가 모이고 퍼져나가는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전깃줄을 따라 전기가 하단전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수련이 초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중단전의 작용을 체험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슴 앞에서 합장을 하고 특정한 흐름을 떠올려보았다.

억지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그저 “이 방향으로 흐르면 어떨까?” 하고 가만히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때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몸이 먼저가 아니라, 기가 먼저 움직였다.

흐름을 상상하자 기가 그 경로를 따라 돌고, 몸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근육을 쓰지 않았는데 움직임이 생겼다.

내가 몸을 조종한 것이 아니라, 몸이 기의 방향을 신뢰하며 따라간 듯했다.


이 경험은 내 안에 큰 질문을 남겼다.
“마음이 향한 방향으로 기가 움직인다면, 기로 이루어진 이 세계도 바뀔 수 있는가?”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세상 만물이 기의 농도와 패턴으로 존재한다고 말해왔다.

현대 과학에서도 물질의 근원을 에너지의 진동과 파동으로 설명한다.

수련 속에서 체감한 사실은 그 오래된 가르침과 신기하게 맞물렸다.

마음이 기를 움직이고, 기는 형상을 만들고, 형상은 현실을 이룬다.

그러니 마음은 단순한 생각의 주인이 아니다.


현실과 연결된 창조의 시초다.


물론 이 말은 “무엇이든 즉시 이뤄진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내 삶을 구성하는 작은 선택, 감정, 의도, 시선이 모두 기의 방향을 정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음이 향하는 곳에 삶 또한 길을 낸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지금 나의 인생이 좋든 싫든 내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여전히 여정의 중간 어디쯤을 걷고 있다.

더 깊은 수련이 남아 있고, 더 많은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마음이 움직이면 기가 움직이고, 기가 움직이면 세상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


우리는 이미 끊임없이 세상을 빚어내고 있다.


알든 모르든, 마음이 향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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