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마음에 남는 것

by 데브라

우리는 고요를 자주 오해한다


고요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이런 장면을 떠올린다.


문제 없는 상태, 아무 생각 없는 마음,
불안도 감정도 사라진 순간.


그래서 고요를 얻기 위해 삶에서 도망치려 한다.


관계를 피하고, 상황을 멀리하고,
감정을 없애려 애쓴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요는
삶을 피한 자리에 있지 않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리에 있다.




고요는 상황이 아니라 태도에서 생긴다


삶이 조용해지면

마음도 조용해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 일도 없는데도 마음은 바쁘고,
고요한 공간에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반대로 일이 많고 상황이 복잡해도
마음이 고요한 사람이 있다.


차이는 단 하나다.


무엇을 바라보는 태도다.


고요는 사건이 사라질 때 오는 게 아니라,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바뀔 때 온다.




고요는 감정을 없애지 않는다


불교는 감정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슬픔이 오면 슬픔을 느끼고,
불안이 오면 불안을 느끼고,
분노가 오면 분노를 알아차린다.


다만 그 감정을 밀어내지도,
그 감정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아, 지금 이런 감정이 있구나.”

하고 바라본다.


이 바라봄이 생기는 순간 감정은 소리를 낮춘다.

고요는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과 거리를 둔 상태다.




바라봄이 생기면 고통은 성질이 바뀐다


감정을 바라보지 못할 때 고통은 나를 삼키는 파도다.


하지만 바라보는 순간 고통은
내 앞을 지나가는 현상이 된다.


같은 고통이어도 그 성질이 달라진다.


아프지만, 무너지지는 않고 괴롭지만,

끌려가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고통에 끌려가지 않는 상태다.




고요는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연습이다


고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깨달음이 아니다.


매 순간의 작은 선택에서 만들어진다.


– 반응하기 전에 한 번 바라보기
– 해석하기 전에 잠시 멈추기
– 판단하기 전에 숨 고르기


이 사소한 연습들이 마음을 조용한 자리로 데려간다.


고요는 삶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자세다.




고요는 늘 지금 여기에 있다

고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도망쳐야 얻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느끼고,
생각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감정이 머물다 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 자리에는 이미 고요가 있다.


불교가 말하는 고요는
삶을 떠난 상태가 아니라
삶 한가운데에서 깨어 있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고요는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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