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된 마음

감정은 지나가는데, 우리는 붙잡는다

by 데브라

아침 지하철.
사람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래도 서로를 흔든다.
어깨가 스치고, 숨이 섞이고, 각자의 하루가 서로에게 미세한 충돌이 된다.


휴대폰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소식이 아니라 판결처럼 보였다.
나는 괜찮은 척 고개를 들었지만 숨은 이미 얕아졌다.
누가 나를 밀지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밀렸다.


“왜 이렇게 예민하지?”


이 질문은 위로가 아니다.
대개 그것은 두 번째 공격이다.
감정이 먼저 나를 치고, 내가 다시 나를 친다.
우리는 상처를 줄이려다가, 상처를 더 정확히 만든다.


감정은 생각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대개는 몸에서 시작한다.

가슴이 조여오고, 목이 잠기고, 어깨가 올라간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눈이 조금 뜨거워진다.
그 다음에야 우리는 늦게 이름을 붙인다.
불안, 분노, 서운함, 초조함.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문제가 커진다.
감정은 상태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나로 바꿔버린다.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에게 거는 오래된 주문이다.
지나가는 것을 붙잡아 고정시키는 주문.
날씨를 운명으로 착각하는 주문.


그러나 감정은 날씨다.
지나간다. 옅어진다. 바뀐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다.
감정을 붙잡는 습관이다.


불안이 오면 마음은 이유를 찾으려 뛰기 시작한다.
이유가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달리기 속에서 생각은 이야기를 만든다.
“망할 거야.” “미움받을 거야.” “난 틀렸어.”
이야기는 늘 빠르고, 늘 단정적이다.
그리고 늘 나를 위해 말하는 척한다.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감정이 강할수록 이야기는 더 진짜처럼 보인다.
우리는 사건보다 해석에 의해 찢긴다.
사건은 한 번인데, 해석은 끝없이 반복된다.


어떤 날은 감정보다 생각이 더 잔인하고,
생각보다 내 안의 목소리가 더 폭력적이다.
세상은 조용한데, 내 안만 법정처럼 소란스럽다.
증거도 없이 판결이 내려지고,
나는 그 판결을 ‘나’라고 부른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감정을 이기는 힘이 아니다.
감정이 나를 전부라고 선언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멈출 수 있는 자리다.


감정과 함께 휩쏠리는 나도 있고,
그 감정을 바라보는 나도 있다.
둘은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같은 자리가 아니다.
하나는 즉시 믿고, 하나는 조금 늦게 믿는다.
그리고 그 “조금”이 삶을 바꾼다.


감정은 지나간다.
다만 우리는 지나가는 것을 붙잡아 삶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붙잡음의 이름을, ‘나’라고 부른다.


오늘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날씨가 지나가고 있나.
그 날씨를, 단 한 번만이라도
운명으로 만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