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마흔 이후의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유인 즉슨, 그전까지의 인생은 개발하고 생산하고 나아가는데 반면, 그 이후의 인생은 지키고 소모하는데에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올해 나는 마흔이 되어버렸다. 매년 4월 1일이면 세상을 이미 떠나가버린 내가 좋아했던 장국영을 그리워하고, 성공하고 나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해 넥타이에 목을 메어 죽었다는 김광석을 떠올려가며 다짐했던 그 시기가 와 버린 것이다.
딱 그 시점에,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다. 먼저 의사를 밝히며 사직서를 던졌고, 퇴직 이후에도 선심써주듯이 원래 받던 급여에 근접한 액수로 몇 달 간의 유지보수 계약을 맺었지만, 어쨌건 근본적으로 무수한 퇴사압력과 잉여취급, 문제적 인간 대우를 받아야 했던 시간에 등 떠밀려 이루어진 일이었을 뿐이다.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를 흥얼거리며 기세좋게 보안문을 박차고 연구소를 나올때는 확실히 좋았다. 아닌 게 아니라, 커리어를 쌓아가는 내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노동력을 착취당한다는 느낌으로부터 오던 좌절감은 그야말로 생활과 인생을 갉아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인 셈이었으니까.
나는 프로그래머다. 나름 실력에 자신도 있고, 자신이 있던 만큼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해왔다. 같이 일을 해왔던 업체들은 언제나 프로젝트가 마무리 될 때면 함께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손을 내밀었고, 나는 도덕적이며 또 쿨한 태도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 대한 충성도를 넌지시 비추며 고사를 했다. 그러한 결정들이 후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한켠에 사실 따로 하고 있는 생각은 언제나 있었다.
머리가 굵어지던 시점부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했고, 대학을 가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고, 사회에 나와서 프로그래머로 먹고 살았던 나름 재능과 적성과 흥미와 현업이 일치하는 복 받은 인생이지만, 대신에 그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던 이유로부터는 차근차근 멀어지고 말았다.
나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고, 늦었을 리도 없지만 사실 직감하고 있다. 어지간한 극적인 변화와 결심이 있지 않는 한은 건드릴 수 없다고.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그런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작은 기회를 마련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프로그래머로 종사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구구절절하게 한번 늘어놔볼까 싶다.
프로그래밍 언어이건 스스로의 이야기이건,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쓴다는 게 꽤 즐겁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잡문들만 쓸 게 아니라, 남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들도 정리해봐야겠다. 재미난 취미가 하나 생겼다. 만들고 싶던 게임은 이렇게 또 멀어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