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거 허위사실 유포 피해를 입고, 관련해서 민형사 재판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글 : 허위사실 유포 피해, 민사 소송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반려인과 함께 '허위사실 유포 피해'라는 황당한 사건을 잘 헤쳐나간 기억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제 반려인이 썼던 글을 기록 차원에서 브런치에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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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아침 갑자기 SNS에서 친족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 지옥과도 같은 사건이 작년 말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새벽 4시, 반려인이 잠 못 들고 있길래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더듬거리면서 자신이 어느 유명 작가의 메일링에서 친족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거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즉시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제가 반려인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려인에게는 여성 친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여동생이나 누나가 없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19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반려인의 트위터 멘션창에는 "피씨한 척 하더니 네가 친족 성폭력 가해자냐?ㅋㅋ"라는 식의 메시지가 와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오해일 거라고 말입니다. 반려인에게는 여성 친족이 없고 그 유명 작가는 이미 저와 인터뷰를 두 차례나 한 작가였기 때문에 저에게 연락처가 있었습니다. 저는 반려인을 안심시키고 해가 뜨면 작가에게 연락을 해서 오해를 풀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지옥 같은 4시간이 흐르고, 저는 8시경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위를 물었습니다. 작가는 "아닌데, 그사람이 (친족 성폭력 가해자) 맞다는데요?"라는 말을 반복하더니 성폭력 피해자를 바꿔주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와 대화를 나눈 끝에 피해는 실재하지만 가해자가 잘못 지목이 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황당한 마음을 억누르고 죄송하다는 말을 기다렸지만 피해자는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전화를 붙잡고 있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작가에게 긴 내용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즉시 정정하고 사과해달라는 내용이 요지였습니다. 작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사과문은 빨리 올라왔지만 많이 불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SNS 상의 괴롭힘에 지친 저와 반려인은 그 사과문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빨리 끝이 났다면서 반려인과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일부가 트위터 상에서 온라인 괴롭힘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반려인에 대한 비방과 명예훼손과 함께 #OOO작가를지지합니다 #틀린연대는없다 같은 해시태그를 붙여 해당 작가에게 "연대"를 했습니다.
작가는 사과문을 올리고 괴롭힘에 대해서는 트위터 상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자 평소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던 저는 상태가 악화돼 급하게 병원을 찾아서 비상약을 처방받았습니다. 반려인도 약을 증량했습니다. 밥을 먹지도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인터넷 접속을 끊었고 작년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 뒤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 오랜만에 글을 올렸습니다. "2020년의 후회 : 없음."
저는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과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건 아마도 인간에 대한 명백한 환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한 일을 바로 지적하면 진심으로 반성할 거란, 인간에 대한 제 믿음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해당 메일링 서비스를 책으로 묶어서 낸다는 소식이 한 언론 매체 기사를 통해 저희에게 전해졌습니다. 물론 저의 반려인을 음해한 내용이 책에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저는 다시 한 번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괴롭힘의 여진은 여전히 저희 집을 뒤흔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이 찍히면 그 후로는 죄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쟤 과거에 뭔가 있지 않았어?'라는 식의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됩니다. 실제로 몇 달이 지났지만 트위터 일부에서는 반려인에게 그런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메일링 서비스를 묶어서 책을 낸다니 도무지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저와 반려인은 너무나 커다란 고통 끝에 작가에게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됐습니다. 첫 피해로부터 약 1년 뒤인 오늘, 작가와의 민사 합의가 끝났습니다. 작가는 몇 번이나 실망스럽고 성의가 없는 사과문을 보내왔고 저희는 그걸 수정하면서 조정 시기에도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습니다. 이제는 이 일을 끝내고 싶다는 것. 지난 1년은 저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그 작가에 대한 소식이 조금이라도 들려올 때마다 힘들었고, 심장이 두근거렸으며, 한 번 증량한 약은 쉽게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반려인이 공유한 문제의식은 다음이었습니다. 친족 성폭력 피해는 실재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성폭력 피해자를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에서 대응을 출발했기 때문에 저희는 저희가 입은 피해를 공론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반려인이 온라인 괴롭힘을 당할 때 조금이라도 자신의 책임을 느끼고 진화에 나섰다면 어땠을까요. 아니, 처음부터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문을 잘 썼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랬으면 1년 가까이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겠죠. 아니, 처음부터 친족 성폭력 가해자를 지목할 때 신중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니, 메일링에 저희 반려인의 트위터 아이디를 조각내서 섞어둔 뒤 "욕을 합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친족 성폭력 가해자를 지목하는 일을 그 메일 수신자들이 마치 게임처럼 여기도록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저희는 합의금액보다 민사를 위한 변호사 비용을 더 지출했습니다. 합의금으로 받은 금액 중 일부는 소액이지만 성폭력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 돈은 그저 민사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을뿐 저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돈입니다.
이 재판이 끝나고 저에게는 아직 별개의 재판이 더 남아있습니다. 그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입니다. 재판을 끝나고 또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늘 이런 식으로 법정으로 문제를 가져가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고 고통이 경감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