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꿈꾸었던 마흔, 여자들만의 여행이야기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먹을거리를 챙기고 아이들을 깨워 겨우 식탁 앞에 앉힌다. 먹기 싫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녀석들을 보며 속상하고 짜증 나는 마음을 뒤로하고, 어르고 달래 겨우 아침밥을 먹인다. 족히 백번이 넘는 잔소리 끝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깊은 숨을 '후' 내뱉는다.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는데 경쾌한 '카톡' 소리가 들린다. 몇일 전 만난 친구다. 음악을 듣다 내가 생각난다며 보내준 '낭만적인 파리의 아침을' 플레이스트!! 씩~웃음이 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파리를 생각하면 내가 생각난다니.
아이들을 챙기느라 맥이 빠진 내게 이 카톡 하나에 봄바람이 느껴진다.
좋아!! 파리를 느끼며 설거지를 해볼까?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며 설거지를 시작한다.
스텔라 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
1년 전 나의 파리로 나를 데려간다.
오! 나의 파리
마흔이 된 우리들은 결심했다.
우리를 위한 여행을 하기로!!
기나긴 코로나로 몸도 마음도 지친 우리는 지금이 적기라며 파리여행을 계획했다.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우리는 직장생활이 시작된 스물넷, 그 무렵 30,000원씩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만나면 맛있는 거 사 먹고 나머지는 모아 언젠가 여행 가자며 모아둔 돈!!
우리는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시간 내어 만나 요즘 만나는 남자에 대해, 짜증 나는 직장동료에 대해, 잘 풀리지 않는 내 상황에 대해 끝나지 않는 수다를 떨었고, 내가 결혼하기 직전 홍콩여행도 갔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는 1년에 2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친정으로 오는 명절, 새벽 시간을 틈타 2시간 정도 얼굴을 보니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생사를 확인할 뿐..
그런 우리들이 파리를 계획했으니 얼마나 설레었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물론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조건 가자!!'를 외친 후 10일 가까이 되는 휴가를 회사에 어떻게 말을 할 것인지, 아이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어찌해야 하는지, 남편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각자의 고민들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떠난다!! 반드시 떠난다!!
2023년 5월로 날을 픽스하고 1년 후 떠날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1년 후 떠날 여행의 전반적인 계획을 맡은 덕분에 공황발작까지 겪으며 우울의 끝으로 달리던 나에도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 셋 엄마로 끝없이 반복된 출산과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남편과의 단절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마음의 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누군가는 집에서 애만 키우는데 뭐가 힘들다고 징징거리나 싶을 수도 있지만 육아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자기실현욕구가 높은 사람에게는 아이들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심리상담을 다니면서 나에 대해 깊이 탐색하는 시간을 갖으며 이 모든 슬픔과 우울이 아이들과 남편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이 텅 비어있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모든 걸 그만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매일 같이 집 앞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무엇인지 모를 나를 위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파리 여행은 진정한 선물 같았다. 살아내라고!! 살다 보면 이렇게 살아내야 할 이유가 생긴다고!!
그날부터 파리관련된 여행책과 박물관, 예술가, 미술사책 등을 뒤지며 나의 파리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