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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찾아서, 그리고 나를 찾아서

Humans of daiv. 스물네 번째 이야기: 허준혁

by 딥 다이브

신촌에서 허준혁을 만났다. 준혁은 인공위성 기반 솔루션 회사에서 AI 리서처로 일하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가파르다. 이토록 변화가 거센 시대에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러한 와중에서도 스스로를 깨닫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이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고 싶은 연구를 찾아, 그리고 자신을 찾아 대학원 입시에 도전하는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인공위성 기반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에서 AI 리서처로 일하고 있는 허준혁이다. 현재 하는 일은 리서치보다 엔지니어링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맹그로브 나무를 탐지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고, 이와 관련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회사에서 최근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해 달라.

맹그로브는 바다 근처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다른 나무들보다 탄소 흡수량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ESG 경영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맹그로브 숲의 분포를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맹그로브 나무를 일일이 탐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위성사진을 기반으로 맹그로브 숲과 일반 숲을 분별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맹그로브와 일반 나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나뭇잎마다 빛을 반사하는 분광 특성의 차이를 활용한다. 전통적으로는 수식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이를 분석하지만, 나는 딥러닝을 이용한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 다만, 딥러닝 모델은 일반적인 RGB(적·녹·청) 이미지만으로는 분광 정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른 여러 파장대(Band)를 포함한 위성 이미지로 학습하고, 이를 통해 맹그로브 숲을 정밀하게 분류(Segmentation) 한다.


요즘 회사 생활 중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하는 연구의 가치를 회사에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맹그로브 프로젝트처럼 고객사의 니즈가 명확한 경우에는 연구의 방향이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회사는 결국 ‘이게 돈이 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물론 회사에서도 인공지능 국제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더라도 연구 가치가 있다면 인정해 주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하고 싶은 연구를 완전히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


평소 퇴근하면 주로 무엇을 하는가.

주중에는 퇴근 후 매일 밤 11시까지 운동을 한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저녁까지 회사에서 식사하고, 야근을 마친 뒤 10시쯤 퇴근하는 편이라 완전히 야행성 생활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취미로 게임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게임도 하지 않아서 운동이 사실상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겠다 (웃음).


다이브에서는 머신러닝부터 비전까지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위성 분야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위성 분야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내 학부 전공과 관련이 깊다. 전공을 살리면서 인공지능 연구를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환경공학을 전공했는데, 토목공학과 유사한 점이 있다. 당시 사회환경학 교수님 중 한 분이 위성사진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고 계셨는데, 그분이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접목한 연구를 하고 계셨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위성 AI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시 대학원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이전까지만 해도 위성사진 분야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사에 와서 인공지능 모델을 직접 다뤄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도구로 사용하는 데서 그치기보다는, 인공지능 자체를 깊이 있게 공부한 뒤 다시 산업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지금은 인공지능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방향을 잡은 상태다.


또한 언젠가는 다시 토목 분야로 돌아가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학위가 있다면, 비즈니스를 추진할 때 사람들을 더 설득력 있게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목 분야에서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가?

토목 분야는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구조로 인해 비효율적인 하청 체계가 반복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기존의 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해 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발주하고, 시공사가 “저희가 하겠습니다”라며 수주를 받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이후 시공사는 설계사에, 설계사는 다시 엔지니어링 회사에 일을 맡기면서 하청 구조가 끝없이 이어진다. 결국 엔지니어링 회사가 실제 엔지니어링을 하기보다는 관리·감독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최소한의 관리자들이 빠르게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이 구조를 바꾼다면 어떨까? 더 이상 하청을 과도하게 맡기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절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한 데이터가 잘 확보된다면 인공지능이 이러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최초로 다이브에서 1년을 활동한 멤버다. 본래 꾸준한 편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연이 있는지.

나는 꾸준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인 것 같다. 최근에서야 내가 자아(Ego)가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슨 뜻이냐면, ‘난 이거 무조건 할 거야’라는 확고한 의지가 많이 없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도 그쪽으로 흘러가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축구하니까 그냥 같이 하고,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니까 나도 그렇게 했다. 다이브 활동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면 ‘나만의 길’을 찾아가려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런 성향 때문에 대학원 연구실을 선택할 때도 특정 분야를 정해두지 않고, 그저 좋은 연구실을 찾고 있다. 나에게 좋은 연구실이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그 연구실에서 내가 가장 못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앞으로 연구를 한다면,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은가?

누군가 “연구의 목표가 뭐예요? 해결하고자 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아직 스스로의 자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이다. 우매함의 봉우리라는 표현을 인용하면, 봉우리에서 내려와 골짜기에 서 있는 느낌이다 (웃음). 다이브 마지막 활동 당시에는 딥러닝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얼마나 모르는지를 깨달았다.


연구가 무엇인지, 좋은 논문이란 무엇인지, 리서처와 엔지니어가 무엇인지를 회사에 와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앞선 질문에 답하는 것이 나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 연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있나?

논문을 많이 읽어야 이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어떤 논문을 써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나는 진득하게 논문을 읽기보다는, 직접 무언가 하나 만들어보고 결과를 확인하는 걸 더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대학원에서는 논문만 읽고, 논문만 쓰는 고통이 시간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진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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