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너티클라우드

20240907 그들은 어떤 관계일까

by Om asatoma

너티클라우드

우유와 땅콩크림 위에 올려진 에스프레소.

어쩜 이렇게 느끼할 수 있는지


시작은 거창했다.

작품 같은 글도 하나 쓰고

다른 사람의 글도 읽고 뭐 그런 류의.


보통은 한 번 읽고 다시 펼치지 않는 아들 영어책을 사러

알라딘 상남점에 갔다가

이번 여행에 동행할 시집을 보다가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치정 배반을 목격해 버렸다


무려 문학과 지성사에서 주는 문지문학상을 받았다는 한 여성 시인의 시집을 펼쳤는데

글쎄, 간지에 저자의 자필 싸인이 있지 않은가

푸른색 반짝이는 펜으로 빛나는 멘트가 적힌,

심지어 받는 사람의 이름도 적혀있었고

그 사람이 시인인지 그 사람의 이름 끝에는 000 시인께 라고.

시인도 다른 시인의 시집을,

중고로 팔기도 하는구나,

이렇게 내놓은 건 이 여성시인에 대한 어떤 심판이나

수치나 모욕을 주기 위함인가

좋은 글 세상과 나누기 위함인가

시의 내용보다는 이 둘의 관계가 궁금해진 나는

그때부터 다른 책은 들어오지가 않아서

그만, 선택해 버렸다.


한두 칸 위에는 "민음의 시"시리즈가 있었다.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출판사에서 선택한 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마치 이 사랑은 내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언하는 것 같아서,

그 견고한 하드보드 표지에 안긴 것이 부럽기도 해서 노려보는데

아...... 여성 시인의 친필 싸인 시집을 중고서점에 팔아버린

그 사람의 시집이 꽂혀있다!

이 둘은 어떤 관계인가


제주에 가면 숙박하는 곳에, 놓고 와야지

들르게 되는 카페 한 곳에 슬쩍 두거나

내가 이 책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알지 못하는 누구에게 전해주고 와야지 싶었는데


일정동안 한 줄의 글도 읽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가지고 가게 생겼다


돌아가면 그 남자시인의 시집을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사서

서로 볼을 부비도록 나란히 꽂아놓고 그 둘 화해시키려고.



아래쪽에 깔린 에스프레소를 보며

큰 그림이 있구나, 느끼함을 씻어줄 창대한 마지막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구나 안심하며 잔을 비웠지만

끝까지 느끼함이 따라옴.




땅콩사탕의 느끼함과 땅콩막걸리의 비릿함이 생각나는.


작가의 이전글제주, 블루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