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투어의 시작
여자 친구는 김밥 투어를 다니겠다고 말했다. 전국의 김밥집을 차례차례 공략하겠다는 포부 앞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밥에 대해 다른 신념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여자 친구와 함께하면서 나의 취향이 확장되고 있는 걸 느낀다. 처음 들어본 이름의 역에서 내려보고, 평소였으면 가보지도 않았을 시장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김밥을 중심으로 넓어졌다. 온라인에서 본 리뷰와는 전혀 다른 김밥도 있었고, 먹을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난 후 자꾸 혀를 맴도는 맛도 존재했다. 몇 년 동안 지낸 동네 사이사이에 김밥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김밥의 재료는 멸치부터 와사비와 오징어튀김까지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밥 투어를 시작한 이후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김밥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은 김밥집에 가면 늘 참치김밥을 주문했다. 만약에 그동안 김밥집에 갈 때마다 다양한 종류의 김밥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해가 지날수록 먹는 음식만 계속 먹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게 삶이든 김밥이든.
새로운 김밥을 먹게 되었다고 인생에서의 도전을 척척 해낼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다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삶의 고민에서 잠시 벗어날 방법 정도는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힘든 하루여도, 퇴근 후에 새로운 것을 먹어보고 맛있어하는 건 제법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다. 언제 올지 모를 거대한 행복을 기다리는 것보다, 당장 새로운 김밥을 찾아서 먹고 행복하다고 몸과 마음으로 느껴본다.
지금까지 먹은 김밥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꽃나물김밥’이다. 야채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나물이 들어간 김밥에 마음을 주게 된 걸까. 자극적인 것만 주로 먹고 사는 내게, 건강한 것 좀 먹으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일까. 김밥으로 만들면 맛있다는 것 외에는 꽃나물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발음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라는 건 느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입에 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꽃나물은 김밥으로 삼킬 때 달콤하고, 그 말을 입으로 뱉을 때 아름답다.
“꽃나물 같은 하루 보내세요!”
김밥 투어 이후 여자 친구와 자주 주고받는 말이 되었다. 먹고 나면 마음이 좋아지는 꽃나물김밥처럼, 기분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꽃나물김밥이 아닐지라도,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꽃나물 같은 하루라고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말해주고 싶다. ‘꽃나물 같은 하루 보내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