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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보이 Jan 18. 2020

 낯선 골목을 뛰어다니다 보니

부천시 원미동을 뛰다.

땀복이 주는 자유


20대 시절만 하더라도 잘 차려입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집 밖엘 나가기가 싫었었다. 나름 패션 전공자인 나는 30대가 된 후로 단벌 신사가 되었는데(아, 이유는 모르겠음), 특히 서른두 살 이후부터는 운동복을 입고 나가야지만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그때는 심심찮게 맞닥뜨리는 비둘기 무리 또한 부럽지 않다!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고 운동하는 사람을 본지는 조금 되었다. 그러나 공원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그들을 보면 가끔씩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그들은 땀복이 주는 자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가 개소릴 지껄인다고 혹은 속물이라며 욕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이키나 언더아머의 로고가 달린 멋진 땀복은 나를 집 밖으로 뛰어나가게끔 유혹한다! 어쨌든 나는 작년 10월에 언더아머 러너 풀셋을 갖춘 이후로 '러닝'이라는 꽤나 멋진 습관을 만들어 유지해오고 있다. 후후




낯선 골목을 뛰어다니다 보니


우리의 대부분 삶은 정해진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한다. 예를 들어 근처 지하철역을 걸어가더라도 늘 가던 길로만 걸어간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들은 낯선 것이나 길을 '위험한 것'과 동일시했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들은 사소한 선택에서도(예를 들면 아메리카노와 신메뉴 중에서 고르는 일) 늘 '익숙함'과 '편안함'을 선택한다. 


땀복이 주는 자유도 느낄 겸 오늘은 조금 먼 곳에 있는 카페까지 뛰어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무의식에 흐름에 따라가던 길로 뛰었다. 그러다가 문득 뇌의 거부를 뿌리치고 불쑥 근처 골목으로 뛰어들어갔다. 사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 같은 건 없었다. 단지 매번 같은 루트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


무심코 들어간 주택가에서 기대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어차피 나는 뛰고 있느라 근처에 있는 무언가에 집중할 세가 없었다. 쉬지 않고 오백 미터 정도를 뛰다 보니 사뭇 낯선 상황들이 펼쳐졌다. 높은 건물과 즐비한 상가들 사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인채 핸드폰을 바라보는 사람들, 팔짱 끼고 걷는 연인들 대신,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대낮부터 노상을 벌이는 아자씨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형광색 땀복을 입은 나를 뚫어져라 보는 아주머니들(우리 동네 사람들은 핸드폰만 보면서 걷는다.) 다 쓰러져 가는 가게, 특이한 공방. 그다지 집중을 해서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기억에 생생하다. 



목적지를 정하고 나면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내가 쉬는 날에 어딘가를 가게 된다면 아마 이런 프로세스로 목적지를 정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를 뒤적거리다가 괜찮은 피드를 발견 -> 피드가 올라온 장소 확인 -> 구글 맵을 통해 최소 거리를 확인 -> 출발.


그러고 나면 사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기억에 나질 않는다. 어쩐 일인지 이동시간은 통째로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내 시간은 금보다 귀하고, 바쁜 것도 알겠으나. 그렇다고 대부분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다. 대게는 남는 시간에 인스타 둘러보기에서 스크롤을 끊임없이 내리거나,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이러한 비생산적인 습관들을 물리치기에는 1월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낯선 장소를 뛰어다니기로 했다. '낯섦을 찾아다니기 위해서'라고 있어 보이게 말하고 싶지만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멋없는 것도 없다. 그냥 체력과 건강을 위해서!



#시티러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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