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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ght Jul 14. 2024

연구와 생산의 지리적 분리, 한국 제조업의 불안한 미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의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인 울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한국 제조업이 처한 도전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대로 하면 울산의 미래는 점점 우울해진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데, 울산이 단순한 생산 도시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울산이 제조업 도시로서 체길을 개선하려면 제조업에 기반한 혁신 클러스터로 가야 하는데, 지금은 혁신과 단순한 생산이 분리되고 있고, 울산에는 점점 단순한 생산만 남게 되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의 제조 대기업은 산 현장과 본사를 같은 지역에 두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울산에 있으니 본사도 울산에 입지하고 두산중공업은 공장이 창원에 있으니 창원에 있는 식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1973년부터 2006년까지 거제도 옥포에 본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제조업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많은 기업이 서울에 건물을 보유하고 있었고 사무실로 썼다.  그러한 사무실에는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같은 식으로 이름이 붙었다. 조선 산업은 대표적으로 본사가 산업도시에 있었다. 조선 3사 공히 그랬다.
제조업 관점에서 공간 분업의 본질적 부분은 제품 설계와 연구 그리고 생산 부문의 거리 조정이다. 초창기 제조 업체는 생산 현장 부근에 신제품을 제작하고 시험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설계를 직접 해보면서 현장에서 만들면서 이론을 숙지해야 한다. 이론에 통달한 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 엔지니어, 즉 K-엔지니어의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이는 당시 한국 제조업의 상황을 이해해야 좀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울신의 3대 산업을 포함해 한국의 제조업은  단계별로 차근차근 축적해온 것이 아니라 현대자동차처럼 완성품을 가져와 분해한 후 조립하는 역설계를 했다. 혹은 해외의 제품 생산을 반제품 상태로 수주해 와 국내 공장에서 조립하면서 제품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그 부품의 원리를 파악하고 개발해 내고 이를 표준화한 후 국내 중소 기업에 맡겨 국산화를 이룩했다. 생산 도면을 빠르게 파악하고 자동화율을 높이기 위해 일본이나 독일의 공작기계를 수입해 최종 완성 단게에서 원가를 줄이는 모델이다. 이러한 한국의 제조업 성공 방식을 조립형 공업화 모델이라고 한다. 한국은 후발 공업 국가이고 스스로 만든 제조업의 전통이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엔지니어는 독일, 일본, 미국을 돌아다니며 기술과 도면을 베껴오거나 '훔쳐오고' 그것을 국내 생산 현장에맞게 변형했다. 학교의 공과 교육은 초창기 축적된 산업계의 지식이 없없기 때문에 배우는 이론도 공론에 그쳤다. 원래 공과대학을 나온 엔지니어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통해 설계 방법을 익히고 설계 방법을 익힌 후 도면을 그리고 도면을 그린후 생산 현장에 탑재할 거라는 연역적 방법을 정석으로 생각한다. 
현대자동차의 예처럼, 도면, 완제품 개발의 아이디어, 부품 국산화의 의견 모두 생산 현장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엔지니어는 현장과 멀리 떨어질 수 없었다. "공대 나오면 지방 근무를 해야 한다"는 말이나 병역특례 떄문에 산업 도시에 왔다가 정착해 버렸다는 시니어 엔지니어의 후일담은 모두 산업화 초창기 해외의 선진 공업국을 추격하기 위해서 분투했던 배경이 깔려 있다.엔지니어와 생산직 작업자가 현장에서 합심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구조에 변화기 시작된 것은 1990년대 부터다. 저자에 따르면 두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두가지 층위에서 구상과 실행의 지리적 분리를 추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선 제조 대기업은 적대적 노사관계 때문에 파업이나 다양한 쟁의에서도 생산량과 생산성을 유지하기위해 노동자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점차 IT 기반 공정 관리 기술과 NC 가공 기계 도입을 극대화하여 자동화를 촉진시키고 로봇 도입을 진행했다. 노동자가 반복 작업을 덜 맡아 개개인은 편했지만 현장에서 도동자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른바 숙련 절약형 혁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대졸 엔지니어가 연구소에서 로봇을 개발하고 NC 가공 기계에기반을 두고 자동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조선소에서도 용접등을 자동화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졌다.
두번째 요인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인재가 점차 지방의 산업 현장 근무를 꺼리게 됐다는데 있다. 1970년대까지 기업은 생산 현장 바깥에 따로 중앙연구소를 짓지 않았다. 기업이 맞딱드린 고도의 기술적 과제는 정부가 서울 홍릉에 설립한 KIST를 통해 정부 출연연구소와 기업이 함께 풀곤했다.

그러다가 기술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며 연구개발 투자에 세액 공제를 하고 소재, 부품, 장비 등의 국산화와 원천 기술 확보를 유도하면서부터 기업이 중앙연구소를 짓기 시작했다. 연구소는 원래 금성사처럼 현장과 가까운 경남 창원 같은 곳에 지었다가 점차 연구소 입지가 서울 수도권이나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처럼 수도권에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됐다. 더물어 예전 같으면 수도권 근무를 기대하지 않고 산업도시로 내려왔던 엔지니어도 많은 기업 연구소가 북상함에 따라 점차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게 됐다. 기업 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전한 후 연구소와 밀접한 설계 부문 등이 수도권으로 따라 올라가는 경향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20여년에 걸쳐 강화됐다.


이같은 상황은 울산 뿐만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 자체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선 산업은 특히 그렇다.


그런데 구상 기능과 실행 기능이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될까?회사의 판단만 듣자면 자동차 산업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조선 산업 전문가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지적한다. 바로 엔지니어의 역할 차이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엔지니어의 역할과 조선업에서 엔지니어의 역할은 다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남양연구소 엔지니어가 시작차 센터에서 파일럿카를 완성하고 시험 주행을 한 다음 그것을 울산공장의 생산기술본부 생산기술팀이 생산할 수 있게 라인을 설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 기술팀을 제외하면 연구소 인원은 주로 수도권의 연구소에 있는게 맞고 생산 기숧팀 엔지니어의 생산라인 설치 단계가 진행될 때 출장이나 파견을 가서 협업하는 것이 연구소 엔지니어의 일이 된다.  급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소는 다르다. 조선산업은 현장에서 혁신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주문주와 엔지니어, PM, EM, 선급 등 이해 당사자가 선박이나 해양 플랜트 건조 과정에서 끊임없이 협의를 한다. 엔지니어는 수정이 필요할 때마다 도면에 표시된 배관이나 케이블, 장비의 위치와 설치 방식과 건조 방법을 변경한다. 엔지니어와 현장 작업자에게 긴급하게 주어지는 문제를 함께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생산관리 엔지니어 뿐 아니라 설계 엔지니어, 생산기술연구소의 연구개발 엔지니어 모두가 현장 근처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게 정석이다. 그러나 2019년 현대 중공업은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을 설립하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해 그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결정하면서 한국조선해양의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를 판교에 짓고 본사를 그곳으로 옮기기로 정한다. 설계 엔지니어 중 생산과 밀접해야 하는 생산 설계 엔지니어는 남지만 기본 설계와 상시 설계 엔지니어는 다수의 기본 근무지가 판교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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