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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지바람 Sep 27. 2024

애매한 재능

연기라는 것을 접한 것도 돌이켜 생각하면 오래 되었다. 처음은 친구 따라서 학원에 갔던 게 시작이었다. 친구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했다. 성우를 꿈꾸는 그 친구는 연기에 욕심을 내며 선생님을 찾아 성우학원에 등록했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찾아가니 별세계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를 따라갔던 나는 열정을 불태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옅은 부러움을 느꼈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불태울 수 있는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를 배려해주었다. 친구 따라 참관한다는 이야기를 그 어린 나이에 자신만만하게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선생님은 A의 친구면 언제든지 참관해도 괜찮다고 환대하셨다. 친구의 연기를 바라보며 순수하게 감탄을 하던 내게 불쑥, 선생님은 짧은 대사를 내밀었다. “한번 해 볼래?”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어쩌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휩싸여 ‘연기’라는 것을 해보았다. 격정적인 대사였고 에너지와 감정을 많이 써야 했지만 의외로 그런 나를 보며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었다. “나쁘지 않네” 


의례적인 칭찬이었는 지, 아니면 모객을 위한 행동이었는 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내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별거 아닌 조언과 짧은 대사는 나를 움직였다. 쾌감도 있었고 감정을 토해내는 그 순간이 주는 희열은 상당했다. 선생님이 넌지시 얘기해주는 ‘재능’이라는 단어도 날 설레게 했다. 어쩌면 나도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날 뒤흔들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나는 그 이후 친구와 함께 선생님께 연기 지도를 받게 되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생님의 말은 금과옥조였고 연기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었다.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던 에고가 점점 꺼지기 시작한 것은 금방이었다. 한 줌 되지도 않는 재능에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내가 연기를 한다는 것은 망상이었다. 발성도 제대로 되지 않고, 발음 교정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를 펼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점점 냉랭한 모습을 보였다. 점점 열정적으로 연기를 봐주기보다 ‘돈을 냈으니 이정도는 해줘야지’라는 감각으로 나를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연기 욕심이 상당했던 친구는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열정적으로 연기 연습을 했으나 성과는 좋지 못했다. 선생님과 앙금이 쌓이기 시작했고 나도 선생님에 대해 불신이 쌓이던 어느 날, 친구는 더는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며 학원을 그만두었다. 나 역시 친구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과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던 것에 불만을 품었기에 같이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연기와의 인연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라진 인연이 다시 불타오른 것은 또 친구 덕분이었다. 금세 다른 선생님을 찾은 그 친구는 나를 다시 한번 꼬드겼다. “선생님 너무 좋은 분”이라고 말하며 친구는 선생님에게 홀딱 빠졌다. 남자 성우분이었다. 프로필을 찾아보고 경력을 찾아보며 나는 반신반의한 감정을 누르고 친구를 따라갔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등록하고 같이 수업을 받았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첫 수업이라 나름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나는 선생님이 무언가 대단한 스킬을 가르쳐주거나 연기에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잘하는 친구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에 기대도 상당했다. 하지만 첫 수업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를 틀어주면서 감성을 느끼라는 것이 수업의 시작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올드 팝과 1920년대 가요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스킬보다 감성이 먼저라고 말하며 선생님은 부족한 감성을 채울 것을 요구했다. 


충격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강의를 듣는 건 실수라고 말하며 같이 그만두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을 믿고 따르자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 수업을 계속 듣게 되었다. 어차피 취소한다고 해서 제 값을 환불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돈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수업들을 통해 내 연기는 성장했다. 


대사를 읽기 전에 충분한 감정을 가지고 들어갈 것, 발성에 있어 중요한 것은 복식. 그리고 어미 처리를 다양하게 할 것. 여러 예시와 조금씩 알려주는 팁들은 정말 훌륭했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연기가 달라지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고 형편없었던 첫 연기를 무시했던 주변 사람들도 점점 내 연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칭찬의 한마디를 남기곤 했다. 다양한 대사를 열심히 연습했고, 달라지는 내 모습에 기쁨을 느꼈다. 내게도 재능이 있는 건가? 


그 절정은 KBS 시험 날이었다. 1차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배를 마시며 1차 시험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처음 지원한 그 시험에서 당당하게 통과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운이었다고 시기를 했지만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넌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선생님은 내게 재능을 봤다고 말해 주었다. 기뻤다. 


아쉽게도 그해 KBS 시험은 통과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우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고 있었기에 첫 탈락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아쉽다는 말을 하며 나는 술자리에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었다. 수천 명을 뚫고 합격증을 거머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렸던 나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시험에 떨어지고 군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께 아쉽다는 인사를 남기며 나랑 내 친구는 빡빡머리를 한 채 군대로 향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자신만만했다. 군대 끝나고 조금만 노력하면 성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대 2년의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활발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었던 나는 온데 간데없이 우울함과 피곤함을 모두 뒤집어쓴 청승맞은 인간이 되어 사회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극심한 슬럼프와 나쁜 습관이 계속 뒤따라왔다. 쾌활해야 할 지점에서 우울함을, 우울해야 할 지점에서 청승맞은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2년 간 목을 쓰지 않았기에 연기력도 많이 뒤쳐졌다. 조금만 노력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점점 연기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한 때 재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재능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나는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학원을 떠났다. 다른 꿈을 향해 떠난다는 말을 남기며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다른 꿈을 꾸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연기를 떠나 다른 꿈을 향해 갔다. 


수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여러 일들을 겪게 되었다. 연기라는 꿈을 꾸었을 때를 떠올리며 내가 겪었던 일들, 훈련을 받았던 일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연기와 멀어지던 내가 다시 연기를 잡게 된 것은 학원 광고였다. 옛 생각을 다시 떠올리며 학원을 등록하고 주말마다 연기를 하게 되었다. 완전 처음 배우는 거라고 얘기를 하면서 학원에서 연기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예전에 배웠던 스킬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스킬들은 몸에서 제대로 구현이 되지 않았다. 녹슨 것이었다. 녹슨 때를 벗어 던지고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고 싶었지만 시간은 많이 흘러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꿈을 좇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학원을 그만 두었다. 열정도 사라졌고 자그맣게 피어오른 재능도 사라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학원을 찾아갔던 때처럼, 학원에는 여전히 성우가 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이 차고도 넘쳤다. 몇 천 대 일이라는 경쟁률은 여전했다.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 연기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버님 나이 대의 수강생도 성우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모습도 보았다. 


여전히 꿈을 위해 달려가는 이들을 존경한다. 허나 이제 나는 적당한 타협이라는 것을 배웠고, 애매한 재능을 불태우며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이 위독하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기에, 나는 일찍이 품었던 연기를 가슴 한 켠으로 미뤘다. 잔열처럼 가슴 한 켠에서 계속 타오르겠지만 언젠가 꺼질 그 꿈을 나는 오랜 추억으로 보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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