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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Jan 08. 2022

매우 '핫'한 고통, 매운맛의 세계

[푸드로지] 통각이라도 좋다. 매콤한 핫플레이스 10

▲  서울 서소문동 ‘곰비임비’에서 내는 주꾸미양념구이. 날치알과 땅콩소스를 얹은 깻잎이 함께 나온다. 첫맛은 달콤한 듯하지만 좀 먹다 보면 매운맛이 강하게 올라온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매운 음식
‘매움’이란 몸이 느끼는 통증
찡한 겨자와 타는 듯한 고추
휘발-비휘발성 성분 차이때문
‘엔도르핀 분비’가 쾌감 원인
세상에서 가장 매운 물질
모로코 사막 ‘레시니페라톡신’
순수 캡사이신 액의 1000배
조금만 섭취해도 치명적인 毒



희망찬 새해라지만 이어지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위협과 이에 따른 거리두기 정책에 피로감을 느낀다.

마침 연일 몰아치는 한파에 춥기도 하다. 이럴 때 강렬한 매운 음식이 당긴다. 매운 음식은 한기 어린 몸에 팔팔 열이 나도록 해주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한몫한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매운 것을 접했을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이 쾌감을 느끼게 하며 함께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른바 ‘맵부심(매운 것을 거리낌 없이 잘 먹는다는 자부심)’, 짜증 날 땐 매운 음식이 좋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점점 심해져서 아예 이름에 ‘불’ ‘지옥’이 붙은 음식만 찾아다니는 매운맛 순례객도 있다.

맛 중엔 매운맛이 제일이라지만, 실제로 ‘매운맛’이란 없다. 다섯 가지 맛, 즉 오미(五味) 중 사람이 느끼는 맛은 짜고(鹽味) 시고(酸味) 쓰고(苦味) 달고(甘味), 더 보탠다면 감칠맛(umami)과 지방맛(olegustus)쯤이 있겠다. 매운 것은 통각이므로 맛에 포함되지 않는다. 흔히 매운맛이라 느끼는 건 온도와 통증을 감지한 수용체(TRPV1)가 뇌에 전달한 ‘뜨거움과 고통’이다.


지난해 말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가 선정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2명이었다. 공동수상자는 데이비스 줄리어스(David Julius)와 아뎀 파타푸티언(Ardem Patapoutian) 교수. 이 두 석학은 우리 몸 피부신경에 있는 캡사이신 수용체(capsaicin receptor)가 촉각과 온도를 감지한다는 것을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이 위대한 상을 받게 됐다. 연구의 주 내용은 “캡사이신을 섭취할 때 마치 뜨거운 것을 대했을 때와 유사한 통증을 느끼는 수용체(이온 채널)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캡사이신을 찾아 먹는 한국인의 입장으로선 뭐 대단한 발견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한 성과다. 이제 감각을 통한 느낌이 인체 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됐으며, 이로써 만성 통증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두 학자의 연구로 확실해졌다. 눈물 콧물 찔끔, 혀를 얼얼하게 하는 매운맛이란 사실 아픔이나 열이었다. 43도 이상 음식이 혀에 닿을 때 느끼는 고통과 비슷하다. 괜히 ‘핫(hot)’이라 한 게 아니었다. 매운 음식은 혀의 미뢰 이외에도 입술이나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것이다.

매운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고추, 마늘, 양파, 고추냉이, 겨자, 산초, 후추, 달래 등에서 각기 다른 매움이 느껴진다. 어떤 것은 계속 맵고 또 어떤 종류는 금세 매운 정도가 덜해진다. ‘알싸한’ 휘발성과 ‘칼칼한’ 비휘발성이 있는 까닭이다. 고추냉이·겨자·양파·마늘 등은 휘발성이며, 고추·생강·후추 등은 비휘발성이다. 졸음방지 껌의 박하처럼 ‘화한’ 매움도 있다.


마늘(알리신계)은 고통스럽게 맵다. 혀나 입속에 상처가 있으면 불에 덴 듯 쓰리다. 박하(멘톨계)는 마비가 되는 듯 시리다. 겨자를 섞은 고추냉이(시니그린계)는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찔끔 나는 매운맛이다. 캡사이신이나 알리신 등은 독극물로 취급될 정도였다. 순수 캡사이신은 지금도 국내에선 화학물질관리법과 관세법에 따라 위험물로 분류돼 있다.


보편적으로 일본인은 시니그린계를 선호하고 중국인은 산초 등에 든 화자오 같은 피페린계를 즐겨 먹는다. 한국인은 캡사이신과 알리신계뿐 아니라 대부분의 매운 성분을 좋아한다.


매운 성분은 자체가 맛이 아닌 까닭에 음식 맛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에 섞어서 맛을 낸다. 떡볶이와 초고추장, 고추장불고기, 육개장 등이 이처럼 각각 다른 맛과 섞여 입맛을 사로잡는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위에 좋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은 별로 상관없다고 한다. 하지만 멕시코 하바네로 고추 등 지나치게 매운 성분은 위나 장을 자극해 경련이나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됐다. 언젠가 필자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한 술집에서 멕시코인과 매운 것 먹기 내기를 벌인 적 있는데, 국가 대결이라 무리를 해서 이겼다. 그리고 사흘 동안 딸꾹질에 시달린 바 있다.

한국인은 매운맛을 좋아하지만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늘은 삼국시대에, 고추는 17세기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단군 신화의 마늘은 산마늘이나 달래로 추정). 현대 한국인의 식탁은 점점 매워지기 시작해서 요즘은 세계 최고 수준의 매운맛을 상식하고 있다. 수많은 음식점에서 낙지볶음이나 불닭, 떡볶이, 불짜장처럼 매운 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잘 팔리기 때문이다. 라면 역시 매운 것이 더 잘 팔린다. 심지어 아이스크림도 불닭 소스를 넣은 매운맛이 나왔다.

‘맵부심’이란 말이 있듯 매운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자랑거리로 여겨지는 세태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이들을 얕잡아 보는 ‘맵찔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보통 함경도부터 영남권까지 한반도 동부 쪽이 좀 더 매운 음식을 먹는다. 땅이 척박해 곁들일 찬거리가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많이 나는 고추가 귀한 소금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는 ‘스파이시(市)’라 불릴 정도로 모든 음식에 매운 경향이 강하다.


중국은 후난(湖南)성과 쓰촨(四川)성이 매운맛을 경쟁적으로 즐긴다. 쓰촨 사람들이 “매운 것을 겁내지 않는다”고 하면 후난 사람들이 “안 매울까 봐 겁난다”고 응수한다는 얘기가 있다. 쓰촨에선 음식에 산초나 화자오(花椒) 등 입이 얼얼해지는 마라(麻辣) 양념을 즐겨 쓰고 후난에선 화끈함이 오래가는 고추를 많이 쓴다.

매운 정도를 측정하는 스코빌 지수가 높기로는 멕시코 하바네로와 태국의 프릭키누 고추가 유명하지만 정작 그 나라에 아주 매운 음식은 별로 없다. 치즈나 기름으로 중화시켜 요리에 칼칼한 맛을 더하는 정도로만 쓰는 까닭이다. 이탈리아에서 페페론치노로 느끼함을 달래는 의도와 비슷하다. 오히려 인도 쪽이 아주 매운 향신료를 쓰는 편이다. 붉은색 경고가 붙어 있는 매운 마살라를 한입 퍼먹고 나면 하루 종일 입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참고로 세상에서 가장 매운 물질은 모로코 자생 사막 식물에서 추출한 레시니페라톡신. 무려 160억 스코빌 지수를 기록, 순수 캡사이신액의 약 1000배에 해당한다. ‘톡신’이라는 이름에서 예상하듯 독극물이다.


고추짬뽕, 떡볶이, 닭발 등등 아무튼 매콤한 음식의 자극이 삶 속에 있다. 이 어둡고 불편한 감염병 세상에서 매운맛으로나마 짜릿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잠시라도 거기에 기대고 싶지 않은가. 다행히 대한민국엔 맛있게 매운 음식을 파는 ‘핫플레이스(?)’가 상당히 많다.




■ ‘매운맛’ 제대로 보고싶다면

◇완차이 = 고추기름과 저민 마늘을 잔뜩 넣은 홍합을 화끈하게 들들 볶아낸다. 살집이 탱탱한 홍합 알맹이를 양념과 함께 빼먹으면 화끈한 맛이 입안을 지배한다. 남은 양념에 차오판(볶음밥)을 주문해 비벼 먹으면 한 접시가 바로 뚝딱이다.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 50-7. 2만3000원.

◇북경 = 고추간짜장이다. 색이나 모양새는 똑같은데 면을 비벼 먹으면 맵다. 청양고추기름에 양파와 고기, 춘장을 볶았다. 그 덕분에 짜장 특유의 느끼함이 전혀 없다. 당장 열이 난다. 고추짬뽕 등 이른바 불타는 메뉴 시리즈가 있다. 짬뽕이 더 맵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20길 23 원창빌딩. 1만 원.

◇서린낙지 = 매운 음식이라면 무교동낙지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은 서린동이다. 마늘과 고추 범벅의, 놀라울 정도로 매운 양념 낙지를 판다. 콩나물과 소시지, 베이컨도 희한하게 잘 어울린다. 조개 국물과 동치미가 없으면 다 못 먹는다. 서울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종로타운. 2만3000원.

◇곰비임비 = 주꾸미양념구이를 파는 집이다. 근처에만 와도 칼칼한 향이 코를 찌른다. 처음에는 매콤달콤하게 느껴지다 나중에 입에서 불이 난다. 치즈를 뿌리면 좀 낫다. 쭈삼구이도 있고 로제주꾸미도 있다. 점심엔 주꾸미비빔밥이 좋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45. 1만4000원.

◇교동집 = 주꾸미볶음을 굉장히 맵게 내는 집. 매운 고춧가루 범벅의 칼칼한 양념에 재운 주꾸미를 볶아서 먹는데 양념이 조려지며 점점 매워진다. 나중엔 머리까지 저릿해진다. 삼겹살을 함께 볶으면 기름이 흘러들어 풍미는 좋아지고 맵기는 덜해진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08. 1만4000원.

◇라향각 = 재료를 고르고 매운 정도를 말하면 주방에서 볶아준다. 각종 버섯과 청경채, 양고기, 어묵, 두부피 등을 주로 고른다. 가장 맵게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일행과의 대화는 음식 나오기 전에 마쳐야 한다. 입이 얼얼해져 말이 어눌해진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65 1층(서교점).

◇봉산찜갈비 = 대구는 매운 음식 도시, 찜갈비 역시 화끈하다. 시청 인근 동인동에 찜갈비 골목이 있다. 양은냄비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뒤집어쓴 찜갈비를 판다. 부드럽지만 두꺼워 씹는 맛이 살았다. 여기도 매운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밥은 꼭 볶아먹어야 한다. 대구 중구 동덕로36길 9-18. 2만 원.

◇윤옥연할매떡볶이 = 역시 대구다. 매운 국물떡볶이로 유명한 집이다. 후추와 청양 고춧가루를 적절히(?) 배합해 강력한 맛을 낸다. 보통 떡볶이와 튀긴 만두, 튀긴 어묵을 넣어 먹는데, 섞지 않으면 매워서 견딜 수 없다. 단맛은 거의 없다. 대구 수성구 들안로77길 11. 떡볶이 2000원(2인분), 만두 1000원, 튀긴 어묵 1000원.

◇범일동매떡 = 국내에서 가장 맵다는 떡볶이집. 극단적으로 매운 매떡과 평이한 순떡이 있다. 매떡에 만두와 어묵, 팥빙수를 곁들인 ‘백종원 세트’가 있다. 고추와 후추, 그리고 캡사이신+피페린의 하모니는 경악할 정도. 팥빙수를 팔기 위해서 떡볶이를 파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부산 부산진구 골드테마길 52-2. 백종원 세트 1만2600원.

◇페르시아궁전 = 이란 출신 귀화 한국인이 운영하는 집이다. 커리는 인도풍 마살라로 만드는데 맵기 단계를 주문할 수 있다. 빨갛지 않아서 만만하게 보고 가장 매운 단계를 주문하면 혼쭐이 난다. 얼얼하고 뜨거워진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6길 9. 1만55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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