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진짜 겨울을 알려드릴까

북극의 겨울날, 오로라를 만나다-핀란드 여행

by 이우석 더 프리맨

북극 하늘에 빛의 향연을 펼치다, 핀란드 오로라 여행

대자연이 펼치는 신비로운 현상 오로라를 지금 북극에 가면 볼 수 있다.

흔히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라 불리는 오로라(aurora) 현상은 태양에서 날아온 전하를 띈 입자(플라즈마)가 지구 대기의 입자와 충돌하면서 자기장의 영향으로 입자는 남쪽과 북쪽으로 흘러가고 전기에너지가 방전, 소진하면서 빛을 발하는 현상. 주로 녹색과 적색으로 빛나며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자그마치 영하 40도라니. 1월 20일 핀란드 북부 키틸라의 기온은 영하 40도였다. 내겐 도저히 상상조차 허용되지 않는 온도 ‘-40’. 예보를 보고 나는 겁을 집어먹기 보다는 차라리 호기심이 일었다. 거대한 스케이트 장(?)에 착륙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자마자 그 지독한 호기심은 단번에 사라졌고 나는 냉동실 온도(영하 20도)보다 두 배나 낮은 기온의 위력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었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북극으로 떠나는 여행도 살아가며 한 번쯤 도전해볼만 하다.

한겨울에 북극땅으로 떠나게 된 계기는 이랬다. 살아가며 한 번쯤은 오로라라는 것을 봐야하지 않겠냐는 단순한 생각을 평소 지니고 있던 터에 마침 핀에어의 북극 탐험대를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출발 날짜가 잡히고 달력이 하나 둘 넘어가면서 슬슬 겁이 일었다. 구글로 검색해 본 현지(키틸라) 기온은 영하 28도, 31도….


당장 발열 핫팩을 100개나 주문했다. 신으면 바로 무좀균이 활동하도록 고안된 발열 양말과 영화 다이하드의 테러리스트가 쓴 것처럼 생긴 복면도 두 장이나 샀다.


SPA 상점으로 달려갔다. 발열 타이즈와 터틀넥 따위를 한 보따리 구입했다. 13만원이나 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점원이 물었다. “북극이라도 가세요?”

‘어찌 알았지?’ 맞다. 난 북극으로 간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영하 40도, 혹한의 툰드라에 서다

북극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헬싱키를 떠나 마을버스처럼 움직였다. 이발로를 한번 들렀다 다시 올라 핀란드 북서부 키틸라 공항에 착륙했다. 새하얀 활주로는 그야말로 설원, 비행기를 순록이 끌어서 옮겨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다. 하얀 북극곰이 콜라를 마시고 있는 것을 상상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다만 비행기 내비게이터 화면에서 본 코콜라(Kokkola)란 곳엔 왠지 있을 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매우 당황했다. 누군가 내게 붙어서 계속 귓싸대기를 찰싹 올려붙이는 듯하다. 얼굴 등 공기와 직접 맞닿은 부분은 보이지 않는 매운 손으로 계속 얻어맞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숨은 내쉬자마자 얼어붙는다. 뭐든지 접착제로 만들어버릴 만큼 추운 공기가 뺨에 들러붙었다. 입김은 수염과 콧털에 또 속눈썹과 머리카락에 하얀 고드름으로 맺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전부인 줄 알았다. 이날은 겨우(?) 영하 23도에 불과했을 뿐이다.


청바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레비(Levi)의 한 호텔에 여장을 푼 후 나흘간 매일 밤마다 호수나 스키장 정상으로 나가 기약없는 오로라를 기다렸다. 이때 오로라 예보는 레벨 2(최고 9까지 있다). 강수확률 20% 정도에 불과한데 비를 기다리는 꼴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확신이 있었다. 감이 좋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틀 밤을 밖에 나가서 벌벌 떨기만 했다. 야속하게도 레비에서의 마지막 밤이 왔다. 첫날 구름 뒤에서 뭔가 어스름한 빛기둥을 보고 사진으로 찍어두긴 했지만, 이것이 오로라인지는 긴가민가(녹색도 아니었다)했다.

예전에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직접 봤다는 누군가는 틀림없는 ‘오로라의 한 종류’라고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추워서 어서 들어가자고 했던 ‘선의의 거짓말’같다. 설사 그게 오로라라 할지라도 나는 굉장히 실망했기 때문에 차라리 아니었다고 하는게 낫다.


아무튼 마지막 밤이 됐다. 아! 물론 밤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된다. 결전을 앞두고 저녁 식사 중이었다. 자전거용 타이어와 식감이 비슷한 순록고기를 먹고 있던 상황이다. 갑자기 핀란드인 가이드가 상기된 얼굴(아마 추워서 그랬을 것이다)로 식당에 뛰어 들어와 외쳤다.

“노던 라이트, 노던 라이트!”


그가 ‘오로라’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행은 못들은 척 다시 잠자코 식사를 이어나가다 갑자기 트램펄린에라도 떨어진 것처럼 모두 동시에 뛰어올랐다.


밖으로 나갔다. 검은 하늘에 희끄무레 구름같은 것이 돌아다니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연두색을 띠고 있다. 오로라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님은 식당 위 하늘에 ‘윈도우즈 화면보호기’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뛰었다. 순록처럼. 미리 빌려놓은 렌터카가 숙소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았다. 부랴부랴 호숫가로 차를 몰았다. 마을보다 어두운 호숫가에서 보니 좀더 선명한 녹색과 붉은색을 띠고 있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기는 일이 이토록 조급했던 적은 없었다.

포커스를 수동으로 맞춰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초점이 나간 줄도 모르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내려앉았다가 접히고, 또 넓게 펴지며 갈라지고…. 활발하게 돌아다니던 오로라 님은 부끄러웠는지 초점이 얼추 맞았을 때부터는 야속하게도 숲 뒤편에 얌전히 웅크리고만 있었다.


원래는 이곳에 오면 동네 개 보듯 매일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줄로 기대했다. 밤이면 달 뜨듯 오로라가 항상 춤을 추고, 실제로 제다이 광선검처럼 ‘웅~’하는 소리도 들을 줄 알았다. 사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환한 녹색 오로라를 불꽃놀이 감상하듯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란 것을 현지인들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굉장히 춥다. 이날이 문제의 그 ‘영하 40도’ 날이다. 설국열차처럼 하얀 성에가 낀 카메라는 이미 액정이 켜지지 않는다. 곧이어 배터리가 순식간에 방전됐고 릴리즈 전선이 엿치기하듯 뚝 부러졌다. 조작을 위해 카메라에 손을 대면 손가락이 딱딱 붙고, 뷰파인더에 눈을 댈라치면 뺨이 붙어버린다. 아프고 불쾌했지만 전혀 저항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핫팩을 붙이고 옷을 입는데만해도 얼추 20~30분은 걸리는 푸짐한 복장인데도 세시간 쯤 지나니 한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은 참 따뜻했다. 지구에 내려온 태양의 전류가 눈을 통해 들어와 마음을 데웠다.

북극탐험기

얼어붙은 툰드라 평원인 레비(Levi)에선 여행자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꽤 많다. 하늘같은 관(冠)을 쓴 순록이나 시베리안 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고 택시처럼 이동할 수 있으며 스노 모빌을 몰고 새하얀 숲과 얼음땅을 달릴 수도 있다. 물론 알파인이나 노르딕 스키도 즐길 수 있고 설피를 신고 트레킹에 도전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도전했으며 혹한과 싸웠다(물론 졌다. 처절히).


우선 순록 썰매. 순록은 큰 사슴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실상 보면 소처럼 뚱뚱하다. 머리 골격이나 목이 사슴처럼 날렵하지 않고 둔탁하다. 큰 뿔이 난 소라 생각하면 쉽다. 썰매는 느리지만 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도록 설계됐다. 피하지방과 핫팩이 없으면 견디기 어렵다. 산타가 ‘고도 비만’으로 묘사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고기가 썩 맛있지는 않지만 고약한 냄새는 없다.


하지만 북극에 사는 사미 족들에게 순록은 없으면 안될 동반자다. 얼음 속 이끼나 뿌리만 먹고 살아도 살이 찌니 우선 '연비'가 좋은데다 썰매를 끌어주고 가죽과 고기를 제공한다. 고기에는 지방층이 거의 없어 검붉은 색을 띠는데 뭐 맛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푹 익혀서 ‘지우개’ 식감을 내는 것보다는 육회로 먹는게 낫다.

스노모빌 투어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레비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뽀로로가 살 법한 새하얀 숲속을 달리다 온통 눈밭인 평원을 질주하며 오전 10시30쯤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코스다. 반환점에는 150년 된 핀란드 전통 가옥이 있는데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추위를 달랜다. 원래 나는 한겨울에도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데 유럽에 올 때마다 아이스커피를 파는 곳이 드물어 고생했다. 하지만 북극에선 간단하다. 뜨거운 커피를 들고 밖에 나가서 마시면 된다.


스노모빌은 힘이 굉장히 좋다. 두 명씩 탑승을 했는데 일행 중 가장 뚱뚱한 사람 둘을 태우고도 거뜬히 시속 90㎞까지 달린다. 낮고도 우렁찬 엔진음을 발산하며 눈밭을 지친다.

혹한의 땅으로 떠나기 전에는 방한 대책을 잘 세워야 한다. 발열패딩점퍼는 배터리를 가득 충전하면 5시간 이상 거뜬히 견딘다.

질주하는 동안 척주와 뇌수가 뻣뻣해질까봐 파일럿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 나는 미리 매우 신기한 패딩점퍼를 준비했기 때문에 든든했다. 구스다운으로 채워진 이 패딩(블랙야크 야크온)은 배터리로 구동되는 등판 발열판이 부착돼 저절로 열을 내는 과학적인 시스템이다. 원래도 따뜻한데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도를 높이면 구들장을 등에 지고 다니는 듯 너댓 시간은 끄떡없다.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다. 스노모빌 핸들 그립에 열선이 들어와 손도 따뜻하다. 윈드쉴드가 부착된 헬멧을 썼으니 얼굴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대부분 예상이 들어맞았지만 손 발가락, 얼굴에서 방한 대책에 실패했다. 씽씽 바람을 가르면 그 차가운 공기가 샤프심처럼 얇게 쪼개지며 장갑과 부츠를 뚫고 안으로 들어와 꽂힌다. 운전을 하려면 성에가 낀 윈드실드는 올려야 한다. 얼굴에 쓴 마스크는 내뿜는 입김이 그대로 얼어붙어 얼굴의 윤곽을 쏙 뺀 ‘데드마스크’처럼 된다. 입술이 닭똥집처럼 부풀고 마스크는 맨살을 할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다.


어쨌든 스노모빌 투어는 스릴 만점이다. 멋진 풍경 겨울왕국을 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투어 도중 1건의 사소한 해프닝과 끔찍한 사고 1건이 일어났다.

사소한 해프닝이란 다름 아닌 누군가 곡선코스에서 전복된 일이고, 끔찍한 사고란 누군가 장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북극에서의 겨울 생활이란 정말 특별하다. 낮에 술을 마셔도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는다. 한기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하루중 해가 고작 5시간도 떠있지 않으니 누구도 “벌건 대낮에 술을 퍼마시고…”라고 비난할 수 없다.


북극의 냉장고는 오히려 뭔가를 얼지않도록 보관하는데 쓰인다. 미지근한 맥주를 잠시 베란다에 내놓으면 금세 살얼음 낀 맥주를 들이킬 수 있다. 단, 입주변은 늘 조심해야 한다.

“고혈압 1인분 주세요” “후식으론 당뇨랑 고지혈을 곁들여 먹을게요”


이유를 모르긴 해도 핀란드에선 소금이 매우 저렴한 게 분명하다. 아니 정부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지도 모른다. 북극에서의 식사란 순록고기가 들어간 매운 짠 음식을 먹는 것이 전부다. 특히 하루는 어느 식당에서 무슨 버섯을 가니시로 곁들인 순록 육회를 먹은 적이 있는데 버섯의 염도가 젓갈류를 넘어서는 정도였다. 그대로 물만 붓고 끓이면 근사한 버섯 스프가 될 듯하다.


호밀 빵은 신비롭다. 구멍이 송송 뚫린 빵은 거칠고 뻑뻑하다. 반죽할 때 나왕의 톱밥을 넣은 것은 분명하고 아마도 방수 코팅이라도 했는지 커피에 담가도 전혀 젖지 않는다. 이런 음식들이 추위를 견디는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북극에 사는 이들이 매우 즐기고 있는 식단이다.


화성의 표면온도가 영하 80도라니 영하 40도의 땅이라는 것은 영화로 따지자면 ‘마션’보다는 ‘레버넌트’에 가깝다. 하지만 맷 데이먼의 화성 탐사대에겐 더 낯선 것이 많을테니 고작(?) 오로라 따위를 보겠다고 외기에 노출된 채 서너시간 동안 뻗치기를 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스노슈잉이란 설피를 신고 하는 설원 트레킹을 말한다. 인솔자는 내게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지금은 춥지만 좀 걷다보면 땀이 날 것이라고. 40분 쯤 걸었을까?. 인솔자에게 따지려고 그에게 다가간 순간 나는 쌓인 적의와 분노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수염이 꽁꽁 얼어버린 그는 마치 커피숍 진동벨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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