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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Oct 26. 2024

발가락 골절로 6주 동안  병가를 내다

쉬운 일이 어려워졌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다.

수술 전에는 발 뒤꿈치에 힘을 주고 살살 걸을 수 있었다. 의사는 수술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6주 동안은 수술한 다리로 걸으면 안 된다고 했다.  수술한 다리로 걷게 되면 발에 힘이 가서 발가락에 박힌 핀이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발을 땅에 디딜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6주간 병가를 냈다.(6월 1일부터  7월 13일까지)

 발가락 수술 후 아무렇기 않게 하던 일들이 세상 어려운 일이 되고야 말았다.  



    

의사는 날마다 8시 30분에 간호사와 함께 회진을 했다. 환자들은 의사가 올 시간에 맞춰 용모를 단정히 하고 침상에 앉아있었다. 수업준비를 끝내고 교사를 기다리는 모범생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의사는 환자 한 명씩 차례대로 안부를 물었다.


뜨개질을 잘하는 50대의 뜨개질 아줌마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칭찬을 받았다. 아줌마는 좋은 성적표를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50대의 안경 낀 조용한 아줌마는 허리상태가  전보다 좋아졌단다. 물리치료를 지금처럼 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젊은 시절 고된 일들을 엄청 많이 했다던  입담이 최고인  70대 뽀글뽀글 할머니는 어제 예고한 대로 오늘 퇴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뽀글이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다 원장님 덕택이라고 했다. 70대 예쁜이 할머니에게 아직도 허리가 욱신거리고  아프냐고 묻고  물리치료 잘 받고 약도 잘 드시라고 했다. 회진시간만 되며 모두가 착한 아이처럼 의사의 말에 귀기울리는 모습이 신기했다. 환자들의 희미해진 눈동자는 의사를 만날 때만은 또릿또릿 해졌다.


내 차례가 됐을 때 의사는 부목을 풀고 수술부위를 소독했다. 수술부위에는 토끼 귀 같은 철심 두 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의사는 다행히 수술은 잘 됐고 피부를 절개하지 않아 일주일만 입원해도 되겠다고 했다.  

의사는 "발가락 소독은 월수금 하고요, 토요일에 엑스레이 찍고 상태 봐서 토요일에나 퇴원 결정합시다. 물리치료도 하루 2번 받으셔야 하고 절대 수술한 다리로 걸으면 안 됩니다. 특히 수술한 발가락이 다른 곳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세요.  수술부위를 다른 곳에 부딪쳐서 재수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능하다면 직장에 사정을 말해서 6~8주 정도 쉬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일주일 입원하고 퇴원해서 근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6-8주를 쉬어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의사에게 " 6~8주를 꼭 쉬어야  하는 건가요? 그냥 일주일만 쉬고 일하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하는 일이면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일이 어디 있나요? 6-8주는 쉬어야 합니다. 당장 출근하려면 운전해야 하는데 오른쪽 발가락이라 운전도 못하잖아요. 제가 환자분이 어떤 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골절된 환자는 골절부위를 움직이지 않고 쉬는 것이 치료입니다. 엄지발가락 사소하게 보이 지면 부러진 뼈가 붙는 데는 6개월 걸립니다. 6주간은 발을 바닥에 딛고 걸을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데 그냥 쉬엄 쉬엄하면 정말 안 될까요?"라고 간절하게 물었다.

의사는 '언덕에 있는 학교가 얼마나 많나요. 또 학교에는 계단도 많잖아요.  대부분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해도 고작 하나던데요.  엘리베이터 타고 바로 교실에  갈 수도 없지 않아요. 목발 짚고 급식실은 어떻게 가실 건가요? 급식은 누가 받아서 환자분에게 가져다주겠어요.  현실적으로 그 다리로 직장에 가는 것은 직장에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 주러 가는 겁니다. 쉬어야 해요."라며 일침을 가했다.


6주 너무 길다. 아무리 공무원이라고 해도 직장을 비우는 것은 눈치 주는 이가 없어도 눈치 보이는 일이다.


초등학교 보건실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의사말대로 목발 짚고 학교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오심증상으로 학생이 보건실에 오면 학생을 처치대에 앉히고 괜찮냐고 물어야 한다. 학생이 토할 것 같으면 비닐봉지에 토하라고 말하며 비닐봉지를 건네주어야 한다. 만약 학생이 화장실에서 토하고 싶다면 학생을 화장실까지 데리고 가야 한다.  학생을 문진하고 신체를 사정도 해야 한다. 약장에서 약을 꺼낸 후 정수기에 가서  컵에 물을 받아 약을 먹여야 한다. 학생이  좀 쉬어야 한다고 판단되면 학생을 침상에 눕히기도 해야 한다. 다른 학생들을 치료하면서 또는 업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침상에 누워있는  학생들의 상태도 관찰해야 한다.  학생이 보건실 밖에서 다친 경우에는 구급함을 가지고 뛰거나 휠체어를 끌고 최대한 빨리 학생이 있는 곳까지 달려가야 한다.  보건수업하러 주 4회 3, 4층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학교폭력 위원회 전담기구, 위기관리 위원회, 학생 맞춤형 통합복지위원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단을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목발 짚고 몇 걸음 걷는 것도 힘든데 학교에 출근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욕심이긴 했다.  의사는 환자분이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병실을 나갔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병가를 가본 적이 없다. 일주일도 아니고 2주도 아니고 3주도 아니고 6주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뽀글이 할머니께서 오늘 퇴원선물이라 자신이 사용하던 정형외과 발 받침대, 휠체어, 티브이 리모컨을  나에게 주셨다. 나는 선물 중 하나인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병가를 내기 위해  입원실 밖 로비로 갔다.


학교에 전화하려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보건선생님이 이름이 떴다.  나는  아무래도 6주 정도 병가를 내야 할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생님 학교는 개의치 말고  교감선생님께 말하세요."라고 했다.  내 업무 중 급한 업무 두 가지를 그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하나는 오늘 5교시부터 시작되는 6학년 성교육 동아리 활동 관련 업무였고, 또 다른 하나는 다음 주 화요일에 있을 아동성착취 예방 교원연수 관련 행정업무였다.   


담당교감선생님에게 상황을 전했다. 나의 부주의로 여러 사람 고생시키게 되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자책하지 말고 치료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병가 기간 동안 기간제 교사를 용하고, 기간제가 모집되기 전까지는  인턴강사를 쓰겠다고 하셨다. 교감선생님께서 진단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내라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 2층 간호사실에 갔다.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의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외래 간호사가 이름을 불러 휠체어에서 내려 왼발로  콩콩콩 뛰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콩콩콩 뛰다가 발가락에 박힌 핀이 빠지면 또 수술해야 한다고 나무랐다. 병실에서부터  목발을 짚고 오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왔었다. 진료실 가는 길이 혼잡하여 어쩔 수 없이 콩콩콩 뛴 건데 야속하기도 했다. 나는 어떤 행동이든 이유가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우치기가 무섭게 진단서를 써주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회진할 때 말했던 것과 똑같이 써주었다.  원무과 직원이 진단서 발급비 이만 원을 내라고 했다. 종이 한 장에 이만 원이라니 비싸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좌이체 해주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퇴원할 때 한 번에 계산하라고 했다.


진단서를 사진으로 찍어 교감선생님께 보냈다.  6월 3주부터 학교보건 교생실습이 예정되어 있었다. 실습생을 보내기로 한 대학의 담당 교수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말했다. 그 시각이 11시였다.


물리치료실에 가서 냉각치료를 10분가량 받았다. 리치료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작은 아이가 병동 모서리 벤치에 있다고 했다. 작은 아이를 만나 아이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 했다. 8월 검정고시를 보면 좋겠는데 망설여지나 보다. 무엇이든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이다.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지게 내버려 둬야 한다. 그것이 나와 아이를 위한 길이리라.


 작은 아이는 엄마가 없어 집이 허전하다고 했다. 퇴근하고 매일 작은 아이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내 삶의 최대 즐거움이었다. 하루 육천에서 만보정도 걷던 내가 입원하면서 500걸음을 걷고 있다. 작은 아이에게 걸음수만큼 나의 행복이 줄어든 거 같다고 말했다.  작은 아이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라고 했다.  


병실에 들어오니 침상 식탁에 점심이 놓여 있었다. 침상 탁자를 마주 보고 작은 아이와 침대에 앉았다. 하루종일 안 움직였더니 입맛도 없다. 언제나 희희덕거리며 끼니때마다 두어 그릇 뚝딱뚝딱 해치우는 내가 두세 숟가락 먹고 숟가락을 놓자 작은아이가 걱정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하지. 뭐"라고 웃으며 말했다.  작은 아이가 식판을 배식구에 반납하고  공용 싱크대에서 수저세트를 씻어 주었다.


 목발을 짚고  그 어려운 이 닦기와 소변보기를 했다. 작은 아이는 "엄마, 다리를 못 쓰니까 기본적인   너무 힘들게 한다. 엄마 모습 보니 속상해"라고 말했다. "그래도 한쪽 다리라도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작은 아이가 피식 웃었다. 발이 아닌 손을 다쳤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많은 걸 빼앗아갔겠지. 발은 산책의 즐거움을 빼앗았지만 손은 요리하는 즐거움을 빼앗았을 것이다. 그래도 발가락보다는 손가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출근할 수 있었을까?


작은 아이는 "엄마 자연바람 좋아하잖아. 휠체어 타고 병원 앞을 돌아다니자."라고 했다. 병실에서 창문사이로 훔쳐서 맞는  바람과 온몸으로 맞이하는 바람은 차원이 달랐다. 환자는 병원 안에서는 병원의  부속품으로 존재한다. 휠체어 타고 환자복을 입고 병원 밖에 나가자 병원의 부속품이 아닌 하나의  고유한 개체가 되는 것 같았다. 이데아에서 나는 곡물라테를 작은아이는 복숭아 아이스티를 마셨다. 작은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아이는 휠체어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휠체어 산책이라고 불렀다. 작은 아이말처럼 입원하고 휠체어 타고 돌아다니기라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


물리치료 후 병실로 들아와 작은 아이는 신경숙의 '외딴방'을, 나는 이윤영 작가의 '글쓰기가 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를 읽었다. 읽는건 늘 즐겁다.


저녁 먹기 전 모든 환자들이 또 한자리에 모였다. 이쁜이 할머니 아들부부가 어젯밤 10시에 바리바리 음식을 싸가지고 왔었다. 예쁜이 할머니 집은 병원 앞 아파트였다. 할머니는 아들부부에게 음식을 할아버지에게 가져다주자고 하셨단다. 그러자 아들이 환자복 입고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사진 찍어 보험회사에 병원 신고 한다고  자신들이  음식을 할아버지에게 가져다준다며 할머니는 병원에 있으라고 했단다. 나는  환자복 입고 병원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거냐고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실비 받으려고 아프지도 않은 사람들이 입원해 환자복 입고 돌아다니니 보험회사들이  그런 사람들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오늘 했던 휠체어 산책을 내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할머니께 병원 앞에서 환자복 입고 휠체어 타고 다녀도 되냐고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웃으면서 그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했다. 할머니 말에 나는 순간 졸았었다.


저녁 먹고 작은 아이가 7시 30분에 병원 주차장에서 아빠를 만나기로 했다며 30분간 휠체어 산책을 더 시켜주겠다고 했다. 휠체어 타고 병원주차장에 갔더니 그 많던 차들이 저녁이라고 모두 집으로 갔는지  4대만 남아있었다. 주차장을 운동삼아 휠체어를 타고 왔다 갔다 하다가 옆건물 주차장 구석에 교복을 입고 친구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들을 봤다. 괜히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무서웠다. 작은 아이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했을 때 남편이 도착했다. 우린 오래된 부부다. 서로 알고 지낸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조금 물었다. 남편이 휠체어를 병실까지 밀어주었다. 언제가 영화에서 남편이 부인 휠체어를 밀어주는 모습을 낭만적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병실까지 가볼까 했는데 우린 현실의 부부였기에 남편이 휠체어를 어디에 부딪치지 않고 안전하게 병실까지 잘 밀기만 바랬다. 병실에 도착하고 작은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남편은 "나 간다. 잘 자라."라고 한마디만 남겼다. 작은 아이와 남편이 떠나니 우울했다.


오늘 이 상황에 월경을 했다. 일상에서 쉬운 일이 또 하나의 고난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혼자 쓸쓸히 책을 읽다가 내가 요즘 가장 힘들어하는 이 닦기와 화장실 가기, 생리대 교체하기를 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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