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지하지 마라. 선택은 너 자신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AI 연구소. 연구원 명단을 들여다본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AI = Asian Intelligence(아시아 지능)다."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OpenAI의 핵심 연구진을 빼간 메타의 초지능 연구소, 그 구성원의 75%가 외국 출신이었고 그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학부를 나온 젊은 인재들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났습니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습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부동산 격차는 청년들에게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OECD 통계는 한국의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처참한 수준임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의 ‘00세대’는 지금 AI로 인해 입문형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대학 대신 전기공·배관공을 택합니다. 하버드 청년 여론조사에서 59%가 AI를 취업의 '큰 걸림돌'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일본은 30년간 임금이 오르지 않는 ‘잃어버린 시대’에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나갔고, 유럽은 ETH 취리히, 옥스퍼드가 키워낸 AI 인재들이 캘리포니아로 가는 일방행 티켓을 끊는 '두뇌 유출'에 시달립니다.
동아시아, 유럽, 미국. 모두가 '사다리'가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합니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AI의 발전이 아니라 '아시아의 똑똑한 사람들'이 돌아가는 흐름입니다.
스탠퍼드대 '글로벌 AI 활력 지수 2025'는 미국이 여전히 AI 종주국이지만, 인도와 중국이 각축을 벌이는 '다극 체제'로 재편 중이라고 진단합니다. 글로벌 상위 AI 연구자 중 중국 출신(학부 기준) 비중은 2019년 29%에서 2022년 47%로 폭등했습니다.
더 놀라운 변화는 남부 인도 카루르 같은 '소도시'에서 일어납니다. 평균 월급 155달러의 이 도시에서 젊은 여성들은 AI 데이터 라벨러로 일하며 '가난의 사다리'를 오릅니다. 신입 200달러, 매니저 1000달러. 이들에게 이 일은 '소도시의 대기회'입니다.
인도 AI 데이터 라벨링 산업은 2030년까지 100만 명을 고용하고 시장 규모 7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미국에서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가 커질 때, 인도의 소도시에서는 '용'이 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H-1B 비자에 족쇄를 채웠습니다. 연간 6만5000장, 석사 2만장 추가. 자비로운 의도였을까요? 결과는 달랐습니다.
경제학자 가우라브 칸나는 1990년대 IT 붐을 분석하며 역설을 증명했습니다. 미국으로 가려다 비자 추첨에서 탈락한 인도인들, 몇 년 뒤 고국에 돌아간 인도인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습득한 기술과 자본을 갖고 인도 IT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인도는 결국 소프트웨어 수출에서 미국을 추월했습니다.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비자 취소와 연구비 동결 위협 속에서 중국 출신 AI 박사 80%가 미국에 잔류했지만, 그 비율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AI 연구 환경이 미국과 대등해졌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 안에서도 용은 자랍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는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열리고 있는가'.
정답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단, 조건이 붙습니다.
첫째, 'AI=아시아 지능'이라는 등식은 아직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서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갖췄는가'의 문제입니다. 스탠퍼드 보고서는 개인의 경쟁력이 이제 '단일 국가'가 아닌 '글로벌 협업 네트워크'에 달렸다고 진단합니다.
둘째, 용의 형태가 변했습니다. 20세기 '용'은 정규직 화이트칼라, 대기업 임원이었습니다. 21세기 AI 시대의 '용'은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AI 데이터 라벨러, 소도시의 글로벌 원격 근무자, 혹은 전기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청년들이 'AI가 못 따라오는 직업'으로 전향하는 현상은 결코 퇴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AI와 '경쟁'하는 대신 AI가 할 수 없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반론은 가능합니다. 인도 카루르의 데이터 라벨러가 '용'인가? 그들은 글로벌 AI 가치사슬의 최하위에 있을 뿐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데이터 라벨러'를 영원히 라벨러로 두지 않습니다. 1990년대 인도의 콜센터 직원들은 '전화 받는 기계'로 불렸습니다. 지금 그들은 글로벌 IT 기업의 CEO가 되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하느냐'보다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입니다. 경제학자 칸나는 "고향에서 일어난 혁신이 개인의 삶을 의미 있게 바꾸려면, 그 분야가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AI는 지금 성장 중입니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용의 모습이 변했고, 개천의 위치가 바뀌었으며, 사다리를 오르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연구소에서만 용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 카루르의 작은 사무실, 중국 선전의 하드웨어 스타트업, 싱가포르의 정책 연구소, 심지어 한국의 지방대학 실험실에서도 용은 자라고 있습니다.
AI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용이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남들이 놓은 사다리를 오르는 데 지쳤다면, 직접 사다리를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는 반드시 서울이나 판교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개천은 한국 사회 한 군데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습니다. 다만 그 개천을 찾아가는 지도가 더 이상 학교 성적표나 학벌 증명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언어 능력, AI를 활용하는 디지털 문해력, 그리고 변화하는 직업 지형을 읽는 혜안.
이것에 새로운 미래의 희망, 계층을 뛰어넘는 노력과 희망이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8768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