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아의 환상과 기술의 경계

미래에서는 영혼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by Dennis Kim

나는 누구인가? 번들 이론에서 제법무아로 보는 자아의 환상과 기술의 경계


"자아는 고정된 섬이 아닌, 강물의 흐름이다."


데이비드 흄의 번들 이론과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같은 진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두 철학은 인간의 자아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들의 집합이라는 통찰을 공유합니다.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러한 철학적 질문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살펴보고, 공각기동대가 던지는 혁명적 질문으로 확장해보겠습니다.


1. 고대의 통찰: 불교가 말한 '제법무아'의 선구성

부처가 2500년 전 선언한 "모든 존재(法)에는 고정된 자아(我)가 없다"는 제법무아 교리는 허구적 자아 개념을 철저히 해체합니다.

5온(五蘊): 자아는 몸(色), 감각(受), 인식(想), 의지(行), 의식(識)이라는 다섯 요소가 임시로 뭉친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연기(緣起): 모든 것은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며, 고정된 실체는 없습니다.


강물의 파도를 예로 들면:

파도는 형태가 있지만, 실체는 물분자의 임시 조합일 뿐입니다.

"파도"라는 이름을 벗기면, 남는 것은 물, 바람, 중력의 상호작용일 뿐입니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는 이 개념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현실과 극 중 역할을 오가며, "진짜 나"를 찾으려 하지만, 매 순간 새로운 역할로 변합니다. 이 과정은 마치 "연기(緣起)연기(演技)"처럼, 자아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2. 번들의 현대적 해석: <메멘토>와 <파이트 클럽>

데이비드 흄의 번들 이론은 자아를 일관된 실체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자아를 생각, 감정, 기억 등 다양한 경험의 집합체로 간주했습니다.


영화 메멘토, 기억이라는 허상

주인공 레너드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으며, 자신이 남긴 문신과 메모에 의존해 살아갑니다.

그의 자아는 일관된 정체성이 아니라, 단편적인 기억의 집합에 불과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복수하려던 대상조차 허구로 조작했음을 깨닫습니다.


제법무아 각성: 레너드는 자아의 실체가 허상임을 깨닫지만, 그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허구 속으로 돌아갑니다.


영화 파이트 클럽, 분열된 자아의 병합 실험

주인공과 타일러 더든은 하나의 인물이 가진 두 얼굴입니다.

주인공은 타일러를 통해 억눌린 욕망과 파괴 충동을 표출합니다.

"우리는 직업이 아니라, 소비하는 물건으로 자신을 정의한다"는 대사는 현대인의 자아가 외부적 요소에 의해 정의된다는 사실을 꼬집습니다.


불교적 해석: 주인공은 소유와 역할에 집착한 결과, 자아가 분열된 것입니다. 붓다는 이러한 집착이 고통의 근원임을 경고합니다.


3. 사이보그 시대의 자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혁명적 질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자아의 본질을 묻습니다.


주인공 모토코 - 실체 없는 씨앗

뇌를 제외한 신체가 모두 기계인 모토코는 매번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과거의 나는 어디에?"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녀의 "고스트(의식)"는 데이터 흐름 속의 패턴일 뿐, 고정된 실체는 없습니다.


인형사 사건, 자아의 디지털 전이

AI 인형사는 자신을 자아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진화란 자신을 넘어설 것을 갈망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자아의 정의가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불교적 해석:

모토코와 인형사의 융합은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의식을 탄생시킵니다.

이는 "몸(色)이 공(空)하고 의식(識)도 마찬가지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닮아있습니다.


4. <매트릭스> vs <공각기동대>: 두 가지 종말 시나리오


영화 매트릭스 - 서구적 구원 내러티브

네오는 가상 세계를 깨닫고, "선택된 자"로서 인간성을 회복하려 합니다.

이는 독립적 자아의 구원을 강조하는 서구적 시각을 반영합니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 동양적 자아 해체

모토코는 인간성과 기계성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정보체로 진화합니다.

이는 개체성의 해체를 통해 더 큰 전체와 합일하는 동양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핵심 차이:

매트릭스는 자아의 구원을 강조하는 반면, 공각기동대는 자아의 해체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모색합니다.


결론: 대융합 시대, 고스트를 찾아서


21세기 기술 혁명은 제법무아와 번들 이론을 현실로 끌어왔습니다.

AI, 빅데이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인간을 "업데이트 가능한 소프트웨어"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아바타, NFT 정체성 등은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5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이블린은 무한한 평행우주를 경험한 뒤, "나는 이 순간의 연결 속에서만 존재해"라는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번들 이론과 불교의 제법무아는 인간의 자아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감정의 조각들이 임시로 모인 번들입니다.

사랑,이별, 배신과 같은 감정들은 이 번들의 일시적인 결합일 뿐, 고정된 자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실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여러 퍼즐이 맞춰진 번들의 총합일 뿐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이터 흐름 속에서 영혼(Ghost)처럼 맴돌고 있습니다. 그 유령이 고정된 주인이라고 믿는 것은, 단지 편안한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독립된 자아로써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행동과 추억하는 기억이 모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개인의 선물 옵션 거래는 실패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