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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함 Oct 19. 2020

‘소셜’ 스마트시티,
도시의 본질을 묻다








스마트시티는 첨단기술이 이식된 도시를 말하는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02년에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이 고도화된 미래의 상을 생생하게 제시하여 여전히 도시의 미래상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소위 ‘스마트시티’에 대한 담론이 이미 십수 년 전부터 활발히 형성되었고, 여러 정책들이 만들어졌으며, 세계 유수의 기술기반 기업들이 스마트시티의 선봉임을 자처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에서 발표되는 많은 스마트시티에 대한 청사진들을 보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려진 모습들이 당장이라도 구현될 것 같지만, 실제로 스마트시티를 표방하는 도시들을 방문해 보면 스마트 가로등이나 스마트 쓰레기통과 같은 소소한 기술 솔루션들이 전부라는 사실에 실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개별 기술의 진보, 상용 가능한 가격으로의 하락, 기술들 간의 융합(convergence) 등이 임계에 도달하지 못한 인상이다.


과학기술의 임계 돌파가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와 같은 주류 담론에 편승하기 전, 이 지점에서 질문을 한번 뒤집어보자. 그렇다면 기술들이 충분히 진보하고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그래서 그 기술들을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도시에 이식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도시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와 같은 SF영화 속 이야기처럼, 첨단기술이 도시에 이식되기만 하면, 우리가 바라는 스마트한 도시가 되는 것일까? ⓒpixabay





역동적인 유기체로서 도시



도시는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여 복잡다단한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유기체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식생활, 주거, 의료, 안전, 교육, 문화 등 생활 및 산업 전반에 걸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구의 집중으로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간다. 이러한 수요-공급의 간극에 의해 시민의 삶의 질은 하락될 수 있고, 불평등 또한 심화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전격적 도입은 자원의 배분을 효율화함으로써 더 높은 효용을 창출하고, 그에 따라 도시 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단순한 자원의 공급과 배분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팽배한 상대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계층 간 갈등, 사회적 안전망의 파괴, 심적 불안의 증대와 우울증의 확대 등은 단순히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지점들이 적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곳을 진정한 의미에서 살기 좋은 도시라고 정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소 낯설 수 있는 ‘소셜 스마트시티’라는 담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단순히 도시의 효율을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이 형성되고, 커뮤니티가 조성/활성화되며,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에 의한 사회적 안전망이 형성되는, 그래서 실제 삶을 영위하는 시민들이 종합적인 의미에서 살기 좋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도시를 우리는 ‘소셜 스마트시티’로 정의하고자 한다.





소셜 스마트시티, 도시의 본질을 묻다



소셜 스마트시티가 바라보는 도시의 중심은 사람, 시민이다. 시민 삶의 질을 높여내는 방향으로 도시는 계획•발전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시민은 개별적•파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교류하고 상호 협력하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내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내는 주체로서의 시민을 말한다.


소셜 스마트시티가 궁극적으로 구현된 미래상의 단면을 상상해 보자. 소셜 스마트시티에서는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가 시민에 의해 발굴•정의되고, 시민의 뜻이 의사결정 기구로 상달되며, 시민의 대표가 참여한 의사결정 기구 또는 다수의 시민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로 필요한 정책•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실행된다. 그리고 또 실행된 정책, 제도, 프로그램과 공급된 재화 및 서비스들은 다시 이를 사용한 시민에 의해 평가되고 피드백되는 순환구조가 담보된다.


사회혁신기업 더함은 최근 SH공사와 함께, 서울에 존재하는 마지막 대규모 택지지구인 고덕강일지구(14개 블록, 11,000세대)를 소셜 스마트시티 조성 방식으로 활성화하는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그리고 첫발을 내딛기 위한 핵심 과제로 ①민•관•시민•사회적경제 주체의 협치에 의한 거버넌스, ②시민의 민의를 수렴하고 상달하며 다시 피드백하는 도관체(導管體)로서 통합 임대•커뮤니티관리 회사의 설립을 제시했다.


내가 사는 공간에 제공될 주요 재화•서비스•커뮤니티 시설•프로그램들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실제 권한을 가진 거버넌스에 시민이 참여하고, 의사결정된 내용들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통합 임대•커뮤니티 관리회사 등의 구조가 만들어지면, 우선 소셜 스마트시티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민의의 통로’가 생성된다.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적정 기술들을 덧대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이다.


얼마 전 설계현상공모를 통해 건설사를 선정한 고덕강일지구 1블록과 5블록에는 이러한 개념들이 접목되어 있으며, SH공사는 지구 전체를 소셜 스마트시티로 묶어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배제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기술은 시민의 의사를 적확히 수렴하고 전달하며, 의사결정에 최대한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그리고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데는 기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성숙하지 않은 개별 기술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은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관점에서도 지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포틀랜드로부터 배우다



‘살기 좋은 도시’란 무엇일까? 우리는 스마트시티의 구현을 왜 바라는 것일까?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는 최신 기술이 접목된 도시는 분명히 아니다. 교통 시스템 등 도시의 인프라들은 기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오히려 낙후돼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이다. 그러나 포틀랜드는 북미 전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면서, 예술•산업•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창조적인 결과물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힙(hip)한’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포틀랜드의 95개 주민자치 조직이 도시의 계획, 시설 공급, 서비스 공급의 상당 부분에 대해 의사결정하는 거버넌스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틀랜드의 95개 주민자치 조직은 도시에 대한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가진 거버넌스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 ⓒ더함, 김영철 이사




우리는 왜 스마트시티를 주창하는가? 우리가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이 도시가 진정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감싸 안기를 바라는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시점이다.



김영철 (사회혁신기업 더함 이사)




해당 글은 2019년 10월 21일자 <라이프인>을 통해 발행된 칼럼입니다.

해당 글은 2020년 1월 20일 사회혁신기업 더함 공식홈페이지에 송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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