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드는 밤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한 생각

by hyojinrgb

아빠는 매일 저녁 티비를 보면서 정치인사들을 욕했다. 엄마는 매일 정치 얘기를 하는 아빠의 푸념이 싫다고 했다. 다 똑같은 놈들인데, 소시민이 뭔가를 해봤자 뭐가 달라지냐고. 부끄럽게도 고등학생때까지의 나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수능을 준비하던 때에 세월호 사건이, 입학하고는 최순실 사태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바로 윗학번 선배가 부르짓는 장면을, 그때 활동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꿘'이라고 비아냥되는 깎아내림과 '변화를 만들어낸 이들'이라는 존경으로 나뉘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여러 일을 다른 학교와는 다른 관점으로 겪어 온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소수자에 관심을 가졌다. '시네마떼끄'에서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경험했다. 예술에서 겪는 사유가 내가 똑바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고 믿었다. 미투로 촉발된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고 집회에 나가고 여성학을 부전공만큼 많이 공부했다. 그때도 페미니즘 안에서도 또 양분화되었다. 모든 변화를 촉발시키는 힘이 분산되는 게 아까웠고, 결국 이렇게 세상을 바꿀 수 없게 되는구나 좌절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서는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바뀌었다.


좋아했던 것들은 취미로 미뤄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아등바등 경주마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새벽 3시까지 혼자 회의실에 남아서 터진 이슈를 어떻게든 수습해보고, 술만 마시면 혼자 걷고, 혼자 우는 술주정이 생기면서도 새로운 일을 잘 해보려고도 해봤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든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겠거니 명분을 찾고 있었다.

Where Change Begins 라는 말을 좋아한다.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에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직도 있다. Where Change Begins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영향력, 그리고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발걸음 둘 다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정리되고 있다. 전자만 키우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12.03 계엄사태는 다시 한번 움직이게 했다.


권력주의에 희생된 수많은 피 위에 올려진 나라가, 다시 한번 이를 반복하게끔 시도하는 걸 봤다. MBR을 쓰고 있었는데 뭔가 장이 뒤틀리는 경험을 했다. 계속 쓰고 바쁘게 한 주를 마무리했는데 카톡이 왔다. 잊고 있었던 시네마떼끄의 현재 학번이 함께 시위에 나갈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의무를 다 하지 않으려는 국민의 힘 의원들을 못 가도록 몸으로 막고 있었다.


시네마떼끄에서 자주 보고 좋아했던 <몽상가들>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온 영화광 유학생인 매튜가 이사벨과 테오 라는 젊은 프랑스인 자매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68혁명이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분노, 무기력이 혼재된 사회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변화를 위한 의지 하나로 친해진다. 시위대가 창문을 깰 때 친했던 셋도 레디컬한 방법, 윤리적 방법 사이에서 갈등한다. 매튜는 68혁명이 터질 때 방에 있고, 테오 이사벨은 거리로 화염병을 들고 나간다.


토요일에 나가지 않으면 내가 배웠던 살아가는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애령 교수님의 철학 수업에서 철학은 행동하는 학문이라고 배웠다.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잠도 안자고 사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느꼈다.


내란죄를 일으킨 대통령의 탄핵은 국민의 힘 의원들의 비굴함으로 부결되었다. 나는 또 다시 'I want a dyke for president' 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바텀업으로 목소리 내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느낀다. 호민은 행동한다는 철학을 믿고 다음주도 거리에 나가려고 한다. 국회에 있었던 사람들의 체온으로 함께 변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희망이 있길 바라는 것 마저도 희망이지 않겠냐'라는 말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