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말 요양여행

불행이 오길래 세상으로 도망 중

by Soop



불행과 기회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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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 꿈이었던 세계여행을 위해 휴학을 했다.


코로나가 터졌다.

기다렸다.


1년 반이 지났다.

코로나는 일상이 되었다.

... 돌아가자. 졸업은 해야지.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쭉 이공계로 살았으나,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해보기 시작했다.

영상, 앱 제작 등 사이드프로젝트들에 참여하며, 디자이너로써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런칭했던 앱으로 정부 상을 타기도 하고, 영상팀에 전념해보기도 하고...

아. 재밌는 것만 하다 보니 돈이 떨어졌다.




평소 좋아하던 생활용품점에 매니저로 잠시 취직했다.

... 질병을 얻었다.


온몸의 피부가 가려워왔다. 구석구석, 하루 종일, 끔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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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시작인데... 아프다고? 나 젊은데?


20대 말,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이 나이에 뼈저리게 느낄 줄은 몰랐다.

건강과 시간과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게 내가 아는 젊음인데.


내 몸의 피딱지가 전신을 덮어갈수록, 다른 피부질환들까지 들러붙을수록

부정, 억울함, 분노는 무력한 것이 되었고,

삶은, 모든 것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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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의외의 조언이었다.

동생이 어릴 때 아토피가 있었는데, 우리가 중국 유학 갔을 때 싹 사라졌다며

어디로든 환경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마침 집 계약이 끝날 시기였고, 난 절박했다.

내내 병원들을 다녔어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단 걸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결정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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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말, 떠나기로 한다. 돌아올 곳 없이, 어디로 흐를지 모른 채.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결정이었으나, 이제는 떠나야만 한다고 본능이 외치는듯했다.

내게 남은 건 제발 살려달라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 하나.


나의 20대 말 요양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행으로 시작된 세상으로의 도망은

소망하던 때엔 이룰 수 없었던 떠남.


과연,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에서도 이야기를 풉니다.

https://www.instagram.com/p/DLnMMQZS_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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