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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B Dec 16. 2020

구애는 실패했습니다만, 구직은 성공했습니다 (2)

#2.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5초간의 '깊은' 고민 끝에 소개팅 제의를 받았다. 사실 알겠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선자가 상대방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것도 대충 흐린 눈으로 넘겨 읽었다. 어차피 친구 만들러 나가는 거지, 뭐. 나에게는 인생 첫 소개팅에서 괜찮은 사람을 단숨에 만날 리 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렇다. 소개팅 상대와 만나기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이토록 평온하고 침착했다. 정말 하늘에 맹세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금사빠에 노빠꾸 직진 파이다. 연애던, 공부던, 술이던, 한 번 꽂히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나를 '핸들이 고장 난 8t 트럭'이라 불렀을까. 그러다 결국 그 기질로 인해 6년 전, 심하게 데었다. 당시의 일은 꽤나 깊은 상처로 남아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기에 앞으로는 절대 한눈에 꽂히는 짓 따윈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는데... 소개팅 상대를 만나자마자 자연스레 함박웃음이 튀어나오는 걸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아니, 근데...!!!'


   나는 일단 침착하게 주선자를 향해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정말로. 일단 '어딘가에 미쳐있는 사람'이라는 내 이상형과 일치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대화가 잘 이어지는 만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직업에 대한 것에서 시작해서, 부(富), 교육, 사업 등 여러 방향으로 매끄럽게 이어져 나갔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소개팅의 흐름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뭐 어쨌거나 나는 그런 카테고리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까딱하면 대화 도중, 남자가 요즘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 살짝 지겨워졌다는 말에 '그럼 이제 그 모임 그만하고 저랑 연애해요!' 하고 대답할 뻔했으나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아 냈다.


본 그림은 픽션 이지만, 원래 노빠꾸 주접이 넘치는 사람이긴 합니다...

   

   물론 단 한 번의 짧은 만남으로 완전히 사랑에 빠진 건 아니지만(진짜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엔 충분했다. 한 번만 더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음 만남을 제안했다. 그래, 분명 이때까지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후로도 나는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솔직히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상대의 반응을 보고, 이 이상의 진전은 어려울 것 같다고 눈치를 챘지만 어떻게 한 번만 더 만나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래 봤자 소용없다며 과거의 차가운 기억이 내 머리채를 잡고 마구잡이로 뜯어말렸으나 나는 괴로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남자와 억지로 연락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남자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원티드에서 나오셨나요

   

   디자인이요? 물론이죠... 그런데...

   

   그렇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아, 이 소개팅은 망했구나.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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