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드백은 너의 좋은 길라잡이가 되었을까
디자인 피드백. 컨펌. 업무 검수. 온갖 단어들로 부를 수 있지만 결국 [디자인 결과물의 퀄리티가 목적과 기준에 맞는지 보고 리뷰하는 것]이다.(하지만 여기서는 피드백이라 하겠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피드백을 [받던] 내가 피드백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이 정도로 실력자가 되었다!”는 뽕에 취해서 디테일한 부분과 디자인 스킬 관련해서만 리뷰를 하게 되는데, 이젠 그것만 보면 안 된다.
내가 오랫동안 일하는 분야는 마케팅 디자인. 마케팅 관련 이벤트 페이지, 배너, 그 외 광고들 등등등을 보는 분야다. 마케팅 디자인을 하려면 현란한 그래픽도 잘해야 하고, 모바일 환경에서 눈에 잘 보이게 모바일 웹 환경도 알아야 하고, 이벤트 내용이나 쿠폰 내용 등 중요한 내용들이 아무리 많아도 이해가 잘 되게끔 UI나 UX도 알아야 하는 등 아주 종합선물세트가 따로 없다.
그럼 이 만능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난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피드백을 줘야 하지? 최근 들어 디테일 봐주기 외에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이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한 디자이너의 프로모션 페이지 작업이 완료되었다 해서 보는데, 시안을 보고 뜨악했다. 이 글에서 세세하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고쳐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디테일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페이지 흐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 어디서부터 피드백을 줘야 하나?'
재택중이었던 나는 슬랙으로 피드백을 주기 전, 페이지와 배너들을 후다닥 훑어보기 시작했다. 고쳐야 할 부분들을 모두 나열하기에는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고 고칠 시간도 부족하다. 고쳐야 할 부분들 중 제일 중요한 지점부터 파악해야 한다. 1차 피드백은 슬랙으로, 2차 피드백은 슬랙 허들로 함께 얘기하면서 고쳐나갔다.
1. 투머치(Too much)한 그래픽들을 최대한 뺄 것. 오히려 너무 많이 넣어서 조잡해 보일 수 있다.
2. 현재 페이지에서 내용 구분이 전혀 안되고 있다. 배경색 구분처럼 큰 섹션별로 구분이 되게 할 것.
3. 내용은 위계별로 색 대비로 보여줄 것. 중요도가 높은 이벤트의 메인 내용이 잘 안 보이고, 오히려 서브 영역에서 색 구별이 확실히 들어가서 내용 중요도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색 사용을 한번 더 볼 것.
4. 가독성이 중요하다! 폰트 사용 + 폰트의 이펙트 사용이 가독성을 해치면 안 됨
(내 주관일 수 있겠지만) 피드백을 받고 고쳐나가면서 결과물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마지막 확인은 다 함께 출근한 날에 둘이서 같이 봤는데, 페이지 최종 확인을 마치고 나서 디자이너는 자신이 어떻게든 더 꾸미고 예쁘게 하고 싶다는 마음에 너무 과한 디자인으로 갈 뻔했다는 것을 반성했다.(이때 B팀장님과의 1 on 1에서도 그 선을 넘을뻔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를 고쳐야겠다고 얘기했다 한다) 흘러가듯 얘기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다음에 안 그러면 되지. 계속 이러면 그게 문제인 거예요."
주니어 디자이너 피드백 사항들을 단숨에 고쳐서 폭풍성장하라는 보장은 없다. 한창 시행착오를 거칠 시기라 이렇게 해봤는데 무조건 다 완벽하고 잘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대신 이게 맞는 방향인지 갈팡질팡하지 않게 표지판이 되어주는 것이 시니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을 때 “아 그때 이런 경험이 있었으니 이번에 작업하면서 조심해야지” 되새김질하면서 이전의 피드백 사항을 발판 삼으면 된다.
위에서 말한 사례처럼 마케팅 디자인에 관련된 주니어들의 실수는 비슷한 점이 많다. 어디까지나 마케팅/광고의 영역이다 보니 모바일의 배너, 이벤트 페이지 작업에서 그래픽의 비중이 높다. 그래서 자칫하면 이벤트의 본질을 넘어서 강렬하고 화려한 그래픽에 빠져서 선을 넘어버리거나, 소위 말해 [배가 산으로 가버리는]… 목표를 잊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마케팅 디자인은 단순 그래픽 작업이 아니며, 그래픽은 마케팅 목적을 이루기 위한 중요 수단이지 그래픽이 목적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 비주얼이 화려한데 배너/페이지에서 이벤트 목적이나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때문에 내가 피드백을 줄 때에는 디자이너의 시안들 중 이벤트 방향에 맞는 시안을 골라주고, 그 시안에서 내용이 잘 보이는지 내용 위계가 잘 나눠져 있는지(이벤트 페이지에 엄청나게 많은 텍스트와 내용들이 올 때는 위계 정리가 매우 중요하다)를 중점적으로 본다. 그래서 위에서 항상 가독성, 여백 정리나 폰트 크기 등의 내용 구분을 강조한 것이다.
항상 목적을 잊지 않는 것. 우리가 작업하는 것은 이벤트의 주목도를 높이고, 그 이벤트에 대한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디자인하는 것. 이 방향을 주니어에게 항상 알려주고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팀에서의 나의 역할이다.
상반기에 B팀장님의 입사 전 주니어 디자이너들과 1 on 1 미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작업물마다 퀄리티 편차가 심한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이 문제는 나도 그렇고 당사자도 힘들어했던 문제점이었다. 그때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고 디자이너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00님이 3월에 했던 프로젝트가 제일 힘들었다고 했는데, 앞으로 우리 팀이 맡는 서비스가 확장된 만큼 수많은 프로모션 작업들을 하게 될 거예요. 앞으로 업무를 진행할 때마다 00님이 이 디자인을 했는지 이유를 얘기하고, 제가 그 방향이 맞는지 피드백을 줄 겁니다. 그 피드백을 업무를 진행할 때 잊지 말고 다음 업무를 진행할 때 적용해 보세요. 그리고 9월이나 10월쯤에 한 프로모션 디자인과 3월에 한 프로모션 디자인을 비교해 봅시다. 확실히 나아지고 있는 게 보인다면 00님은 성장하고 있는 거예요. “
이제 8월이 끝나가고 9월이 다가오고 있다. 00님은 3월의 헤맸던 그 순간을 딛고 성장했을까? 내가 그동안 00님에게 줬던 방향잡기 피드백들은 소용이 있었을까. 그저 빠르게 쳐야 하는 마케팅 디자인의 업무 속에서 후다닥 지나가는 말일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드백 사항들 중 00님의 성장에 몇 마디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