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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페코 Jan 16. 2020

요즘은 노란색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이 기우는 것이 '취향'이라지만, 좋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고, 좋은 척해야 하는 것도 많은 복잡한 세상에서 내 취향을 온전히 파악해 그것을 드러내며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껏 살라한다. 취향이 먼지 잘 모르겠는데 취향껏 살라니... 취향 없이 사는 삶이 이상해 보이기 십상인 요즘이다.


살림을 산 시간의 겹이 두터울수록, 시시각각 변하는 시절의 유행과 시시때때 바뀌는 변덕스러운 마음 탓에 하나의 취향으로 일관된 살림을 살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신혼초엔 스테인리스 냄비가 유행이더니, 지금은 주물냄비가 유행이다. 한때는 어두운 톤이 좋더니, 지금은 밝은 톤이 좋다. 나도 모르는 새에 유행과 끌림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살림에 하나의 취향을 담아내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심플한 것을 좋아하지만 아기자기한 것들도 꽤 좋아한다. 주로 무채색을 선호하지만 때론 강렬한 색감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단조로운 패턴을 좋아하지만 복잡한 패턴이 좋아 보일 때도 있다. 좋아하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십 년의 삶을 살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다양한 취향의 것들이 서로 화음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필요에 의해, 때론 충동적으로, 가끔은 분위기에 휩쓸려가며 여러 가지 것들을 소비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다.



그런데 이를 어쩐담. 다양한 취향을 뒤섞어 사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하나의 취향으로 일관된 나만의 살림을 살고 싶다. 여러 취향이 각자도생 하지 않고, 하나의 분위기를 냈으면 좋겠다. 취향 있는 주부로 보일 수 있도록 살림살이의 불협화음 속 화음 찾기에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살림을 디자인한다.  


내 삶 속에 숨어있는 취향을 찾아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갖가지 살림살이들의 집합체들 가운데 공통된 특성을 갖는 것끼리 한데 모아 보는 것들로부터 취향 찾기를 시작할 수 있다. 시각적 어울림을 찾기 위해 '통일'이라는 디자인의 기초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시작은 무척 간단하다. 가족이 서로 닮아있듯, 개별적인 살림살이들의 닮은꼴 기준을 찾아주기만 하면 된다. 컬러, 소재, 형태 그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우선 컬러 취향부터 찾아보자. 컬러의 통일은 가장 손쉽게 살림 화음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이삿짐을 정리하다 집에 노란색 물건이 여럿 있음을 알아챘다. 분명 나는 파란색을 좋아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집에 파란색 물건이 거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어른이 된 후로 쭈~욱 어떤 물건이든 파란색에 끌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좋아하는 컬러가 바뀌었나 보다. 미술학도였던 내가 좋아하는 컬러가 바뀐 줄도 모르고 무던히 오랜 세월 잘 살아왔음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친김에 집에 있는 노란색 살림살이를 모두 모았다. 노란색 타이머, 노란색 꽃, 노란색 컵, 노란색 가위, 노란색 테이블, 노란색 바구니, 노란색 계란 홀더, 노란색 스툴 등 다른 색 물건에 비해 노란색 물건의 가짓수가 꽤 많더라. 용도도 모양도 크기도 전부 다른 살림살이들이지만 같은 색을 기준 삼아 모두 모아놓고 보니 서로가 꽤나 잘 어울린다. 그간 흰색과 회색 물건의 관심과 선호로 유채색은 늘 관심 밖의 대상이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노란색에 끌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왠지 노란색이 내 취향을 드러내는 컬러일 것만 같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노란색 덕후가 되었다. 집에 다양한 컬러의 살림살이들이 있지만, 대게 노란색 살림을 밖으로 내어놓고, 다른 색상의 살림은 보이지 않게 넣어두는 편이다. 기존 살림에서 노란색이라는 닮은꼴을 찾아낸 이후, 물건 살 때 색상 선택이 한결 수월해졌다. 마음에 드는 색이 여럿일 때, 그 가운데 노란색이 포함되어있는 경우라면 가급적 노란색을 선택한다. 취향을 담은 컬러 픽은 실패 확률이 낮다. 그렇게 재작년엔 노란색 스피커를, 작년엔 노란색 의자를 집살림으로 추가했다. 화이트 인테리어에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줄 줄 아는 어느 주부의 살림 취향이 완성됐다.



취향이란, 이미 어떤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취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숨은 내 취향을 찾아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살림살이를 숱하게 더하고 빼내는 와중에도 삶의 일부가 되어 있던 '나만 몰랐던 나만의 취향'을 발견한 이후, 전보다 더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다. 때문에 새로 들일 살림을 허투루 아무거나 고를 수 없다. 이제 물건을 고를 때엔 기존 것들과의 어울림을 살피는 생각의 여유가 반드시 필요해졌다. 어울림을 살피는 여유는 지금 고른 물건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선택의 신중함도 키워줬다.


취향 있는 살림이란 이런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무언가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에 갖는 조심스러움. 아마도 그것이 취향 담긴 살림을 사는 개인의 안목이 될 테다. 지금 당장 닮은꼴 살림살이를 찾아보길 권한다. 컬러 취향을 찾았다면, 다음엔 소재 취향을 찾아볼 수도 있다. 단언컨대 살림살이의 닮은꼴을 찾는 세심한 관찰이, 모두에게 취향 발견의 지름길을 제공할 것이다. 이제 어떤 취향을 가지고 살지 고민하지 말자. 취향은 이미 내 삶 속에 숨어 있을 테니...


-end-




@mrs.p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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