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은 작년 이맘때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또래 친구들 사이에 산타가 있느니 없느니 옥신각신했었나 보다. 어느 날 산타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엄마, 아빠 앞에서 입 밖으로 말을 해버렸다. 덕분에 아이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에게서 선물을 받지 못했다. ^^;
둘째는 좀 억울할 수 있다. 왜냐하면 터울이 제법 나는 언니는 자신 덕분에 작년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억울함이 옆에서도 보였다. 마음이 쓰여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선물을 주지 않으니까, 나라도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먹었으나, 까탈스러운 사춘기 딸을 만족이나 시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빠졌다.
아이가 무얼 좋아할지 고민스러웠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집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둘째를 보고 '바로 저거야!'하고 스파크가 지지직 통했다. 아이돌 그룹 원어스(ONEUS)에 푹 빠져있는 딸을 위해 모바일 앱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솔직히 나는 미디어에서 원어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이돌 그룹이라 관심도 없지만 집에 TV도 없어서 애써 찾지 않는 이상은 볼 일이 없다. 아마도 아이는 친구들에게서 원어스를 처음 들었을 것 같다. 딸은 어느 날부터인가 원어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니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며, 급기야 팬클럽 네이버 밴드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어느 날은 브로마이드가 날아왔다. 또 어느 날은 CD가 배달되었다. 집엔 CD 플레이어가 없는 데 말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할 CD를 받으려고 택배 아저씨를 어찌나 기다리던지.
얼마전에 봤던 성동일, 하지원 주연의 영화 [담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을 샀던 어린 담보가 떠오른다. 성동일은 어린 담보를 위해서 비싼 CD 플레이어를 샀고, 그건 영화 내내 그들 사이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성동일과 달리 나는 CD 플레이어를 살 생각이 없지만, 딸은 플레리어 사달라는 이야기는 없고 그저 CD를 벽에 세워두고 애지중지 눈길을 주기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특히 어린 사춘기 여자 아이들의 갬성은 많이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일단 원어스 앱을 만들기로 하고, 사전 조사를 했다. 참 안스러운 것이 아직 인지도가 없는 아이돌 그룹이라서, 안드로이드 마켓에 겨우 몇 개의 앱만 있을 뿐이었다. 앱을 만들어주면 팬클럽 친구들이랑 같이 잘 듣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앱 개발을 시작했다.
원어스 로고, 쩝 달이 옆에 있다.
개발을 시작하면서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빠졌다. 크리스마스 전에 앱을 출시하려면 늦어도 5~6일 전에는 구글에서 심사를 받아야 하는 데, 너무 늦게 시작을 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늦게 시작한 만큼 바삐 움직였다.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의자에 앉아서 코드를 짰다. 앱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화면은 원어스의 달 모양 로고와 잘 어울리는 검은색 테마로 디자인을 했다. 앱의 콘텐츠는 원어스 오빠들(?) 사진과 노래, 동영상이다. 오빠들 공식 채널에서 동영상 정보를 긁어왔다. 전문용어로 크롤링 프로그램을 짠 거다. 크롤링하는 데, 오류는 어찌나 많은지. 한숨이 자동으로 나왔지만 꾹 눌러앉아서 구글과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서 하나씩 고쳐나갔다. 구글링과 유튜브를 보면서 세상에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세상에 풀어놓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하나같이 미소년인 원어스, 쩝.
며칠간 고생 끝에 원어스 앱을 거의 완성했다. 완전 초고속으로. 딸아이가 마음에 들어하는 이미지를 선택해서 앱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원어스의 몇 안 되는 동영상과 앨범을 앱에 올렸다. 그리고 딸에게 테스트를 맡겼다. 오류 몇 개와 이것저것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잔뜩 쏟아내는 딸을 보면서, "그냥 지울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말 안 들으면 지운다는 협박(?)에도 딸아이는 웃음으로 응수를 한다. 뭐, 아쉽지만.. 말만 그렇게 하지 절대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20일에 테스트까지 모두 완료하고 안드로이드 마켓에 등록을 했다. 25일까지 심사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딸에게 말해두었다. 딸은 시원스럽게 받아들였지만, 눈 만 뜨면 출시되었는지 물어봤다. 많이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내가 만들어준 앱을 빨리 팬클럽에 자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크리스마스를 사흘 넘긴 28일에 마켓에 출시가 되었다.
원어스 앱 화면
딸아이는 출시되자마자 본인 폰에 설치를 했다. 그리고 출시 첫날이라 검색도 잘 안 되는 앱을 팬클럽에 자랑했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하는 마음이 들지만 감성은 누구나 다른 거니까. 그나저나 원어스 앱을 만드느라 일과 글이 많이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