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빚는 영양사
저작권은 왜 보호받아야 할까?
이 질문을 생각하다보면 오래 전 닉네임을 짓던 때로 생각을 되돌려야한다.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내 닉네임은 '이야기 빚는 영양사' 였다.
만두를 빚는 것처럼,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글 한 줄 한 줄에 정성을 실어 나의 생각을 꾹꾹 담아 내고 있었다.
이야기를 빚는다는 건 손끝으로 모아진 생각을 지문에 실어서 키보드로 계속 찍어낸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화면 속에는 내 영혼의 지문이 찍힌다.
작가는 창작물 탄생을 위해 머리로 생각을 빚고, 손으로 또 한번 빚는다. 모든 창작물에는 머릿 속에서 예민하게 엮어져 나오는 작가들의 인격, 영혼이 들어 있다.
언어, 영상, 글, 무엇이든 만든 사람의 혼과, 생각과, 노력과, 시간을 담아 낸 정수인 것이다. 지문이 찍혀내려가는 빚음 속에서 그 창작물은 곧 자아가 된다.
저작(著作)이라는 한자어는 '나타날 저(著)'에 무언가를 만든다는 뜻의 '작(作)'을 쓴다. 특히 이 '작(作)'자는 장인이 날붙이를 써서 깎고 새겨서 기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방망이 깍는 노인처럼 작품을 '빚는다'는 말이 들어 맞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창작가의 인권이나 인격이 허물어져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딘가에선 저작권자의 허락도 없이 불법 복제되고, 심지어는 강탈당하며, 도둑질 당한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리고 이제는 대기업과의 불공정과도 비교도 할 수 없는 AI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저작권은 자연인, 법인이 만든 창작물만 보호가 가능하다. 자연물이나 인공지능이 만든 건 저작권이 없다.
손으로 빚어 내려간 모든 창작물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저작권법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러면 인권보호, 인격보호처럼 저작권이 보호되고 있는가? K-컬처, 한류를 만들어낸 우리나라의 상황은 과연 그러한가?
그리고 저작권은 AI로부터 창작가들을 지켜줄 것인가? 그러려면 사람부터 사람을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지 못 한 야만의 시대다.
창작가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은 컨트롤C와 컨트롤V로 불펌을 하는 1차원적인 행위. 두번째는 계약사항 위반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주지 않고, 법을 지켜주지 않는 행위다.
창작가에게는 허락과 존중, 재산권이라는 인정이 필요하다. 손으로, 인간성으로 빚어낸 작품을 훔치거나 깨뜨려버린다면 범죄이자 야만이다.
물건이 아니라도 사상과 생각, 인권과 인격, 인간성을 탈취한다면 그건 도둑질이다. 인권보호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처럼 저작권보호는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컬쳐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핵심사업인 문화사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려면 저작권보호가 밑바탕이 되어야한다. 그 토대 위에 글로벌 문화강국이 세워질 것이다.
저작권은 대한민국의 자산이며 국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