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애리를 대하는 태도
내가 어릴 때는 《달려라 하니》가 엄청 인기였다.
요즘은 하니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니는 엄마를 잃은 소녀가 여러 상처와 결핍을 안고 달리는 이야기다.
홍두깨 선생을 만나고, 육상선수로 성장하고, 라이벌 나애리와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니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몇 있다.
홍두깨 선생.
고은애.
그리고 멍청할 정도로 헌신적인 창수.
그리고 대사로는 이게 남아 있다.
“나애리, 나쁜 기집애.”
정확히는 계집애였을 수도 있고, 건방진 계집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늘 기집애로 들렸다.
이 대사가 왜 이렇게 기억에 남았냐면, 하니가 이 말을 정말 자주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분했는지.
얼마나 나애리가 얄미웠는지.
하니는 거의 매번 분노했다.
그런데 하니는 그 분노를 이상하게 썼다.
주저앉지 않았다.
폐인이 되지도 않았다.
폭력으로 앙갚음하지도 않았다.
그 분노를 달리는 데 썼다.
나애리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나애리를 향해 달렸다.
나애리를 이기고 싶어서 더 뛰었다.
나애리가 얄미워서 더 버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라이벌이 된다.
그저 괴롭히는 사람과 괴롭힘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의식하는 경쟁자가 된다.
생각해보면 이게 꽤 중요한 태도다.
살다 보면 꼭 나애리 같은 사람이 있다.
회사에 다녀도 그렇다.
꼭 희한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자세히는 말 못 한다.
나름 비밀이다.
그런데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AI 어쩌고 하면서 말한다.
다 된다.
빨리 만들어라.
개발자가 기획도 해야지.
개발자가 디자인도 해야지.
클로드도 있고 챗GPT도 있는데 왜 못 하냐.
2년 걸릴 일을 6개월 안에 만들어라.
개발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구현하고, 테스트하고, 운영까지 하면 되지 않냐는 식이다.
듣고 있으면 할 말이 많다.
아주 많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한다고 바뀔 말이면 얼마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해봐야 대화만 길어질 때가 있다.
설명은 논쟁이 되고, 논쟁은 감정이 되고, 감정은 다시 회의가 된다.
그래서 그냥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니가 생각났다.
하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애리, 나쁜 기집애”라고 외치고 끝냈을까.
아니면 이를 악물고 뛰었을까.
그래서 생각을 바꿔봤다.
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그냥 욕하고 끝내지 말고,
정말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말은 허무맹랑하다.
하지만 그 허무맹랑한 말 안에도 질문은 있다.
AI 시대에 개발 프로세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기획, 디자인, 개발, 테스트, 운영의 경계가 이전과 같을 수 있는가.
개발자가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디부터는 하면 안 되는가.
AI를 쓴다는 말이 진짜 생산성 향상인지, 그냥 일정 압박의 새 이름인지.
그걸 따져볼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개발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AI 시대에 우리가 새롭게 구축해야 할 개발 프로세스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그냥 화풀이로 끝날 수도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욕하고 끝낼 수도 있었다.
“위에서 또 이상한 소리 한다”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대화가 됐다.
아마 내가 앞에서 여러 썰을 풀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멤버들도 이미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냥 내가 하는 걸 믿어줘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건설적인 대화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AI를 어떻게 쓸지 이야기했다.
어떤 작업을 줄일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어떤 부분은 오히려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개발자가 기획과 디자인을 전부 떠안는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대신,
이번에는 정말 개발자가 기획도 하고 디자인도 해보기로 했다.
대신 막연히 “AI가 있으니 다 되겠지”가 아니라,
어디까지 AI로 줄일 수 있고, 어디서부터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단 해보기로 했다.
물론 오늘 있었던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정말 잘 구축해서 AI 시대를 다스리게 될지,
그냥 AI라는 말에 눌려 살게 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하지만 하나는 배웠다.
짜증나고, 화나고, 때려치우고 싶은 상황에서도
가끔은 감정에만 머물지 말고 정면으로 넘어가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나애리가 나타났다면,
하니처럼 욕 한 번쯤은 할 수 있다.
속으로라도 할 수 있다.
“나애리, 나쁜 기집애.”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그냥 분노다.
그 분노를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주저앉는 데 쓸 것인가.
투덜대는 데 쓸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뛰어보는 데 쓸 것인가.
남자라면 정면승부.
여자라면 정면승부.
그냥, 정면승부다.
#이개발자의사고방식 #개발자 #AI시대 #개발문화 #일하는방식 #정면승부 #나애리나쁜기집애 #달려라하니 #기획과개발 #개발자의태도